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회를 비판하는 귀족의 상업미술 - 툴루즈 로트렉 展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겁니까? 소속의 정의가 필요합니까?
글 입력 2020.01.26 20:5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참, 이 사람은 대충 살았구나 싶었다. 드로잉을 죽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요즈음 전시는 참, 습작에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과 같이, 다른 이의 성장과정을 나열하고 공감하는 것이 흐름인가 싶었다. 내가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의 백지에 가깝게 연필 자국만 남은 수많은 습작들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대충 산 게 분명하다. 모든 그림을 그리다가 말았다. 그리고 그 미완성 습작들이 화려한 액자에 걸려서 긴 줄의 관객들 앞에 내세워졌다. 한국 미술이 대중화를 위한 배치를 하는 것이 유행이구나 싶었다. 작품보다는 미술관의 구조에 눈길이 갔다. 조명이 아예 비춰지지 않은 작품들도 있을 뿐 아니라, SNS에서 좋아할 것 같은, 그림 위로 그림자가 반 쯤 차지하고 있는 조명구도까지 보였다. 계속해서 집중하지 못했다.

로트렉의 특징이라 함은 특징 있는 움직임을 정확하면서도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잡아내는 크로키다. 연필 드로잉을 어느 전시를 가나 제일 기대하는 나는 너무 실망했다.

길고도 나에게 무의미한 드로잉을 지나면서, 이것이 광적인 팬들을 불러모았던 로트렉이라면, 나랑은 맞지 않는 예술가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나는 연필이나 콩테같이 캔버스의 질감을 보여주는 도구 혹은 얇은 잉크 등의 선을 좋아한다. 배경과 중심물체의 모호한 채색을 선호한다. 취향에 일치하지 않는 예술품이더라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KakaoTalk_20200126_171104594.jpg

 
 

관람포인트 1. 드로잉, 특히 말

 

시간이 지나면서, 로트렉이 좋아했던 말들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이 때, 나는 로트렉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알았다. 로트렉은 140여 센치미터의 작은 체구의 짧은 다리 때문에 백작가 출신임에도 귀족의 취미인 승마를 즐길 수 없었다. 말에 대한 미련은 말에 대한 세밀 묘사에서 차근차근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림이 초입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나는 압도당했을 것이다.

말에 대한 애착은 그림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갈기와 근육의 생동감에서만 본 것이 아니다. 말이 배치된 그림에서는 말 그 자체, 승마와 관련된 물건(갈기, 승마복, 승마구두 등)은 비교적 자세하게, 그 외의 것들은 주변시야에 그쳐 비교적 흐릿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말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기분까지, 전시장 밖까지 전부 관람한 후에도 흘림체를 주로 쓰는 로트렉이 정확하게 묘사한 것은 말과 그의 연인들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Tête de cheval, circa (1882).jpg
Tête de Cheval, Circa, 1882

 

CALÈCHE ET CHEVAL.jpg
CALÈCHE et Cheval
 
Eva Lavalliere (1896).jpg
Eva Lavalliere, 1896

 

 
길거리 포스터의 시초가 제일 많이 붙는 수식어다. 로트렉은 말 그림에서도 보였듯이 특징점을 잡아 집중을 끄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포스터는 주인공을 프랑스 전역에 유명토록 했을 정도로 효과가 뛰어났다. 특히 채색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붉은 풍차라는 뜻을 가진 물랑루즈(Moulin Rouge)의 공연 포스터는 단어 그대로 빨간 계열과 노란 계열의 두가지 채색만을 거의 이용했다.

물랑루즈의 포스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로트렉은 선택과 집중이 확실했다. 펜 드로잉과 강조의 빨간색이면 끝났다. 화려한 공연의 의상들은 채색 없이도 모든 질감이 낱낱이 표현되었다. 말 페인팅을 거쳐서, 연인의 작품을 연달아서 지나오니, 스케치가 더 진실성 있는 화가라는 것이 느껴졌고, 많은 드로잉 수가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이 전시는 선택과 집중이 불확실했다.

 
la cafe concert (1893).jpg
카페 콩세르 Le Café Concert, 1893

 

Moulin Rouge, La Goulue (1891).jpg
물랑루즈 라 굴뤼 Moulin Rouge, La Goulue, 1891

 



관람포인트 2. 상업미술, 비소를 유발하는

 

관람 전에 기대한 포인트 중 하나는 이 예술가의 사회비판면모였다. 로트렉은 백작이었던 아버지가 샌드위치를 마구자비로 먹는 그림에 “천박해! 진짜 천박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이상보다는 진실을 그리는 화가였다. 사회의 허약점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사회구성원이었다. 프랑스 제 3공화국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가 쓴 책 시나이 산 아래에서의 표지와 삽화에 유럽 전역에 흩어진 유태인 커뮤니티의 삶을 블랙유머로 묘사했다.

툴루즈는 주로 상업미술에 치중되었다. 책의 표지, 삽화, 포스터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한 사진가의 포스터를 제작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가는 사진을 핑계로 모델들을 괴롭게 하기로 악평이 나 있었다.

로트렉이 그린 포스터를 보면, 작가의 다리 사이에 절묘하게 성기의 위치에 암막을 위치했다. 모델이 작가의 의도를 알고 있음을 표현하는 조소를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행위임을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로트렉이 강조에 많이 쓰는 빨간색, 그리고 이 모델이 착용하고 있는 빨간색 드레스의 패턴은 물음표다. 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도덕적 행위에 일침하는 바이다. 이런 솔직한 로트렉이 참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비겁할 수 있는, 돈을 받았지만 제대로 원하는 작품을 내어주지 않는 것으로만 표현했던 것도 아니다. 로트렉은 <비웃음 Le Rire>이라는 사회풍자 잡지에 주기적으로 투고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당당하게 자신이 속한 계층을 가감없이 비판하는 로트렉에게 부끄럼을 숨기고 작품을 부탁했던 당시의 수많은 인사들을 보면, 내가 로트렉을 어느 정도 확실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또 알았다.

 
Photographer P (1894).jpg
Photographer P. Sescau poster (1901)


KakaoTalk_20200126_171104594_13.jpg
Le Rire

 



관람포인트 3. 색, 좋아하는 것에 채도를 아낌없이

 

로트렉이 색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존재했다.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계층의 태만에 염세를 느꼈던 반면, 그 반대에 서 있는 공연장의 댄서들을 아꼈다. 물랑 루즈 한 구석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 자리는 로트렉의 것이었다. 광대로의 그들도, 광대의 가면을 벗은 그들도 모두 좋아했다. 그림에서 명도의 차이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심하다고 느꼈던, 항상 비판해 마지 않았던, 귀족계층과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물랑 루즈에 대한 연민. 그 어딘가에는 자신의 출신만으로도 죄책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귀족들은 주로 낮은 채도로, 자신의 사람들에는 높은 채도를 이용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At the Moulin Rouge (1892).jpg
At the Moulin Rouge, 1892

 

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1895).jpg
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1895

 

Polaire (1895).jpg
Polaire, 1895



툴루즈 로트렉 신드롬(Toulouse-Lautrec Syndrome)이라는 병명이 존재한다. 신체의 일부가 정상이라고 일컫어지는 성장이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마디로 소인증이다. 손가락이 짧은 등의 특성이 있으며, 뼈가 잘 부러지기도 하는 병이다. 에두아르 뷔아르(Édouard Vuillard)는 “로트렉은 핸디캡을 가진 자신의 외모로 인해 귀족들과 단절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와 직업여성들의 도덕적 결핍 사이에서 동질감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어느 부류에도 확실하게 소속하지 못한 로트렉의 외로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귀족으로써, 양쪽에서 들었을 비판과 독려와 선망으로 지쳤을 그에게 나 또한 실망을 하나 더 얹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동정은 거부했을 이 사람의 당당한 행보가 좋았다. 내부의 끝나지 않은 갈등이 비판을 강도 있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해 내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낮기 때문에 더욱 관전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람의 인생을 봤고, 인생을 배웠다.

 

toulouse.jpg


 
[박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