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정 알기, 자기 신뢰하기 -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글 입력 2020.03.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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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열 한가지로 정리한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 때문이었다.

 

 

1 자연을 상당히 민감하게 느낀다.

2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하다.

3 상당히 너그럽지만 한순간 돌아선다.

4 본인의 감정과 애증관계에 놓여 있다.

5 거절에 민감하다.

6 정서적 피로를 자주 느낀다.

7 의사결정을 어려워한다.

8 직관적인 사고가 발달해 있다.

9 창의력이 뛰어나다.

10 정의감이 투철하다.

11 정체성이 흔들리곤 한다.

 

 

나는 예민한 사람들이 가졌다는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는 있었어도 낱낱이 확인받은 느낌이어서 잠깐 멍했다. 이 정도면 정신병 아닌가? 자조했다. 민감함, 예민함은 전부터 나에게 이슈이긴 했던 이유가, 민감한 성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보다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관계에서든 진로에서든 생활 어디서든.


이 기질을 ‘섬세함’이라는 다른 단어로 바꿔 포장해도 결과는 비슷하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섬세하기 때문에 상대의 문제에 잘 공감하지만, 너무 공감한 나머지 그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그 문제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 결과를 낳았다. 나는 자주 '공감'을 '피곤함'으로 번역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다행히, 책이 먼저 찾아왔다. 방법은 있다고.

 


 

1. 이론: 마음 챙김


   

 

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감정이 전달하는 정보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법 또한 깨달을 수 있다. (50)

 

 

책은 총 9장이다. 1~2장에서는 민감한 사람들의 특징, 감정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 왜 민감한 사람이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동기를 얻을 수 있다. 감정은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다스리지 못하면 완전히 지배당하게 되지만, 잘 다룬다면 영감을 얻고 사람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는.

 

3장부터 7장까지는 감정, 정서를 관리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실제로 적용하며 배울 수 있다. 그중에서도 4장에 나온 ‘마음챙김’이란 개념은 내가 생각한 이 책의 핵심이다.

   

 

‘마음 챙김’은 충동과 행동 사이의 시간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49)

 

존 카밧진은 마음챙김을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현재의 순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121)

 

 

마음챙김 정의에 따르면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다.

 

1. 판단을 버린다.

2.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 할 수 있다. 자의적 판단을 배제한 채 상황을 인식하는 게 결과적으로 감정을 다루는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바로 감정의 균형을 찾을 수 있고 이는 곧 현명한 행동, 후회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직 수용하라는 말 같아서 불편한가?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고 책은 말한다. 수용은 상황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의할 필요 없이, 그저 기다려보라고.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마음챙김’을 다시 쓰면, 감정에 따른 판단을 힘껏 차단하는 것이다. 민감한 사람들에게 감정으로 인한 판단은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도적이 아니면 불가능하니까, ‘힘껏’ 해야 한다. 판단에 일어날 행위까지 막아내기 위해서. 감정에 따른 판단은 잘못되어있을 확률이 높으니, 그 판단에 따른 행위도 결국엔 잘못됐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적 경험(생각과 감정)을 마음챙김으로 바라본 후에는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고,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147)

   

 

감정에 따른 판단을 차단하라는 말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감정에 따른 행동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킴으로써 오히려 감정의 실체를 더 똑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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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예로 영화 <대학살의 신>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가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 격식에 차린 대화를 나누는데 초반엔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차분하다. 마치 후반부에 폭발하고 난동하는 감정의 도가니를 준비하듯.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감정이 ‘억눌린’ 경우다.

 

마음챙김은 오히려 이 경우와 반대라 할 수 있다. 감정에 따른 행동이 일어날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감정을 더 똑바로 보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그 둘을 헷갈린 것은 아닌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억누른다면 영화에서처럼 감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폭발하고 말 것이다.

 

 

 

2. 실천: 분노 vs 죄책감


 

민감함은 현실에서 모두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기질에 관한 공통적인 부분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순 있어도, 민감함을 다루는 방법을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제안할 수 없다. 단지 독자 개개인이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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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민감함 때문에 힘든 독자라면, 그리고 해결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각자의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책 곳곳에는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극복 방법이 나와 있다. 최소 2주, 더 오래는 4주, 그리고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실천하는 게 좋다고 한다. 마음챙김은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마음챙김을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적용하게 된 일이 있어 여기 써 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엄마를 보며 화가 났다. 정확히는, 청소가 아니라 시멘트를 다시 바르는 수준의 대공사였다. 이 공사를 하기 전 일주일만 시간을 더 달라고 했고, 합의를 봤었다. 나는 유독성 물질을 쓰는 작업을 하는 중이어서 화장실 공사를 해버리면 작품을 당장 중단해야했는데, 작품 마감 기한은 일주일 정도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참고 작업이 끝나면  내가 시멘트 공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처음엔 멍했다가 엄청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방에 들어와 마음챙김을 해본다고 책상에 앉아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제대로는 잘 안 됐다. 그저 이건 분노다, 와 나는 화가 났다.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났고 화가 엄청 나고 있다! 정도였다. 결국엔 다시 엄마를 찾아가 굉장히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며 언성을 높였다. 다행인지 엄마께서 처음엔 나를 나무라시다가 합의를 어긴 본인이 잘못했다고 먼저 말씀하셨다. 그러니 나도 화가 가라앉고, 조금 진정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엄마와 얘기할 때, 유독성 물질을 쓰면서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환경을 오염시키면서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꽤 오래 회의를 느껴왔고 이 때문에 가족들도 피해를 보는 죄책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고, 이렇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하나, 그림을 포기한 사람들이 이해됐다고 나도 몰랐던 감정과 생각을 줄줄 말하게 됐다. 그 후 엄마와 다시 상의해 작업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도 찾았다.

 

 

이 경험으로 얻은 건 두 가지다. 첫 번째, 분노와 죄책감을 혼동했다는 것. 두 번째, 진짜 감정을 알고 나니 상대와 제대로 소통하고 공감을 얻고 연민까지 얻을 수 있었다는 것. 책 내용대로였다. 감정은 복합적이라는 게 마음챙김이 더욱더 어려운 이유다. 한꺼번에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을 느끼기보다 지배받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추리해야 하니까.

 

더구나 위 경험처럼 화가 나고 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제삼자가 되어 바라본다는 일은 지금의 나로선 쉽지 않다. 분노로 포장된 감정이 죄책감이었다는 걸 알아내고 성숙하게 행동한다는 게 꿈처럼 멀다. 책에서도 어려운 과정이라 했으니 위로는 된다. 그래도 이 훈련을 지속해서 해봐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내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오해하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며 후회하고 나를 미워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목표는 감정 알기, 목적은 자기 신뢰하기다.

 

 



 

괜히 긴 글만 될까 추리고 추린 리뷰이지만, 여기에 쓰지 못한, 쓰고 싶었던 내용이 많다. 내게 가장 긴급했던 주제가 ‘마음챙김’이었을 뿐이다. 감정의 온갖 얼굴이 사람에게 미치는 다각도의 영향을 알아볼 수 있어 굉장히 유익했다. 한 달 정도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또 읽고, 실천하고 싶은 항목이 넘친다. 민감한 사람에게 감정은 곧 정체성까지 결정짓는 대단한 이슈니까. 중요한 책을 만난 것 같다.


인생에서 자신이 자기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에서 말하는 문제를 겪어본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친근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다 직, 간접적으로 겪어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증거를 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해결책까지 더불어 얻을 수 있다. 혹은 감정과 심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오히려 둔감하다는 얘길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반대인 성향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겠다. 읽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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