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빛났던 시대, 빛났던 장소, 빛났던 예술가 - 툴루즈 로트렉 展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글 입력 2020.01.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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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상주의에 대해선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각자의 의미로 폭넓게 정의되는 사조인 만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다.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여 그리는 사조의 특성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기 인상주의는 그 이름도 성격도 비교적 생소하다. 이름만 듣고 추측하자면 단순히 인상주의가 발전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상주의와는 관련이 없는 데다 인상주의 이후에 나타난 범주화 불가능한 다양한 움직임을 단지 그 시기만으로 이름 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더욱 그 짐작이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후기 인상주의는 짐작 불가능한 어떤 움직임이다. 어느 한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을 이르는 사조나 하나의 경향이나 갈래에 속한 집단을 이르는 유파 따위의 단어를 붙이기도 애매하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지목되는 고흐, 고갱, 쇠라, 세잔의 공통점은 단지 인상주의 이후에 등장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없다. 그래서 이들은 동시에 어느 집단에 속한 구성원이 아닌 개개인의 예술 세계로서 주목받는 경향이 크기도 하다. 우리는 이들을 후기 인상주의라는 범주가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는가.

 


포스터1.jpg

 

 

역시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툴루즈 로트렉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에드가 드가를 존경했고, 반 고흐와 친했으며 나비파 화가들과 어울렸고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대중 미술의 소비적인 성격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를 직간접적으로 둘러싼 인물들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공통점 없이 묶일 뿐이다. 화가의 예술 세계가 그 자신뿐 아니라 그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과의 관계로도 정의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주변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도통 짐작하기가 힘든 이 예술가에 대해 일관적으로 정의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나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하지만 에드가 드가를 존경한다.”



툴루즈 로트렉의 예술 세계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림의 대상으로는 인물, 동물, 풍경을, 그림의 목적으로는 기록, 존중, 풍자를, 그림의 매체로는 연필이나 펜 드로잉, 일러스트, 석판화와 그래픽 포스터를 구분선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그는 어떠한 전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에 무한히 골몰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천재를 보면 연상하듯 자기 내부의 심연으로 끝없이 침잠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이미지로 그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외부를 부지런히 관찰하고 습득하여 자신의 캔버스로 끌어들였던 거리의 산책자이자 기록자라고 소개하고 싶다. 로트렉의 미술은 지극히 시대적이었고 또한 장소적이었다.


19세기 말, 금빛 풍요로움이 흘렀던 ‘좋은 시대’ 벨 에포크의 한가운데 서서 그는 물랭 루즈에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일기를 쓰듯 거리의 풍경을 그려나갔다. 오늘날 물랭 루즈는 로트렉의 풍경으로, 로트렉은 물랭 루즈의 예술가로 설명된다. 시대의 풍요가 그대로 깃들어진 장소는 그곳을 사랑했던 한 예술가에 의해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에 생생히 옮겨진다.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jpg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툴루즈 로트렉 단독전은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로트렉의 캔버스 속 풍경을 150여 점의 작품과 함께 선보이며, 더불어 그의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일러스트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내 최초로 열리는 그의 단독전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전시는 총 일곱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다. 연필을 항상 들고 다니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빠른 드로잉으로 자신의 캔버스에 담아냈던 로트렉의 연필 드로잉 작품을 모은 첫 번째 섹션을 시작으로, 그가 사랑한 파리의 밤 문화를 빛낸 뮤즈들을 묘사한 작품을 모은 두 번째 섹션, 몽마르뜨 카페의 정경과 일상에서 마주한 여성들을 표현한 작품을 모은 세 번째 섹션과 네 번째 섹션, 풍자와 블랙 유머에 능통했던 그의 날카롭고 유쾌한 시각이 투영된 일러스트와 석판화를 모은 다섯 번째 섹션, 말과 승마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나는 작품을 수집한 여섯 번째 섹션, 그리고 19세기적 포스터의 막을 내리고 20세기적 그래픽 일러스트로 포스터의 시대적 전환을 주도한 기념비적 포스터로 이뤄진 마지막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는 로트렉이라는 예술가를 설명하는 데 아낌없이 공을 들인 후대의 노력을 체감하게 한다.

 

 

Salon de la rue des Moulins.jpg

 

 

인상주의가 흔히 미술계의 변혁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반면 후기 인상주의의 시대적 의의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로트렉이 살던 시대는 세계를 강타할 변화를 앞두고 미술 내·외부의 흐름이 여러 방식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 하던, 그야말로 폭풍전야와도 같던 시기였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로트렉은 어떠한 흐름에도 편승하지도 쉽게 범주화되지도 않았다. 그를 설명하기 위해선 공통되지도 않는 온갖 사조와 시대를 다 끌어모아도 부족할 정도로 그는 하나의 무엇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만 그가 그려낸 벨 에포크의 물랭 루즈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고이 남아있다.


휩쓸리지 않는 견고한 시각으로 자신의 시공간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은, 그렇기에 그곳에서 멀리 지나온 지금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으로 날아온 그의 전시가 유독 기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문필진.jpg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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