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리막길의 긴장감 - 영화 "기생충"의 계단 리뷰 [영화]

글 입력 2020.02.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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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된 요소들로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된 건축 요소인 계단은 수평적 공간의 사이에서 수직적 매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형성된 계단의 근본적인 목적은 다른 공간으로의 연결이다. 복도 역시 매개의 역할을 하였으나 수평적 공간으로 한정되었다면 계단은 수직적인 형태를 띠는 공간으로 일종의 긴장감을 끌어온다.


수평 공간은 평온함, 고요함, 안정감과 같은 정적인 감정을 수반하지만, 수직 공간에서 불안감, 역동적, 도전적 감정이 강조되는 것은 인간의 인체, 심장 박동과 연결된다. 계단이나 가파른 경사와 같은 수직 공간에서 인간은 다리 근육을 더 적극적으로 써야 하며 그에 따라 심장 박동은 빨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의 역동적 움직임과 더불어 긴장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와 유사한 반응을 끌어내는 계단은 상승과 하강, 긴장과 이완이라는 극적 심리를 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복도가 한 층 내에 있는 공간만을 매개하는 것으로 국한된다면 계단은 본래 분리되어있었던 완전히 다른 공간을 리듬(심장 박동)을 통해 연결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계단이 ‘하나의 리듬에서 또 다른 리듬으로 옮겨가는 통로’이고, 계단을 통해 이동해가는 것은 ‘서로 다른 리듬들 사이의 전환’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처럼 역동성을 지닌 계단은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여 조형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맡는다. 영화 <하녀>(임상수, 2010), <마의 계단>(이만희, 1964) 등이 그러한 예이다. <기생충>(봉준호, 2019)은 이전의 영화 공간으로서 계단을 참고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간은 물리적 공간과 인식론적인 공간으로 존재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도시의 모습은 권력의 형태가 양분된 공간적 분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급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계급을 담은 영화 <기생충>은 이야기와 공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평을 받은 바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족의 거주 공간은 이미 그들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상황에 대해 내포하고 있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이렇듯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로 퍼져 나가 영화의 서사를 확장한다. 하지만 본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공간은 그들의 집이 아닌, 계단이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주거공간은 반지하, 단독 주택, 지하 벙커로 각 공간에 등장하는 계단은 총 8개이다. 우선 기택의 반지하 집에는 화장실 내부에 변기로 가는 계단이 있다. 박 사장의 집은 단독 주택으로, 대문의 초인종을 울리기 위해 첫 번째 계단에 올라서야 한다. 대문이 열리면 집의 정문으로 가기 위한 계단까지 외부에는 총 2개의 계단이 있다. 주택 내부에는 1층 거실에서 2층으로 가는 계단, 개인 지하 주차장에서 1층 거실로 가는 계단, 1층 부엌에서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내부에는 총 3개가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근세가 지내는 공간인 지하 벙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하 창고에서부터 계단 2개를 더 거쳐 내려가야 한다.

 

박 사장의 계단은 폭이 넓고 적당히 완만할 뿐만 아니라 벽에 손잡이가 있어 안정적이라면, 근세의 콘크리트 계단은 좁고 가파르며 천장이 낮아 답답함을 유발한다. 이처럼 박 사장과 근세의 계단은 각 주거공간에 따른 특성을 보여주며, 이는 현실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어떠한 계급 상승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그들의 계단은 사회적 지위나 상태를 드러낼 뿐이며, 계단이라는 공간에서의 상승과 하강은 다른 층으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물리적 이동의 의미 외에 극대화된 계단 공간을 보여주는 것은 기택 가족으로, 세 가족 중 계단을 통한 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시에 이동에 대한 욕망이 뚜렷한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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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의 집에서 변기로 가기 위한 계단은 3개의 단으로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디딤판의 폭이 좁고 챌면이 긴 것이 특징이다. 계단 자체의 너비 역시 좁아 두 사람 이상은 지나가지 못한다. 이러한 계단은 가파른 경사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더한다. 그들이 박 사장 집에서 쫓겨나듯이 나와 본래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의 계단 역시 그러하다. 완만하며 넓은, 잘 포장된 길로 출발하지만,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셀 수 없이 많은 단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돌계단이다.


계단의 하강은 이완과 연결되지만 퍼붓는 빗속에서 이루어지는 기택 가족의 하강은 긴장을 수반하며 서사는 극으로 치닫는다. 또한 카메라는 계단의 시작과 끝을 자르고 원경에서 인물들을 담아 수동적으로 끝없이 하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기택 가족이 마주하는 계단은 상승이 아닌 하강의 이미지만을 담고 있으며 도전적인 역동성이 아닌 수동성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그들의 집에서 유일한 화장실의 계단은 다른 공간으로의 연결로 작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한정된 공간임을 인식시키는 요소이다.

 

영화 <기생충>은 기존의 계단이 지니는 공간적 특성인 수직적 매개를 사회적 계급과 연결 지어 과장하여 보여주면서도 계단의 하강을 이완이 아닌 긴장으로 드러내는 시도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의 주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내포하는 기존 계단의 의미를 파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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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루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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