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상의 마법 속으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사랑했던 화가의 그림 속으로
글 입력 2020.01.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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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라는 건 어쩌면 가장 무궁무진한 그림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무대도 백지와 비슷하다. 오로지 벽에 몇 개의 액자와 벽장만이 튀어나와 있고, 무대 하수 중간에는 책상과 캔버스가 놓여있다. 무대 바닥에는 밀밭 영상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무대에 침대나 의자가 나오기도 하고, 벽장이 튀어나왔다가 들어가기도 한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하게 대도구를 빼서 쓰거나 영상을 섞어 표현한 무대는 여느 공연보다도 다채로웠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6).jpg

 

 

3D 맵핑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무대는 시기적절하게 고흐의 내면이나 감정 상태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하얀 무대에 앉아있는 테오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림자가 점점 커지더니 스스로 일어나 고흐를 바라본다. 크게 꾸짖고, 손가락질하고, 욕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아버지를 크고 거대한 그림자로 표현했다. 반면 고흐의 그림자는 작고 보잘것없다. 캔버스를 숨기는 손길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이렇듯 그림자의 크기 차이를 통해 등장인물의 관계성과 성격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가히 명장면이라고 지칭할 수 있겠다. 이집트나 기타 고대 벽화,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권위 있고 힘 있는 사람은 주로 크게 그리고 약하거나 지위가 낮은 하인은 작게 그린 기법과 유사하다. 결국 고흐는 아버지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따른다. 그림자가 아버지에 비해 작고 연약할 때부터 관객은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집에 갇힌 고흐는 자신을 개라고 지칭하고 방에 갇힌다. 냄새나고 불결한 개를 언젠가 총으로 쏴 죽일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공연에서는 이런 모습을 방바닥이 무너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마치 절벽 끝에 있는 것처럼 불안한 고흐의 심리와 집을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적절히 드러난다.

 

개는 자유로운 존재다. 목줄에 묶여 잠시 생활할 수는 있지만, 본래 산과 들에 살아야 한다. 그런데 고흐가 바닥을 부수거나, 혹은 벽 스스로 무너지면 그 아래는 어둠뿐이다. 나무나 하늘 같은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갇힌 채인 고흐가 얼마나 막막해 하는지 잘 드러난다. 희망은 없고 미래는 막막하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7).jpg

 

 

결국 고흐는 작은 장롱에 자신을 가둔다. 좁은 곳에서 가슴만 쿵쿵쿵 친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장롱 밖으로 나온다. 테오가 문을 열어준다. 억압하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그야말로 자유로운 들개로 돌아간 것이다. 가사에서도 이를 잘 보여준다. ‘새장 속에 갇힌 새 한 마리. 밖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친구들. 그들에 비해 하찮아 보이지만 언제고 새장을 나가게 된다면 훨훨 날아갈 것임을 알고 있지.’ 테오가 장롱에서 나오라고 말하는 것은 고흐가 스스로 숨은 곳에서 나오라는 말임과 동시에, 이제 억압받지 말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라는 상징처럼 느껴져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한다.

 

공연의 중간에, 술을 마신 고흐가 다양한 나비와 우주를 보는 장면이 있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긴 하나, 고흐가 생전 즐겨 마셨던 압생트의 마약 성분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짐작된다. 다양하게 퍼지는 빛은 이후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리게 된 계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 고흐 주변은 일그러진 자화상투성이다. 자괴감에 시달리는 것과 병이 차츰 심해지는 것이 관객에게 한눈에 보인다.

 

본래 이 장면은 ‘자화상’이라고 하는, 돈이 없어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상황을 표현었했다.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 큰소리나 치는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면서도, 웃는 자화상 넘어 늘 슬프고 울 것 같은 자기 자신에게 울지 말라고 다독이는 장면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이 차츰 무너져 가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나비와 우주를 표현한 연출이 제법 잘 어울리지만, 정신 상태만을 위한 연출이라면 후반 테오의 말대로 그의 이야기를 흥밋거리로만 소비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염려를 표출해본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2).jpg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고흐는 아를 공동체를 위해 고갱을 자신의 노란 집으로 초대한다. 무대에서 이 장면 역시 마법처럼 표현된다.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고민하다 집을 꾸미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무대의 중앙에 서서 의자와 침대, 액자가 걸린 벽을 색칠하고 나면 우리가 잘 아는 명화가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림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갱과 고흐는 그 자체로 상당히 동화적이다. 그림에 나오는 것과 닮은 가구를 사용해 그림을 현실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자체를 덧입힘으로써 하얗고 텅 빈 무대에서 관객이 익숙한 공간으로 변화를 꾀한다. 그야말로 최첨단 영상 기술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의 첫 장면에서 고흐의 그림으로 들어가 카페와 고흐가 살던 방 내부가 차례대로 펼쳐지는 것 역시 최첨단 영상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환상이다. 꼭 그림으로 들어가 고흐를 만나는 듯 착각하게 된다. 공연 시작 전이나 고흐의 마지막,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일터로 나가는 사람을 그린 그림 등 공연 전반적으로 사용된, 그림의 부분을 움직이게 만드는 영상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상 깊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사실적이거나 선명한 느낌이 들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작품을 보고 있자니 사진처럼 자연스럽다. 그의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2차원과 3차원을 하나로 연결한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4).jpg

 

 

영상이나 연출뿐 아니라 넘버와 가사 역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우리의 추억이 지나간다는 테오의 가사와 마지막 편지에서 난 아무렇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고흐의 가사는 둘의 관계를 보여준다. 돈이 더 많다면 형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테오의 말과 돈은 마음이, 꿈이 진 빚이라며 상심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극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울컥, 가슴이 저리다. 고흐를 그리워하는 테오와 테오가 걱정하는 게 염려되는 고흐. 서로를 가장 믿고 의지했으며 사랑한 형제애가 절절히 느껴진다.

 

테오는 고흐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깔끔하고 단아한 들밭에도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고,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보다 거칠지만 일하는 농부를 더 사랑한다. 하늘이 파랗기만 한 것이 아니듯 오솔길이 갈색만은 아니다.

 

형제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많이 걱정한다. 그런 테오가 아버지, 안톤, 고갱 등 고흐를 성장하게 한 동시에 괴롭게 만든 인물과 동일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이 상당히 재미있다. 어느 때에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배우가 다른 때에는 한심하다거나, 지긋하다는 표정으로 고흐를 응시한다. 테오와의 관계성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평가를 모두 공연에 담아 다양한 시각에서의 고흐를 지켜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5).jpg

 

 

영상의 즐거움, 가사와 넘버의 매력.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꼭 전시회를 공연으로 만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테오가 준비하던 전시회가 실제로 열렸다면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안에 그의 그림과 생애, 편지의 구절구절이 모두 녹아있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자세히 모르던 사람이라면, 큰 감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잘 알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1.jpg

 

 

빈센트 반 고흐

- 그림에 인생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 -


일자 : 2019.12.07 ~ 2020.03.0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
12.07(토) 3시 공연 없음
12.25(수) 2시, 6시 공연
01.01(수) 2시, 6시 공연
01.24(금) 2시, 6시 공연
01.25(토) 2시, 6시 공연
01.26(일) 2시, 6시 공연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1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4,000원

 
주최/기획
에이치제이컬쳐 주식회사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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