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0년에 작은 아씨들 읽기 [도서]

글 입력 2020.03.02 19: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작은 아씨들」을 처음 만난 것은 많은 경우 그러하듯 유년기였다. 당시엔 작은 동화책의 형식으로 읽었고 성인이 된 후 그 책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네 자매의 이름이 전부였다. 며칠 전에는 새로 리메이크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를 보았고, 영화를 보면서 조각조각 떠올라 영화 속 장면과 어우러진 기억을 가진 후 만난 것이 이 책이다.


적잖이 당황했다. 짧은 동화와 두 시간가량의 영화로만 접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뿌리를 가졌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거의 잊어버린 유년기의 감상과 영화에서의 감상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려 했으나 968쪽이라는 분량을 맞닥뜨리고 나서 네 명의 인물이 펼쳐내는 이야기를 마치 역사서를 읽는 듯한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롭게 출판된 「작은 아씨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1부와 2부가 합쳐진 완역본이다. 청소년기부터 시작되어 성인이 되어 각자의 커리어를 쌓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지난한 인물들의 역사는 보다 긴 호흡으로 풍부하게 펼쳐진다. 19세기 남북전쟁 중 미국이라는 폭풍 같은 상황적 배경 속에서 유유하게 각자의 속도대로 흐르는 인물을 그려내는 애정 어린 시선과 넉넉한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고 친구 삼아 함께 꿈꾸게 하기도 한다. 14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고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은 아씨들’의 힘이 꽤 두꺼운 책의 실물에서 넌지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걸클래식_작은 아씨들.jpg

 

 

둘째인 조가 주인공이 되어 전개되는 「작은 아씨들」은 대체로 픽션이지만 작가인 루이자 에이 올컷의 자전적인 내용 또한 자못 들어가 있다. 작가 역시 조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고, 말괄량이였으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뾰족하게 맞섰다. 동생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네 자매 중 둘째였다는 것도 똑같다. 그래서 소설은 실제로 작가로 활동하는 조가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전달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네 자매는 물론 그들을 포함한 인물들이 살아 숨 쉬듯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것 또한 동떨어진 시대와 상황을 사는 이들에게까지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가닿는 이유일 것이다.


인간을 보는 애틋한 시선이 머금어진 문장들은 단 한 명의 인물도 쉽게 다루지 않는다. 모두 실수투성이고 극복해야 할 단점들도 많지만 그것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과 함께 인격의 완성으로 이야기를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고이 남겨져 인물을 구성하는 퍼즐이 된다. 메그는 허영심, 조는 화를 잘 내는 성질, 에이미는 이기심과 고집 때문에 종종 일을 그르치며 단점 없는 천사로 비유되는 베스마저도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난관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네 자매가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자 하는 어머니 마치 부인 역시 화가 없는 게 아니라 화를 참는 것이라며 자신의 불완전성을 고백한다.


이들의 삶에는 빈틈이 많다. 단점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고 삶을 사는 동안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그것은 수많은 실수와 실패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비극을 거친 삶들이 한데 모인 소설의 끝에서 마치 부인은 “늘 오늘처럼만 행복하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라는 말로 마지막 문장을 장식한다. 오늘을 희생하여 오늘 이상이 될 내일을 기다리기보다 오늘의 행복에 감사해한다.


여백을 받아들이고 겸허히 채워나간다. 온전히 채워질 수 없으나 결코 공허하지 않은 그들의 빈틈은 완벽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갔던 보통의 인간이 드나들기에 충분했고 또한 정다웠다.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이 고전으로 남아 보편의 세계에 녹아들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위안으로 건네질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이 크리스마스나 새해면 좋겠어.

그럼 정말 즐겁지 않을까?”


“막상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절반도 즐겁지 않을걸.”


 

더 좋은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매들의 지향점은 2020년이 된 지금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조용하고 얌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꾸짖음을 당하거나 반성하는 이들의 모습은 전통적이며 관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노력은 어른이 되기 위함에 가깝다. 자매들은 사회가 원하는 이상향과 타협하고 자신을 다듬어가며 성장하는 보통의 과정을 거친다. 거기서 벗어나 타협할 수 없는 지점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까지도 작가는 누락시키지 않는다. 규범을 받아들이는 여성도, 규범에 맞서는 여성도 그의 자매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little-women-photos-ss01.jpg

 

 

자매 중 한 명에 자신을 대입하는 독자들은 아마 많은 경우 조나 에이미처럼 주관이 날카롭고 예술적 자질이 있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적 자질이 있고 단점이 없어 보이는 ‘천사’ 베스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메그에 마음이 쓰인다. 조신한 현모양처가 되기를 꿈꾸는 메그는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여성상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라고 조언하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러나 작가는 메그를 통해 이상적 여성상을 제시하기보다 가정이라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선택한 한 여성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중심적으로 보여준다. 가정의 부속물이나 남편의 소유물로서의 고민이 아닌 메그 본인의 평생에 걸친 고민이었던 허영심이 새롭게 구축된 세상 안에서 부닥치고 해소되는 과정이 다양한 사건과 함께 입체적으로 제시된다.


또한 메그와의 사이가 멀어질까봐 불만을 갖고 근심에 빠지는 조와 결혼이 딸의 인생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시하는 어머니, 가난한 남자와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고모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메그의 결혼은 현실을 사는 여성들의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드러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은 이를 상세히 기록한다. 결혼이 여성의 최종 목적지라는 제언에 머물지 않고 결혼을 둘러싼 여성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며 중심을 잃지 않고 오롯이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여성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사소하고 무가치한 취급을 받았던 영역에서 여성의 힘을 발견하는 것 또한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가정, 사랑, 청소년기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편의 생에 닥치는 파동을 마주한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일궈낸 역사이다. 역사로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의 가정, 여성의 사랑, 여성의 청소년기, 그리고 여성의 꿈은 이 책에서 섬세하면서도 웅대하게 묘사되며 그 역시 역사에 기록될 만한 보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실은 마모되지 않는다


 

소설을 기고한 조는 예상보다 큰 관심을 받자 혼란스러워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활용하여 일상을 그려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이론이 분석되고 비평된다는 것이다. 조는 작가와 빈번히 동일시되는 인물이기에 작가 역시 자신의 소설이 큰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런 조에게 아버지는 ‘진실을 담은 것’이 소설의 인기 요인이라고 답한다. 작가의 자아를 꾸밈없이 견지하되 인물의 선택과 결정을 이뤄진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것. 사랑이라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진실이 없어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일상의 인간과 가족의 삶을 그렸으나 이 고전에 평범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기승전결과 권선징악이 완벽하고 일이 통쾌하게 해결되는 드라마틱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특별하며 충분히 기록될 가치가 있고 네 자매의 삶이 그것을 힘주어 말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메그, 조, 베스, 에이미에 공감하면서도 그들과 완전히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대신 자매들처럼 자신의 빈틈을 보듬으며 채워나가고자 한다. 자신의 인생 역시 역사가 되고 기록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수많은 존재의 특별함이 일깨워졌다. 모두의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마모되지 않는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그렇게 오래 우리 곁에 남았고, 우리가 아닌 이들의 곁에도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전문필진.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