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표현하는 그림의 모든 색은 따뜻함을 담고 있다. 파랑, 빨강, 누런 노랑, 주황, 누르스름한 주황 옅은 갈색, 갈색, 황토, 초록, 노랑, 하늘, 파랑, 검정, 남색 형용할 수 없는 모든 색들에 왜인지 모르게 따뜻함이 묻어난다.


고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색깔 표현이 고흐보다는 덜 다양하지만 비교적 질서정연하고 통일된 느낌이 든다. 고흐는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데도 다양한 천차만별의 색깔을 사용한다.
보통 화가들은 사과면 빨강 혹은 초록인데 그는 파랑, 노랑, 빨강, 하늘색 등 모든 색깔로 이를 표현해낸다. 고갱은 그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사물을 표현한 그 색들이 어느 정도 체계에 포함되어 있다.

둘 다 자연을 지도 삼아, 모델 삼아 그린다. 하지만 고갱은 그 자연 속의 여인들을 역동적으로 그린다. 원시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생생한 모습을 담은 그의 그림을 보고 왜 고흐가 그를 예술에서의 동반자로 생각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흐의 작품에서 느껴졌던 인간의 활동적이고 생생한 날것의 모습들이 고갱의 작품에서는 너무나 확연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날것의 여인들로 배경음악이 그에 맞게 강렬하게 빠른 리듬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그림 표현에 있어서 완전히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느껴진다. 고갱은 여인들을 정말 많이 그렸다. 분명한 붓 터치, 확실한 색 처리, 어느 작품에서도 사람은 빠지지 않는다. 그들이 각자 표현한 인간이 동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고흐는 삶에 피곤하지만 살아갈 힘이 있는 농민들을 담았고 고갱은 정말 태초의 역동이 살아 숨쉬는 생기가 돋아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 것 같다. 그 모습들이 고흐가 원했던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고갱에게 목숨을 걸면서 그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사수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린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역동을 느낀다.
고흐와 사람


고흐의 사람들은 더 현실적으로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고흐가 그리고 싶어 했던 이상향이 고갱의 손에서 그려지고 있었다면, 그가 예술 공동작업을 말하며 같이 하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이해된다. 그리고 결코 가까이 될 수 없는, 줄일 수 없는 격차가 있음을 더 간절히 느끼게 된다.

등이 굽은 사람들, 밀밭에서 삶에 지친 듯 주름진 얼굴들, 암흑, 고단함이 드러난다. 배경음악도 무겁고 잔잔하고 기괴하고 소름 끼친다. 희망이 절대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도 많다. 얼마나 고흐가 힘들게 살았는지도 바로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가 그린 사람을 볼 때면 느껴지는 안락함과 동시에 어딘가 결핍된 모습이 공존한다.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표현 속 그 공허와 부족을 채워주고 싶다.


테오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는데 무엇보다 그가 시력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테오는 형을 죽음으로 떠나보냈지만 그의 작품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살아있는 작품을 자신이 죽음에 다가가면서 점점 못 보게 되니 누구라도 그의 작품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그의 유작전을 펼치기 위해 기를 쓴 것이 참 고맙기도 하면서 벅차다. 자신의 아들 이름을 빈센트로 지어줄 정도로.





그림을 사랑했던 사람
그림으로 살았던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