[Opinion]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의 삶이 아름다운 장미빛으로 물들기를 : 로제타 [영화]

더 이상 그녀의 오늘이 죽지 못해 견디는 오늘이 되지 않기를
글 입력 2020.03.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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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해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죽을 용기가 부족하기에 꾸역꾸역 살아가는 삶이다. 대개 우리는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될 때 이를 느끼는 것 같다. 평범한 삶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통상적으로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누리는 안식처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이 한 문장으로 끝날 수 있는 이 평범함은 어느 누군가 에겐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출근길, 목적지를 향하는 절도 있는 수많은 걸음걸이들과는 달리 유달리 서성이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그 근처에서 서슴대는 이들의 이야기. 영화 <로제타>이다.
 
영화 <로제타>는 1990년대 벨기에의 저학력 청년 노동자 로제타에 관한 이야기로, 장 삐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과 뤽 다르덴(Luc Dardenne) 감독이 청년 고용 심각성을 고발한 영화이다. 2000년 벨기에에서 실시되었던 청년의무고용제도 로제타 플랜(Rosetta Plan)은 이 영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1990년대 벨기에의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22.6%로 EU 평균인 17.7% 높았으며 특히 저학력 청년의 실업률은 30.4%로 고학력 청년층 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었다. 다르덴 형제는 이런 청년 고용의 실상의 이야기를 특유의 가감 없는 현실적인 연출기법으로 담아냈다.
 
 

인간다운 삶에 근접해지기 위한 그녀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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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를 당신이 빼앗을 권리는 없어요. 나도 당신네처럼 살고싶어요.”


 
영화는 주인공 로제타가 수습 기간 중 해고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이유 없는 해고를 온몸으로 거부해보지만 결과는 속수무책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누구나 대체 가능한 일’로 아무리 일을 잘 한다 해도 누군가 그녀를 대신할 이들이 많다는 점이 부당 해고 합리화의 기점이 된다.
 
실직이 된 로제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직원 안 구하세요?’라는 물음에 모두 정해 놓기라도 한 듯 ‘안 구해요’라는 말이 되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로제타는 쉽게 낙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도 헌 옷을 모아 리폼해 되팔거나 숲속 철조망을 넘어 생선을 몰래 잡는다거나 하는 등 나름대로 생존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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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인간다운 삶’이 그녀에게는 고군분투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나 매일 같은 옷으로 구직을 위해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모습, 자신의 어머니에게 몸을 팔 것을 권유하는 남성들에게 저항하는 모습 등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그녀의 고생이 드러난다.

 

영화 내내 그녀의 모습은 다소 우직하고 강건한 느낌이 나는데, 이는 다르덴 형제 감독이 배우 에밀리 드켄에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전사’의 모습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배’란 부당 해고 혹은 당시의 실업 상황일 것이고 이를 인정하지 않음은 청년 실업문제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를 담아낸 것으로 주인공 로제타는 그 자체로 부당한 고용사회의 고발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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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얻은 일자리는 3일 뒤, 사장의 아들이 채간다. 갑작스러운 해고에 로제타는 또다시 온몸으로 저항해보지만 소용없다. 밀가루 포대를 끌어안으며 “나도 당신네들처럼 살고 싶어요”라는 그녀의 울부짖음은 평범한 삶으로서 다시 한 발자국 멀어지게 된 그녀의 공포심이 느껴진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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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의 주변엔 알코올 중독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술 또는 다른 것들로 유혹하는 트레일러 주변 남성들 등 가뜩이나 힘든 로제타를 더 힘들게 하는 인물들 밖에 없었다. 그런 로제타의 곁에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는 한 사람이 생겼다. 그의 이름은 바로 리케. 로제타가 일하게 된 와플 공장의 와플 지점에서 일하는 그는 로제타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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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혹시 그가 로제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그와 로제타가 즐겁게 춤추는 장면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갈 곳 없고 기댈 곳 없는 여성들의 상처에 스며들어 더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이들이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많기 때문에.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정말 로제타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가령 사적인 감정이 있었을지라도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는 그였기에, 그가 로제타와 춤추는 장면은 여타 로맨스 영화 장면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리케의 조심스럽고 온전한 마음이 담겨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작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해 주었던 리케. 신을 믿지는 않지만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리케는 로제타에게 있어 신의 선물과도 같은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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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제타와 리케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산계급자이기에 서로에게 경쟁자일 수 밖에 없다는 뼈저린 현실이 그들 뒤편에 드리워져 있었다. 리케가 물에 빠졌을 때 로제타가 구하는 것을 망설이는 장면과 와플 가게 사장님께 리케가 자신의 와플을 몰래 팔아 이익을 취하고 있음을 고발해 리케가 해고되는 장면은 숨어져 있던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리케는 원망의 눈빛으로 로제타를 바라본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 로제타에게 으름장을 놓곤 한다. 은혜를 베푼 후 돌아온 것이 배신이라니. 누구든 화가 났을 것이다. 로제타도 이를 알고 있었고 티를 안 내려 했지만 죄책감에 결국 무너져 내리는 로제타였다.

 

 

 

가족의 가난, 개인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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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로제타는 그랜드 캐니언의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알코올 중독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그녀의 어머니가 헌 옷을 바느질로 리폼하면 이를 로제타는 중고 상점에 되판다. 로제타의 어머니는 따로 돈을 버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즉, 로제타의 어머니는 그녀가 보호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로제타에게 숭어로 식사 준비를 해주려 할 때 그녀는 숭어의 출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 사실 어머니는 트레일러 주변의 남성들에게 몸을 팔고 무언가를 받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로제타는 자신의 어머니를 한 낯 창녀로 전락시키는 남성들에 대한 증오심과 그 어둠 속에서 어머니를 구제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절망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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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녀를 볼 때면,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 생각에 빠지게 된다. 가족의 존재와 그 책임감의 무게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개개인마다 상이 하겠지만 그 무게는 누구에게도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자식이 부모에게 가지는 책임감은 이로 말할 수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된 자신의 가족은 자신의 자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며 평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함이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부유하다 아니라는 자본주의적 평가 척도 이외에도 이상적인 가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로제타 엄마는 왜 저러실까.’ 아무래도 누군가의 딸로만 살아왔기에 로제타에게 감정이입을 심히 한 것도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에는 약자에 대한 ‘폭력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을 통제조차 버거워하는 이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라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에게 제3자라고 뻔뻔하게 들이댄 폭언이었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청년과 여성의 고용을 보장해 주지 못했던 벨기에의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갔어야 되는 화살을 나는 피해자에게 겨누고 있었다.

 


"너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살거야. 난 평범한 삶을 살거야.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거야."


 

영화의 마무리는 로제타가 ‘가스통’을 안고 집으로 걸어가지만(자살을 암시한다) 이 또한 쉽게 되지 않는다. 이렇게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이 난다. 과연 로제타는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을까?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인생이 그녀의 이름처럼 꽃 필 날을 맞이해보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영화 <로제타>가 ‘청년고용의 실태’를 사회에 고발했고 이는 로제타플랜이라는 법 제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로제타 플랜은 단기간만 효과를 거두었을 뿐 여타 언론에서는 실패한 법 제정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영화를 시작점으로 사람들에게 청년고용의 사시점을 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2020년 출근길에도 서성이는 걸음들은 끊이지 않는다. ‘취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국어 학원과 직업 아카데미를 기웃거리고, 떨어져가는 통장 잔고에 오늘도 목이 멘다. 우리의 주저하는 발걸음은 언제쯤 확신의 발걸음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우리의 오늘이 죽지 못해 견디는 오늘이 되지 않기를. 로제타와 같은 청년들의 삶이 아름다운 장미빛으로 물들 수 있기를 오늘도 마음속으로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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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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