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드라마를 통한 과거와 현재의 소통 [TV/드라마]

드라마 '녹두전'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20.02.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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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텍스트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특정 시대에 만들어진 텍스트는 특정 시대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감수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텔레비전 드라마는 특정 시대의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사회상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현실의 관계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는 과거와 현재라는 매우 다른 두 시간의 축이 매개한다는 측면에서 텍스트와 세상을 잇는 소통을 잘 보여준다.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는 과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이 역사는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재현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곧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쓰고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의 문제이다.


2019년 KBS에서 방영되었던 월화드라마 ‘녹두전’은 “5월 12일(신미) 큰 비가 내렸다. 사시 정삼각에 왕세자의 빈궁께서 해산을 하셨다.”는 기록에서 만들어진 역사드라마, 즉 픽션 사극이다. <녹두전>은 동명의 웹툰 원작 드라마이다. 하지만 드라마 <녹두전>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반적인 서사 구조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 유지된 설정 중 하나는 주인공 녹두의 여장이다. 녹두의 여장 버전 ‘김과부’는 작품의 하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여러 매체에서 남장여자는 많이 등장하였지만, 여장남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드라마에서 여장남자를 등장시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여장 남자는 주로 희화화의 대상이었다. 우스꽝스럽고 진한 화장, 어색한 몸짓, 이상할 정도인 하이톤의 목소리와 같은 기호는 여장남자의 이미지를 고착화했다. 하지만 <녹두전>에서 여장남자 역할을 맡은 배우 장동윤은 “여장남자의 모습이 희화화되지 않도록 상의를 많이 하고 준비를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힘으로써 드라마의 제작 과정에서 여장남자에 대한 섬세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의 특징점 중 하나는 전반부의 서사를 ‘과부’라는 존재를 통해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이 점은 원작 웹툰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과부는 과부촌에서 살아간다. 과부촌은 기방 옆에 위치해있으며, 기방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스스로 일을 하며 자생적으로 살아간다. 과부촌의 과부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여성들이다. 성리학이 지배적이던 조선에서, 정절은 목숨보다 귀한 것이었고,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시댁으로부터 도망쳐서 과부촌에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여성들이 <녹두전>의 전반 서사를 이끌어간다.

기방의 행수라는 캐릭터는 열녀비를 세우고자 혈안이 되어 과부인 며느리를 잡으러 다니는 시댁들을 피해 여성들을 구출해내는 ‘무월단’의 회주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연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가능했던 일일까 싶지만, 그것이 바로 ‘상상력’을 통한 역사 다시쓰기 작업이 될 테다. 행수는 “여인이라는 이유로 숨지 않아도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러한 행수의 언어는 조선시대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역사드라마를 시청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설득되는 것이다. 여성을 돕는 여성을 그린 여성서사, 특히 봉건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조선에서 천하고 하찮은 존재들로 여겨진 기생과 과부의 서사는 여성연대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인물인 행수와 쑥 과부의 관계는 주목해볼만 하다. 둘의 첫 만남은 시댁에게 쫓기던 쑥 과부가 행수의 도움으로 구출되며 시작된다. 그때 행수는 이렇게 말한다. “지켜야 할 것은 절개가 아닌 목숨”이라고. 이후에 쑥은 무월단에 들어가 활동하며 행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남성들의 세계에선 무수히 그려졌던 충성에 대한 정의 방식인데, 여성 인물들에게 적용하는 것 또한 여성 인물 캐릭터의 새 지평의 확장으로 보인다.

그들이 활동하는 ‘무월단’도 눈여겨볼만한 단체다. 무월단의 여성들은 무술 훈련을 받고, 어려운 임무를 받고도 능히 수행해내기도 한다. 무월단의 당찬 여성들은 어떤 권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위해, 인간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간다. 실제 역사 속에서, 혹은 역사드라마에서 한 번도 생명력을 가진 주체가 되지 못했던 ‘과부’들은 <녹두전>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해나간다.
 
문화예술 텍스트, 특히 대중문화 텍스트는 해당 작품이 수용되는 시기와 긴밀한 관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중문화 텍스트 중에서도 역사드라마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두 축을 매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다른 두 시간대가 소통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끊임없이 시대에 발 맞춰 변화한다. 즉, 그것이 수용되는 시기와 수용자들과 지속적인 ‘소통’의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소통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불통’의 결과물인 문화 텍스트는 수용자들에게 외면 받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문화 텍스트는 수용자들의 삶을 반영하며, 수용자들이 능동적인 작용을 해야 하는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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