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의 예술화 - "시간을 보다"(서울대학교미술관, ~3.12) [시각예술]

예술 속에서 포착하고 추적한 시간들
글 입력 2020.01.1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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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물리에서 첫 시간에 배우는 것이 단위이다. 1초, 1미터, 1킬로그램, 이런 단위들을 배우는 것이다. 각각의 단위가 어떻게 정의되는가, 1초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1미터, 1그램은 어떻게 정의되는가,하는 내용을 배운다. 그 당시에 흥미롭게 느껴졌던 사실은, 시간이 아닌 다른 수단들을 이용해서 각 단위를 절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1키터짜리 금속 덩어리를 제작해서 이를 미터라고 정의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금속 원자가 조금씩 공기 중으로 승화하여 길이가 변해버려서 기준으로 쓸 수 없었다는, 그런 이유로 논의를 거쳐 시간을 이용해서 이용해 다시 정의했다고 한다. 빛이 몇백만 분의 일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1미터로 정의하기로 했단다.


시간은 절대적이다. 더 느리게 흐르거나 더 빠르게 흐르지도 않고(인간은 더 느리거나 빠르게 흐른다고 느낄 때가 가끔씩 있다지만), 흘러가던 반대방향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다른 단위들에게 기준이 되어 주었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에게 기준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평소에 보는 대부분의 문서들은 제일 위에 시간을 달고 등장한다. 그리고 인간을 분류할 때도 생년월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일련번호인 주민번호는 생년월일로 시작한다. 절대적이고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으로도 쓰이는 모양이다.


절대적인 시간의 존재는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와 새로운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시간은 포착해야하는 대상인 동시에 작업에 필수적이거나 혹은 작업을 제한시키는 요소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린 “시간을 보다” 전시에서는 시간의 이러한 요소들을 포착한다. 본 전시에서는 17명의 작가들이 만들어낸 각각의 독립적인 작품 속에서 시간의 다양한 역할과 가치에 대해 들여다본다.


2층에서 시작하여 3층을 거쳐 지하1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작품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크게 3가지 테마로 분류뒨다. 2층과 3층에 걸친 “순간의 박제”, 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길목까지 이어지는 “수행의 시간”, 그리고 지하1층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궤적”까지, 각 테마를 바탕으로 서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각 테마에서 대표적인 작품 한 가지씩 선정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순간의 박제 – Soap 연작


 

“순간의 박제” 테마의 대표적인 작품은 구본창 작가의 Soap 작품들(이하 “Soap 연작”)이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한국적인 아름다움들을 사진에 담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자가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도자기를 찍은 사진들은, 국선과 순백의 이미지를 통해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하회탈, 화분 등의 정물, 그리고 80년대 국내 풍경을 등을 사진에 담아 한국 특유의 분위기를 렌즈에 담아 왔다.


이런 그가 오브제로 비누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각각 “Soap 00”의 이름을 달고 나온 그의 작품들은 실제로 사용되어온 비누들을 오브제로 하여 만들어진 사진 작품이다. 여러 종류의, 그리고 사용해온 시간이 각기 다른 비누들은 그의 렌즈를 통과해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공장에서 탄생한 비누라는 소모품이,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도자기와 같은 예술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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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각각 "Soap26", "Soap30"

구본창
 


사진작가의 프레임을 통해서 비누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앞서 말했듯 비누는 소모품이며 공산품이다. 사용되어 소모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사용되면서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비누는 도자기와 같은 영원한 곡선미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관점 속에서 비누의 매 순간 재현불가능성한 유일한 존재로 거듭난다. 물과 마찰하고 손에 짓이겨지면서 비누는 조금씩 마모되고 금이 간다. 더 나아가 금이 점점 커지다가 여러 동강으로 쪼개질 것이다. 그래서 비누에 있어서 매 순간은 유일하며 어떤 모양으로 변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비누를 보관하는 환경, 마찰하는 물의 온도, 그리고 사용자가 손에 비누를 쥐는 습관에 의해 비누는 항상 유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다.


구본창이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 비누를 포착하여 Soap 연작을 완성함으로써, 이와 같은 일회적인 소모품은 도예작품들과 나란히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박제”한 새로운 대상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의 가치, 재현불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 수행의 시간 – 작업실에 온 일수


 

“수행의 시간” 테마에서는 천창환 작가의 작품 “작업실에 온 일수”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그의 실제 일수명함들을 이용해 만들어 졌다. 작가는 본인이 작업실에 출근한 날들을 기록하여 달력의 형태로 날짜를 표시한다. 이렇게 표시된 날들에는 일수명함을 갈아낸 가루로 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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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온 일수

천창환



본 작품에서 시간은 작품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니다. 천창환 작가의 작품에서는, 시간이 작품에 유일한 순간을 선사해주기보다는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매일매일 그는 일수명함을 갈면서 가루로 만들어 달력에 표시한다. 이러한 날들이 쌓여 연간 작업 대장정을 “수행”한다.


천창환 작가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작품의 방향은 시간을 기반으로 결정된다. 이와 같이 ‘장인정신’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기반으로 완성되고, 수행의 과정을 통해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며 관람객은 작가의 수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3. 시간의 궤적 – 프로파일 14-19


 

마지막 테마인 “시간의 궤적”에서는 요상한 그래프들이 등장한다. 임윤경 작가는 유명 패션 잡지 5종에 사용된 여성 모델 얼굴의 이미지, 그리고 작가 본인의 얼굴을 이용해 그래프를 제작한다. 아름다운 여성 모델의 옆얼굴은 패션 잡지에 실린 광고들에서 항상 발견되는 이미지이다. 광고의 컨셉에 따라 새로운 모델들이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 속에서 다시 진부한 각도로 촬영에 임하게 된다. 작가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의 잡지 이미지들을 그래프를 통해 객관화시키고 이에 자신의 얼굴을 겹쳐 작품을 완성한다. 각 그래프에는 해당 잡지명과 발행년월, 그리고 광고 브랜드명이 적혀있고, 모델의 옆얼굴에 나타나는 이마, 코, 입술, 턱의 굴곡을 그래프 위에 그린다. 물론 검은 선으로 표현된 모델의 그래프에는 빨간색으로 작가 자신의 얼굴 굴곡이 가이드라인처럼 함께 그려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 잡지들에 대하여 그래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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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 14-19

임윤경



이러한 방식의 그래프들은 가시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내는데, 이로부터 논리적인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그저 작가가 수많은 잡지들 속에서 추적한 “시간의 궤적”에서 묘한 경외감,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질 뿐이다. 현 시대의 패션과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독해온 이미지들이 격자와 그래프로 환원시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함으로써 예술성이 발생하게 된다.

 

*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은 새로운 종류의 예술들을 탄생시켰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실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간의 흐름은 기대되기보다는 부담될 뿐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전시를 통해 부담에 가려져있던, 현재만이 가진 가치를 모두가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시간을 보다”展은 입장료 없이 진행되고 있다. 3월 1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가 긍정적인 경험이 되길 기대한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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