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도서]

글 입력 2020.03.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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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하면 떠올리는, 보편적이고도 한곳에 머물러 있는 듯한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오브제로서의 여성은 전통적 틀에 갇혀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했고, 수동적 존재일 뿐이었다. 미술의 역사에서 그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예술가들은 '남성'으로 정의돼왔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에는 남성뿐만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예술을 말하는 뛰어난 여성 미술가들도 존재했다.


매너리즘 시기의 라비니아 폰타나부터 현시대의 동시대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신만의 주체성을 띠고 꿋꿋이 예술이라는 언어를 창조하며 시대 속에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행보를 걸어왔고, 어떠한 작품을 창조해냈는지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듯, 예술계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차차 변해갈 때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큰 틀도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아티스트'의 시작


 

라비니아 폰타나(1552~1614)는 이탈리아의 매너리즘 화가로 독립적으로 활동한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이다. 그녀는 초상화를 주로 그렸고 당시 남성 화가들에게만 주어지곤 했던 개인, 공공장소를 위한 그림을 의뢰받기도 하며 명성을 얻었다. 폰타나의 후원자는 여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그녀를 뛰어난 화가라고 말하며 매너리즘 분야에서 보기 드문 예외적인 인물이라 칭하기도 했다.


작품 중 <비앙카 데글리 우틸리 마셀리와 여섯 아이>(1600)는 대상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폰타나의 능력이 잘 드러나 있다. 남자들만이 예술가로 인정받았던 시대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진정한 화가. 폰타나의 예술은 미술사의 흐름에 등장한 용기 있는 언어이자 목소리였고, 후대의 많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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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 데글리 우틸리 마셀리와 여섯 아이, 1600

 

 

"물론 예술에는 성별이 없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그렇지 않다." - 루시 리파트, 1973

 

어쩌면 아티스트 앞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도 모순일 것이다. 이때까지의 미술사는 남성이 주류였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라는 명칭은 그들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그 세 글자에 여성 아티스트들이 속하지 못했기에 예술가라 불릴 수 없었던 사실은, 그야말로 미술을 창조하는 주체의 범위를 제한해버린 것이다. 앞서 말했듯,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여성 예술가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끊임없는 예술적 창조를 해왔다. 그러나 고전의 고정관념으로 정의되어버린 '아티스트'의 개념은 그들을 인정받을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197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무슨 이유로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논문을 쓴 그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역사적인 서술로부터 잊힌 여성 화가들을 다시금 불러왔다. 그러면서 그들이 왜 인정받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명칭을 부여받을 수 없었는지 분석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 논점의 해답은 인식에 대한 오랜 불평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예부터 여성은 미술 제도의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영화 <아르테미시아>에서 묘사했듯 여성은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는 아카데미의 수업 방식에 부적격자로 낙인찍혔던 존재였고, 누드화의 모델이 될 수만 있었지 화가는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던 그림의 장르가 아닌, 정물화와 초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린다 노클린의 논문은 이어져 왔던 사고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한 미술사학자의 통찰력 있는 논문 역시 고전부터 자리 잡은 사상과 규범을 한 번에 바꾸기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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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1989

 


그 후 1989년, 게릴라 걸스로 알려진 페미니즘 단체가 또다시 고전의 관념에 맞서 등장했다. 그들은 뉴욕 시내를 오가는 시내버스 외벽에 특이한 광고를 내걸었다. 그 광고에는 <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 광고의 포스터에는 고릴라의 얼굴을 한 <오달리스크>가 이미지로 첨부돼있다. 이미지에 쓰인 오달리스크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작품으로, 고전적인 미를 대표하는 여성의 누드화로 알려져 있다. 작품의 제목, 즉 오달리스크는 터키 궁정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 노예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데, 게릴라 걸스는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신들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드러내려 했다.

 

"현대미술 화가 중 여성 화가는 5% 미만, 그러나 누드화의 85%는 여성"

 

이들이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 여성 작가의 비율이 단 5%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게릴라 걸스는 그러한 실태를 비난하며 고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20세기 당시의 현대적이지 않은 사고를 비판하려 했다. 미술계의 현 위치를 고발하는 듯한 포스터 작업은 검은 글씨가 돋보이는 단순하고도 대담한 그들의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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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갤러리에는 여성 화가의 그림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10퍼센트 미만이다

 


게릴라 걸스가 보여주었던 퍼포먼스적인 행보는 여성 예술가에 대해, 예술에서의 여성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사유하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술가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생산해낸다. 기나긴 역사를 가진 미술사의 한 부분에 대한 저항이자 성찰의 촉구로써, 그들이 했던 작업은 훨씬 용기 있게 다가와진다. 미술관 역시 전 세계적으로 고전으로부터 비롯된 전시와 기획을 선보여 오고 있으며, 역사를 서술한 세계적인 미술서적 또한 남성 중심의 미술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게릴라 걸스가 행위적인 작업을 통해 고전으로부터 이어진 사상을 뒤바꾸려 했다면,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도서는 글과 실제 사료를 통해 여성 예술가들의 능력과 노력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고 있다. 1989년에서 1세기가 지난 지금, 그들은 동시대 미술에서 무엇을 말하려할까.


 


동시대 여성 아티스트들이 던지는 메시지


 

"나는 지금 페미니스트다. 과거에 페미니스트였고 앞으로도 계속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지어 성 정치학에 대한 질문과 분명한 접점이 없는 작업 속에서도 작품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생산된 것으로 생각한다."  - 마사 로슬러, 2014

 

여전히 여성 아티스트들은 '예술'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여러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생각도 확장되어 다양성을 가졌듯, 예술가를 정의하는 개념을 받아들임도 차이를 보인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대 여성 아티스트들은 보다 더 강하고 독립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논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여성 아티스트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인식이 전환될 때 예술의 가치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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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이 나아진 현재까지도 여성 아티스트들의 비율과 예술계에서의 그들의 입지는 비교적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동시대적 관점에서 예술, 그리고 예술가는 그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받고 있다. 그에 맞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노력도 한몫을 하고 있다. 1월에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영화 속의 대사, 행위의 묘사를 통해 남성 중심의 예술 문법을 무너뜨리려는 의지를 확실히 나타내려 한다.


한편, 화장품 회사의 소속인 코리아나 미술관은 여성 전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며 15년간 지속해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시를 개최했다. 2018년 선보인 '히든 워커스' 전시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풀어내 주목받았다. 또한 다른 전시에서 확고한 신념을 밝히며 작업했던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도 선보였다. 이렇듯 영화, 전시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현시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트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예술에 대한 여성 아티스트들의 신념은 미술계, 더 나아가 큰 틀의 예술계 안에서도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가치 있는 인물들을 다시금 조명하는 책이자, 거시적 관점에서 시대에 따라 주체가 되는 여성 아티스트의 예술가적 변화도 끌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이 향유해왔던, 고차원의 분야이기에 아무나 쉽게 누릴 수 없다고 생각됐던 예술도 이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누려야 할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예술은 높고 낮음으로 가치매길 수 없는, 모두의 분야로 우리 안에 속해있다. 과거와 비교하여 전환된, 그리고 앞으로 더욱 전환될 인식이 빛나는 예술의 가치를 만들어나가길 고대하고 바라며 책을 덮는다.


  

"전 세계 주요 아티스트에 대한 탁월한 조사, 이 중요한 여성들은 우리 미술사의 한 부분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중요한 재발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제시카 모건, 예술 디렉터

  

 

[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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