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계의 고리 [도서]

김승일 『에듀케이션』
글 입력 2020.03.0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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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시집 『에듀케이션』에서 우리는 여러 인물을 만난다. 부모가 없는 형제,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연인.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시를 진행한다. 우리는 그들을 비슷한 성격인지 다른 성격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부모를 잃은 형제, 친구, 연인의 모습은 우리가 직접 겪는 관계이거나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정확하게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연결된 이유로 보이는 요소가 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애매한 관계에서 재미를 느낀다.

 



형제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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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에서 형제는 부모를 잃었다. 그들은 부모가 죽고 석 달이 지나서야 화장실을 청소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생은 강해지고 싶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 형제는 화장실에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면서, 그곳에서 수치를 나누며 싸운다. 동생은 형에게 화장실에서 맞을 때면 형제란 사내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담」에서의 형은 학교를 가지 않는 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은 학교에 가지 않는 반항아보다 학교에 가는 반항아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형은 자신의 모든 일에 “형이라서.”라는 핑계를 댄다. 형이라서 배탈이 났고 지각을 했고 라면을 먹는다. 형제가 사는 집 화장실에는 쥐가 나오고 동생은 학교에 가기로 약속한다.

 

앞의 「방관」의 화자가 동생, 「부담」의 화자가 형이라면, 「화장실이 붙인 별명」은 형과 동생의 상황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화장실이라는 장소에 대해 화자는 여러 별명을 붙인다. 시멘트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 시멘트는 가능성이 되고 타일은 간격이 되고, 간격에 소변을 누는 동생은 변수가 된다. 아빠는 거실이 되고 부모가 죽자 거실은 학교가 되며 변기에 쥐가 튀어난 이후 변기는 수영장으로 불린다.

 

「방관」과 「부담」에서 시작된 형제의 상황이 화장실에 별명을 붙인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이다. 부모가 죽고 석 달 동안 형제는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았고 넉 달에는 쥐가 나왔고 다섯 달과 여섯 달에도 형제는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을 것이며 화장실을 가지 않을 것이다.

 

형제의 관계에는 화장실이라는 장소가 빠지지 않는다. 화장실은 본능에 충실한 장소다. 형제는 화장실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싸움하며 서로의 수치를 나눈다. 그들은 학교에 자주 가지 않았지만, 형은 화장실에 쥐가 나온 이후로 동생에게 학교 화장실에 갈 것은 제안한다. 그들의 수치를 청소할 부모는 이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화장실에서 쥐가 나타난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부모를 잃은 형제 관계가 화장실이라는 장소를 통해 우리에게 더 잔혹하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비슷하지 않은 친구들


 

「같은 과 친구들」과 「같은 부대 동기들」에서는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같은 과 친구들」은 네 명이 삼총사로 불린다. 삼총사는 바닷가 민박집으로 여행을 갔지만, 삼총사로 불리던 것과는 다르게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어 어색해한다. 그리고는 서로가 친밀했는지 의심한다.  그들이 친숙하다고 생각한 까닭은 단순하다. 서로의 유년 시절이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결국 다시 유년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들이 서로의 유년 시절을 어쩌면 지겨울 만큼 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과거는 요즘 시대의 ‘불행 배틀’과 유사하다. 누가 부모에게 더 많은 학대를 당했는지 계속해서 말한다. 그들의 학대 정도의 수위는 서서히 올라간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은 서로를 공감하며 자신이 더 심했음을 털어놓는다. 2층에서 떨어졌든 3층에서 떨어졌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름에 쫓겨나도 겨울에 쫓겨나도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부대 동기들」은 부대 동기들끼리 세례를 받고 신부에게 첫 고해성사를 했다. 그들은 서로의 죄를 고백하면서 다음 고해성사를 기대한다. 아직 지은 죄가 부족하여, 일병이 되면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며 그들은 웃는다. 독실한 천주교인 동기는 그들의 대화에 대한 것도 다음 성사 때 고백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나’는 그에게 무슨 죄를 고백했는지 묻는다. 동기는 “생각으로 지은 죄”도 고백한다고 말하고 끔찍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들’은 독실한 신자인 동기가 가장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겁을 먹는다.

 

「같은 과 친구들」과 「같은 부대 동기들」은 모두 같은 소속의 동료들이다. 그들은 각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무언가를 고백하고 공유한다. 그들은 그 고백의 과정에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같은 과 친구들이 과연 비슷한 유년 시절을 공유한 같은 사람인지, 같은 부대 동기들의 고해성사가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지 말이다.

 

같은 과 친구들은 서로의 유년 시절을 털어놓고 보니 “더 이상 할 얘기가 딱히 없었다." 같은 부대 동기들은 다음 고해성사 때 지난 죄들을 다시 털어놓을 것이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 아님에도 자신의 무엇을-「같은 과 친구들」은 유년 시절을, 「같은 부대 동기들」은 서로의 고해성사를-고백하고 서로가 같다고 믿는다. 닮지 않았음에도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우리는 그들의 고백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문학을 전공했던 수학 과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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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을 보면, 시인은 ‘내 심장 속엔 선생님이 있다.’고 말한다. 선생님의 정체는 『에듀케이션』 시집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의 존재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선생님은 화자와 복잡한 관계에 놓여있다. 화자의 선생님은 화자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이다. 그러나 그 수학 과외 선생이 과거에 문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학생과 선생은 일반적인 사제 관계에 벗어나게 된다.

 

「펜은 심장의 지진계」에서의 선생님은 학생이 과거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경멸한다고 말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문학을 포기한 사람으로 시를 쓰는 거에 대해 분노한다. 선생은 학생과 헤어진 후에도 계속 수학 과외를 하고 있고, 학생은 시인이 되었다. 학생은 선생에게 시를 쓰라고 외친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선생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 둘의 가슴은 문학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진다. 그들은 언제까지 각자의 노릇을-시인과 과외 선생-하고 있을지 모른다.

 

「에듀케이션」에서 또한 선생님이 나온다. 「에듀케이션」에서의 선생님이 문학을 전공했던 수학 선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에듀케이션」에서의 인물 관계는 「펜은 심장의 지진계」와 비슷한 지점에 놓여있다. 「펜은 심장의 지진계」가 선생님이 학생에게 둘이 왜 헤어졌는지 묻는다면 「에듀케이션」에서는 학생이 선생에게 골초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자신과 멀어지고 나서 담배를 피웠는지 묻는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남에게 들은 내용일 뿐 선생에게 사실 여부를 물을 수 없다. 화자는 그저 지금 사는 게 좋다고 말하고, 선생의 근황은 점차 알 수 없다.

 

학생과 과외 선생은 수학을 배우기 위해 만났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관계가 깊어진 이유는 ‘문학’이며 헤어지게 된 계기도 문학이다. 선생은 문학을 포기했고 학생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경멸’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둘의 관계를 읽고 서로의 방식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계를 단순한 선생과 학생이 아닌 그 이상의 관계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홀에 모인 여러분


 

『에듀케이션』에서 나타난 인물은 「홀에 모인 여러분」에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다시 모인다. 사마귀를 잡아 상자에 넣고 놀았던 친구들은 서로를 탓한다. 대명사 캠프에서 만나 서로를 얘, 걔라고 부르는 대명사 캠프에서 만났던 사람들. 문학을 전공했던 수학 과외 선생은 시각 장애인과 그의 가정교사와 친구하자고 청한다. 삼총사로 불렸던 ‘같은 과 친구들’은 총을 메고 엄마를 찾아다녔고 ‘같은 부대 동기들’은 죄를 지어도 여전히 성당에 가서만 고백을 했다. 부모가 죽고 석 달이 지난 아이들은“백 년이 흘러 죽어서 죽은 부모 옆에 앉아서 젖은 옷을” 말린다. 홀에 모인 사람들은 끝말잇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잇기 쉬운 단어로만 이어 나가”기로 약속하고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죽는다는 규칙을 세운다. 그러나 누군가는 같은 단어를 말하고 죽지 않는다.

 

대화는 앞의 「같은 과 친구들」에서의 불행 배틀과 비슷해 보인다. 같은 과 친구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불행을 끝말잇기 하듯 말할 것이고 같은 부대 동기들은 그들의 죄를 성당에서만 말할 것이다. 수학 과외 선생은 학생과의 이야기를 맹인과 가정교사에게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박수갈채가 들리면 ‘나’란 공은 홀 안에서 굴러다니며 고맙다고 답례를 한다. 그러면 ‘다른 공’들도 제각기 저를 위한 갈챈 줄 알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우리들이 알게 된 것을-내가 정말로 동그랗게 생겼는지-서로에게 가르쳐줄까” 묻는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쉬운 말의 끝말잇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시가 끝나도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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