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전면허? 그거 못 따면 바보지! [사람]

험난했던 한 달간의 대장정
글 입력 2020.02.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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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막 시작됐을 무렵, 여느 사람들처럼 새해를 기운차게 맞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이루지 못한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사, 한국어, 토익 등 갖춰야 할 자격 중 내가 가장 먼저 택한 건 다름 아닌 ‘운전면허증’이었다.

 

나는 평소 겁이 많은 편인 데다 툭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길치’로서 23년을 살아왔기에 운전에는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운전면허에 도전한 이유는, 운전면허증이 가장 만만한 자격증이라는 사람들의 흔한 평가 때문이었다. 주변 지인은 일주일 만에 면허증을 받았다고 말하며, 망설이는 내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나도 마음만 먹으면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고 고민한 지 하루 만에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다지 깊이 공부하지 않았던 필기시험도 거뜬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내가 운전면허증에 얼마나 절절한 마음고생을 하게 될 것인지.

 

필기시험을 아주 호기롭고 자신만만하게 끝낸 후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때의 자신감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학원 내 코스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기능 시험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운전이 참 쉬워 보였는데, 막상 운전석에 앉아 보니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사이드 브레이크 해제에 기어변속 등 출발을 위한 기본적인 것부터 적절한 상황에 방향지시등을 켜고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것, 주어진 선을 넘지 않게 주차를 해내는 것 등. 운전이란 정말 복잡한 과정의 연속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런 기본적인 과정에서 허둥지둥 대기 일쑤였고, 처음 돌려보는 핸들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기능시험을 준비하기 전 주어진 연습 시간은 불과 네 시간이었고, 마지막 교육이 끝나자 결국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도저히 바로 시험을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능 시험의 최소 점수인 80점을 넘지 못해 탈락하고 말았다.

 

아니, 남들은 짧은 시간에 단번에 합격한다는데 왜 나는 잘 해내지 못한 것일까? 주변 도로에서 신나게 쌩쌩 달리는 차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수준 이하인가? 기능 시험 탈락 후 이러한 생각들에 사로잡힌 채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어쩌면 운전이란,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중도 포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운전대를 잡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강사님들의 한숨 섞인 지적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결국 포기를 결심했다. 포기가 꼭 패배의 결과물을 아닌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때론 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며, 지금이 그때고, 그때의 포기 또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 여기며 자신을 단념시켰다. 이처럼 지금의 상황을 친구에게 고백했을 때,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전했다.



‘두렵다고 또 바로 포기한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날카로운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 따끔한 느낌이었다. 나의 포기를 아쉬워하는 친구의 냉정한 조언이 내심 서운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사실 친구 말이 맞았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은 곧 죽어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부족한 게 인생이라며,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곧 잘 하곤 했다. 지금까지 이 신념에 그다지 의심해오지 않았지만, ‘두려움에 져버리고 만 것’이라는 친구의 말은 나 자신을 되짚어보게 했다.

 

내가 정말 운전에 능력이 없는 사람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운전에 투자한 시간은 불과 네 시간이었다. 하루 중 6분의 1도 채 안 되는 시간이다. 네 시간 만에 나의 재능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나는 나보다 짧은 시간에 면허를 취득한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 능력에 한계점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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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운전면허가 뭐라고 이렇게 힘들어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건 아직 나의 운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남들보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성찰 끝에, 그리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여러 날의 실망과 눈물 끝에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작은 한 손 크기의, 그렇지만 결코 작지 않은 운전면허증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별거 아닌, 이 운전면허증엔 무게가 있다. 이 작은 카드 안엔 고생 끝에 얻은 운전 능력과 함께 두려움을 극복해냈던 값진 기억들이 담겨 있다.

 

쉽게 ‘포기’라는 단어를 꺼낸 나를 반성한다. 아무리 두려워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곧 불가능이라 여기기엔 이르며, 실패를 무능력이라고 비하해선 안 된다. 운전면허는 많은 숙제 중 그저 한 장의 숙제에 불과했다. 앞으로 내겐 무수한 크고 작은 숙제들이 주어질 것이다.


그 숙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완벽히 풀어내는가 하면, 오답투성이의 결과물을 제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숙제든 그 정답의 실마리를 두려움에 가려 쉽게 놓치진 않을 것이다. 숙제에 임하기 전, 내 손에 들린 운전면허증을 보고 다시 한번 그 무게를 실감하면서.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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