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은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2.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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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가?


 

나에게는 수많은 기록의 장소가 있다. 일기장, 업무용 다이어리, 일상용 다이어리, 인스타그램, 블로그, 핸드폰 메모장… 그리고 그 용도는 저마다 다르다. 속마음을 쓰는 곳도 있고, 직장과 관련된 업무만 쓰는 곳도 있으며, 인스타그램에는 태그를 달아 수집을 하기도 한다. 이 아트인사이트라는 공간도 나의 기록의 일부다. 생각을 엮어 완성도 높은 글을 만들고 기고하는 곳. 그렇게 기록은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기록이 삶과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을 결정적으로 하게 된 것은 최근 하게 된 취업 때문이었다. 지난 나의 오피니언에서 ‘직업으로서의 에디터’라는 제목으로 직업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신입으로 에디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대적으로 기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기록으로 남겨져 있었다. 어떤 것을 지향하고, 해왔는지 나름대로 착실히 기록을 해왔다. 여기저기 공유할 수 있도록,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도록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기록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매일 밤 일기를 쓰고, 나에게 집중하는 하루. 블로그에 나의 삶을 카테고리화하는 일.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어느 정도 일상의 일부처럼 정착이 되었지만 로망을 현실화하기에는 꽤 많은 귀찮음이 있었다.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매일 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검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매일 나를 독대한다는 사실이 꽤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의 효용성을 절대적으로 깨달은 자만이 기록을 삶과 연결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나는 그 연결 지점이 직업으로 승화되었고, 삶에 조그마한 만족감이 생겼다. 기록을 삶과 연결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기록을 삶과 연결하는 방법


 

기록을 삶과 연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기록에 대해 살펴보자. 기록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오피니언부터 일기, 오늘 먹은 것, 오늘 한 일, 해야 할 일, 편지, 신문, 수집, 리뷰, 논평… 무궁무진하다. 기록의 수단은 글이 될 수도 있고, 사진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기록들이 삶에 연결될 수 있는 기초 작업은 오직 마음의 소리에 따라 진실로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하게 쓸수록 쌓인 기록은 나의 정체성을 만든다. 하다못해 돈을 쓴 내역을 기록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꾸준히 쓴다면 습관적인 소비 행태를 파악하게 되고, 나름의 교훈을 얻게 된다. 먹은 것을 기록하면 내가 얼마나 건강히 살아왔는지, 혹은 그렇지 못한지 알게 된다. 했던 일을 기록해나가면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이렇게 기록을 삶과 연결하는 것은 진실의 목소리로 기록을 이어나갈 때에 가능하다. 거짓된 사실들을 기록한다면 그것은 ‘진짜 내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쓰다 보면 희미했던 나의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그렇게 삶의 기반이 튼튼하게 마련된다.

 

기초 작업이 단단하게 이루어지면 기록을 삶과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서, 혹은 원하는 삶을 위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꾸준히 기록할 용기도 생긴다. 방향성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적는다. 했던 공부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렇게 하나씩 기록해나가면 마음속에서 저축을 하듯 내가 달라짐을 느낀다.

 

공개적인 기록도 추천하는 편이다. 나는 한때 SNS 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나만의 인터넷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기록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을 통해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돌아보면 SNS 선한 영향력을 많이 실감했다. 내가 모아놓았던 도서 리뷰나, 공부 내역들이 취업의 문턱을 넘게 해주었고,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기도 했다.

 

쓰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쌓아두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감정이다. 나에 대해서도, 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모르며 삶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어떤 형태이든 기록을 통해서 한 걸음씩 걸어왔다. 신촌의 한 기록 도구 상점의 이름은 ‘all write’다. 동음이의어는 ‘all right’다. 그들의 이름처럼 모든 메모와 기록은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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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기록은 정신의 근육까지


  

지금은 소문난 기록가 중 한 명이 되었지만, 나 역시도 꾸준히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혼자 쓰는 일기 같은 경우는 아무도 검사하지 않는 것이기에 하루만 놓쳐도 마음이 해이해지기도 한다. 나는 한때 꽤 중증의 완벽주의였다. 누구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도전을 하고 하루는 쉬어갈 수도 있는데, 무언가 도전할 때 하루만 실패해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를 매일 쓰자, 블로그에 매일 하나의 포스팅을 하자, 이런 생각들은 누구나 한 번은 가져본 목표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기록에 대한 로망이 상당했다. 청소년 시절에 공부가 하기 싫으면 힘을 주는 책들을 자주 펼치곤 했었는데, 내가 동경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로그 주소가 적혀 있어서 들어가 보면 자신의 인생이 묻어나는 그 공간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그래서 꾸준히 도전을 했지만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했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이어나갔다. 사진을 남기든, 기록을 남기는 온라인 모임을 만들든, 아침 일기를 매일 블로그에 인증하든,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만들든 말이다. 그런 모든 시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안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음을 말이다. 완벽한 완수보다 한 번의 공백을 남기고 또다시 일어나는 것이 나의 정신에 어쩌면 더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저 쌓을 뿐인 기록은 꾸준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다시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비범함이 되는 순간이다.

 

  

 

평생 기록가가 되어


 

이 모든 사실을 깨달아버린 20대 후반의 나는 이제 기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기록이 직업이 된 사람이니까. 일상에서도 기록을 놓치지 않는다. 신입사원으로서 배운 점들을 기록하고, 일주일 단위로 다시 회고를 하고, 매일의 감정을 털어놓으며 인생에 다시없을 이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삶의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를 제대로 익혀버린 것 같아 안도감이 생겨난다. 기록으로 채워질 삶, 앞으로의 내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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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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