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영화]

글 입력 2020.02.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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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을 사랑의 기억을 마주하게 할 걸작을 만난다!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극장에서 상영 전 보여주는 예고편을 통해서였다. 그냥 '어 저 영화 보고 싶다'라는 말만 하고서는 기억에서 잊혀졌다. 개봉 후에도 다양한 이유로 영화 보기를 미뤄왔었고 VOD가 출시되면 그때 구매를 해서 보려고 했었다. 포스터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찝찝함과 미련이 느껴지고 있었을 때 함께 스터디를 하는 분께서 극찬을 하시더라. 여운이 일주일을 갔다고, 돈과 시간이 모두 아깝지 않은 캐롤에 버금가는 그런 영화라고. 그걸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예매를 했다.

 

감히 영화의 우수성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개인적인 의견으로, 두 영화의 결이 다름과 이 영화를 방금 막 보고 온 사실을 배제하고서라도, 영화 '캐롤'보다 더 마음에 깊게 남는 영화였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윤희에게'와 비교하자면 이 영화가 조금 더 예술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인지 영화 '윤희에게'가 의문점 없이 더 깔끔하고 이해가 쉬운 느낌. 필자가 생각하는 '인생 영화'는 그 여운이 아주 길어 오랜 시간 뒤에도 끝없이 상기되는, 극장을 나선 후에도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그런 영화이다. 때문에 '인생 영화'가 바뀔지는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여지를 둘 정도로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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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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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메타포


 

기존의 영화들 중에서도 수많은 메타포를 보여주는 영화들이 참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를 본 후에서야 그러한 메타포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참 아쉬웠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었지만 솔직하게 필자의 머리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더욱더 마음에 깊게 스며들었다. 영화를 여는 첫 장면부터 엔딩 크레딧이 내려오기 직전까지 수많은 메타포들이 마음을 간지럽히고, 심미적 요소들과 함께 그려내는 이야기들이 가진 의미들을 하나둘 퍼즐처럼 맞춰보기 시작했다. 가장 짧은 두 시간이었고, 고개를 들어 깨달은 것은 내 두 발로 이야기의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와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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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불과 물의 대비 (혹은 낮과 밤)


영화의 시작 남성으로 가득한, 남성이 노를 저어 지휘하는 배에 탄 유일한 여성 마리안느. 그녀의 상자가 물에 빠져도 어느 누구도 건져줄 생각은 없다. 물에 뛰어 들어 상자를 가져오기까지 남성들은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 파란 바다에 뛰어든 마리안느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젖은 몸으로 엘로이즈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새빨간, 힘 있게 타오르는 불 앞에서 젖은 몸을 말린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곳은 바다. 내내 해가 비추는 바다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는 양지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바다를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엘로이즈. 바다는 자유와 소극적 욕망을 상징하는 듯했다. 엘로이즈가 꿈 꿔온 것은 죽음이 아닌 달리기. 바다와 함께 그녀가 마주한 것 자유였다. 이 자유는 육체적으로 갇혀 지냈던 것에 대한 해방일 수도 있고, 내면의 심리적 미제 상태의 직면(해소될 것임을 암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다와 교차로 활활 타오르는 불이 등장한다. 이 불은 또 다른 욕망이며,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욕망이다. 불은 어둠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이는 음지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는 얼굴이 없는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초상화의 왼 가슴에 불이 붙는다. 마리안느는 불을 끄지 않는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다 이내 벽난로에 그림을 넣어 태워버린다. 왼 가슴에 붙은 불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갖게 되는 사랑의 감정의 시작이었으며, 후에 그림을 전체를 태우는 불은 엘로이즈를 밀라노로 보낼 그림 자체에 대한 분노와 혐오였다고 생각한다.

 

엘로이즈 또한 옷자락에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끄려 하지 않는다. 그대로 마리안느를 응시하며 걷다가 다른 여인들이 불을 꺼주고 그대로 쓰러진다. 이 또한 마리안느에 대한 엘로이즈의 사랑에 대한(또 그러한 감정의 표출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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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꽃을 닮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만큼이나 분량 있게 등장하는 소피. 소피는 영화 중반 즈음 수를 놓기 시작한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집을 비우기 시작한 직후인 것으로 기억한다.) 소피가 수를 놓는 것은 눈앞에 있는 아주 생기 있게 피어있는 꽃들이 담긴 꽃병. 이 시기를 기점으로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깊은 애정을 나눈다.

 

하지만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돌아오는 날이 가까워지고 꽃병의 꽃은 시들었다. 둘은 다시 애정에서 비롯한 오해(혹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던 말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로 다투게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 번 더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꽃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물을 주고 볕에 내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만다. 그것은 꽃의 운명이다. 운명은 바꿀 수 없으며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다.(운명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이런 의미를 가진다.) 18세기의 시대적 현실 앞 마리엔느와 엘로이즈의 사랑도 꽃과 같았다. 시대적 배경을 18세기로 한 것 또한 이러한 것을 더욱 부각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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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그리고 여성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꽤 많다. 시각적인 요소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복식의 수가 상당히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그 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오브제들과 그 색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시각적인 요소들 만큼이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 18세기 여성의 현실이었다. 코르셋으로 조인 잘록한 허리와 풍만함이 강조된 엉덩이. 귀족의 자식인 엘로이즈는 얼굴도 모르는 이와 결혼을 해야하며, 여성 화가인 마리안느는 남성 누드 모델을 그릴 수 없다. 소피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결국 낙태를 하게 된다.

 

소피의 낙태 장면 또한 손에 꼽는 장면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출산과 낙태의 모습을 한 장면 안에 담았다는 것이다. 마치 당장이라도 아이를 낳을 것처럼 다리를 들고 고통에 힘겨운 듯 고개를 젖힌다. 그리고 소피의 바로 옆에는 아기가 있다.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물을 흘리며 소피는 아기를 바라본다. 18세기, 소피는 선택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셀린 시아마 감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꾸준히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고, 여성의 연대와 욕망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감독은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 속에서 존재가 지워진 여성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고, "삶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고 있음에도 다른 길을 택한 여성들의 용기와 사랑에 바치는 영화"라며 제작의의를 밝히기도 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러한, 사실 그 자체로도 너무나도 값진, 방향성이 나로 하여금 영화를 더욱 가치 있고 유의미하게 느끼도록 해준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전 작품 또한 천천히 하나씩 볼 예정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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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작열하는


 

영화 자체가 정말 조용하다. 가장 큰 소리가 바다의 파도 소리로 기억될 정도로 영화는 청각보다 시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배경 음악은 없으며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닥불 주변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뿐이다. 부드럽고 또 세심하며 풍성한 장면들은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대사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모든 대사가 명대사다. 아주 느린 몸짓으로 다가와 가슴을 강렬하게 후비는 말들은 타오르는 불빛 뒤의 엘로이즈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불을 더 강렬히 만들어주는 땔감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신화를 담은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혹은 미처 다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이들의 사랑을 닮은 이야기라는 것은 명확했다. 두 사람은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본 것에 대한 각자 다른 해석을 하는데, 이 해석 또한 둘을 닮았다.

 

화가인 마리안느는 연인이 아닌 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기에 뒤를 돌아봤을 것이라고 말하며, 엘로이즈는 재회 후의 사랑이 아닌 사랑에 대한 추억을 선택한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에 이별을 앞둔 둘은 서로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하기로 하며, 엘로이즈는 자신이 풀어낸 이야기의 에우리디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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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걸작


 

엘로이즈가 "끝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라며 묻고, "그리기를 멈추면"이라고 답한 후 이내 붓질 몇 번 후 끝을 알린다. 그림은 결국 완성되었다. 그림의 완성은 이별을 의미했다. 그림은 완성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잊지 않았으며 기억 속에서 그녀를 끝없이 그렸을 것이다. 그리기를 멈추지 못했고,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는 미완성된 걸작처럼 보였다.


많은 화가들이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했던 이유는 엘로이즈가 포즈를 잡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그림은 항상 미완성으로 끝이 났다. 엘로이즈는 포즈를 잡는 순간부터, 고개를 돌려 화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 빠른 속도로 코앞까지 다가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림 속 엘로이즈는 딸로 보이는 아이와 나란히 있다. 28, 손에 쥐고 있는 책의 페이지 번호가 눈에 띈다. 엘로이즈도 마리안느를 잊지 않았다. 마리안느의 건너편에 앉은 엘로이즈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한다. 엘로이즈는 끝까지 마리안느를 바라보지 않는다. 끝내 완성되고만 그림을, 마리안느와의 이별을 엘로이즈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주 길고 집요하기까지 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강렬함으로 가슴에 남았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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