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면의 '인간다움'에 솔직해지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공연]

아름다움과 악함으로 인한 고통과 마주하다
글 입력 2020.02.2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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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은 없다.” 너무나 당연해서 진부하기까지 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스메르댜코프의 입이라면 또 다르다. 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고통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들을 괴롭힌 고통의 근원은 단 하나로, 바로 그들의 아버지 표도르였다.

 

여자와 술을 탐닉하는 방탕한 쾌락주의자였던 그는 두 아내 사이에서 얻은 아들들을 내치고 마을을 떠도는 미친 여인 사이에서 사생아까지 낳은, 소문난 망나니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의 망나니짓은 나이가 들고 장성한 아들들이 한 집에 다시 모인 뒤에도 멈출 줄 몰랐다. 큰아들 드미트리가 사랑하는 그루첸카을 빼앗으려 든 것이다. 결국 그녀와 결혼하고자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 하는 드미트리, 돈을 절대 내주지 않는 표도르 사이의 갈등은 표도르의 죽음으로 허무하게 끝을 맞이한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이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출발한다. 너무나 오랜만의 뮤지컬 관극인 데다 원작의 방대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큰 기대를 안고 자리에 앉았다. 내심 100분이라는 시간이 과연 다섯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충분할까 싶기도 했다. 영화도 연극도 아닌 뮤지컬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발걸음을 돌리면서 우려할 이유는 전혀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뮤지컬 넘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섣불리 평을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공연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음악이었다. 본 뮤지컬 넘버 작곡 과정에서는 특별히 가사의 의미에 따라 음 높낮이를 달리하는 ‘가사 그리기’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각 인물들이 급격히 넘나드는 감정의 폭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두운 극중의 상황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잘 어우러져 경건하고 엄숙한 성가와도 같이 느껴졌다.

 

극장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무대 장치는 천장에 매달려 무대 위를 비추는 큰 거울이었다. 이 거울은 관객석에서는 볼 수 없는 관 위에 눕혀진 표도르의 모습, 혹은 다른 인물들의 뒷모습을 비추며 각 인물들의 숨겨진 내면을 전능한 누군가의 시점에서 고발하는 듯했다. 그리고 표도르의 관을 중심으로 무대 좌측에는 드미트리와 스메르댜코프의 자리가, 우측에는 이반과 알료샤의 자리가 위치하고 있었다.

 

표도르가 첫 번째 아내인 아젤라이다 사이에서 낳은 드미트리는 방탕한 표도르를 빼닮아 호색한인 데다 폭력적이었다. 아버지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가 의심받을 여지는 충분했으나, 드미트리는 이에 멈추지 않고 평소에도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터였다. 그를 살인범이라고 몰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자리는 수갑과 사슬이 매달린, 어두운 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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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미트리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들은 의외로 표도르를 크게 닮지 않았다. 어쩌면 증오스러운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 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표도르의 두 번째 아내 소피아가 낳은 둘째 이반은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이성적인 지식인으로, 신의 뜻과는 모순된 기성 종교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무신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자리는 갖가지 책으로 가득하다. 그는 냉철한 논리를 내세우며 아버지로 죽였다고 여겨지는 형 드미트리를 비난한다. 하지만 그는 드미트리 못지않게 아버지를 혐오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댜코프는 표도르를 아버지가 아닌 ‘주인님’이라 부르며 그의 집에 얹혀사는 인물로, 그의 자리는 의자도 없는 거친 헛간이었다. 그는 이반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신과 종교에 대한 관념까지도 그의 사고방식을 좇으려 했다. 그러나 이는 인간적인 호감보다는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동경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도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고 표도르도 그를 마치 전용 하인처럼 가까이 두었다.

 
그러나 셋째 알료샤는 이들과는 정반대로 독실한 수도사 견습생이었다. 그는 극중에서 조시마 장로와 함께 순수한 ‘선함’을 대변하는 유일한 인물로, 그의 자리에는 성모 마리아의 이콘이 걸려 있다. 자신이 따랐던 조시마 장로의 죽음과 신을 향한 믿음을 조롱하는 이반 앞에서도 묵묵히 믿음에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지켜 온 신념을 헤집어 놓은 이반의 <대심문관>을 듣고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형제들의 대화 속 핵심은 ‘인간이 지닌 악함의 근원’이다. 그들은 숨길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악함을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너무나 생생하게 접해 왔기 때문이었다. 비단 그들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세상은 피로 가득한 야만적인 전쟁,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위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이반은 말했다.

 

진정 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인간이라는 존재들에게 자유의지를 선물했는가? 그리고 세상의 종교는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로 진정한 신의 뜻을 지켜 왔는가? 이것이 그의 질문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 <대심문관>을 통해 그리스도가 만약 이 세상에 재림한다면 세상의 교회는 그를 반가워하기는커녕 그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는 것을 들어 그를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 속에서는 그가 인간 내면에 대해 지독한 환멸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게 되는 악함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국 표도르를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이반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반의 공모로 스메르댜코프가 저지른 일종의 청부살인이었다. 억울하게 살인자로 지목된 형 드미트리에게 비난을 가하며 인류 최악의 죄는 친부살해라는 글을 발표했던 과거와는 모순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외친다.

 

 

“누가 가장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는가?”

 

 

드미트리는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았다. 이반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그리고 스메르댜코프를 통해 그를 죽였다. 결과만 두고 보면 아니겠지만, 과정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반과 드미트리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료샤는 그들 사이에서 가장 솔직한 사람은 드미트리인 것 같다고 말한다. 드미트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악함을 내보이는 데 꾸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는 어찌 보면 극중 최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후반부에서 아버지를 죽였을 법한 인물로 의심 받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곧 죄를 지은 것과 같다고 고백하며, 그루첸카만을 보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계속해서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달라고 말하는 형을 보고 알료샤는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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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는 알료샤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 이반이 경멸했던 악한 기질을 모두 품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사랑은 너무나 열렬해서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알료샤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지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반은 드미트리의 성품을 업신여겼지만 자신의 모습도 결과적으로는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곧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인간다웠던 자는 드미트리였다. 그는 악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스스로의 본성을 인정했다. 이는 비단 그만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었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진 뒤에야 그로 인한 고통에 맞설 수 있게 된다. 극중의 모든 인물들이 나름의 고통을 겪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들을 사유한 것 또한 이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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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결국 누가 살인범으로 판결을 받는지, 재판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막이 내렸다. 그러나 뚜렷한 결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각 인물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 역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내게 던진 것은 나의 내면 속에 자리 잡은 인간다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누군가는 알료샤처럼 절대선과 박애를 좇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의 결함을 부끄러워하는 것 또한 답이 되지 않을까.

 


공연정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 The Brothers Karamazov -

 

일자 : 2020.02.07 ~ 2020.05.03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2시, 6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주최/기획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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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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