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싸워 이기거나, 도태되거나. [연극]

글 입력 2020.01.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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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 이기거나 도태되거나,

무엇을 택할 것인가?"

 

 

1. BULL :


 

2018년 12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랜 시간 구조화된 채 방치되었던 사내 괴롭힘은 한국 사회 암묵적 동의로 이루어지고 위계질서와 팀워크라는 여러 이유로 재생산되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것의 문제를 직시하여도 사람들은 뒤처지거나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불가항력적인 시스템에 적응하고 똑같은 실수에 암묵적 동의를 한다. 사람들은 결국 '업무성과의 효율'로 취급되며 인간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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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Bull' 은 황소를 뜻하는 단어이며, 어떤 어미를 붙이냐에 따라 bullshit:헛소리, bullying:따돌림, bullfighting:투우의 뜻을 가진다.


연극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정리해고 대상이 된 3명은 단 2자리를 두고 생존경쟁을 한다. 최종 2인의 발표가 있는 날, 세 사람은 임원이 오기 전까지 사무실에 대기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를 한다.


찌질해보이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토마스', 도도하고 당찬 '이소벨', 괜찮은 외모와 몸을 가진 능력 있는 팀장 '토니' 이 세 사람이 바로 그 대상이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를 견제하려 건네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견제는 목적을 알 수 없는 비난이 된다. 그리고 그 비난은 '토마스'에게 집중된다.


이미 서로가 하는 말은 거짓인지 진실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경기 전 황소를 24시간 동안 어둠 속에 방치하는 것처럼 이소벨과 토니는 토마스를 끈질기게 괴롭힌다. 토마스는 'Bull'이 되어 직장 동료에게 'Bullying'을 당했다. 하지만 아직 본 경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임원 '카터'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공기는 변한다. 이소벨과 토니는 빠르게 정중한 모드로 바뀌며 카터를 보좌한다. 카터는 직원들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러자 두 명은 빠르게 자신을 변호하며 토마스를 향하여 공격한다. 토마스만 없다면 팀 내 분위기가 더 좋을 것이라며 말이다. 이에 잘 다듬어진 토마스의 분노는 카터 앞에서 터져버리고 만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전부 토니와 이소벨이 유도한 대로 흘러갔고 결국엔 카터에게까지 비난받게 된다.


"여기가 학교인가? 난 네 선생님이 아냐. 난 네 엄마도 아니야."

"그런 건 자네가 해결해야지."


카터는 그렇게 무대에서 퇴장한다. 이후에도 이소벨과 토니는 집요하게 토마스를 괴롭히며 연극은 끝이 난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이소벨이 붉은 천을 들고 토마스를 마구 유린하는 장면이 나온다. 토마스는 정말 bull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2. BULL :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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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따돌림이 얼마나 심한지는 아직 내가 직장인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 통계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경험했다 하니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부조리가 많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연극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딱 한 명 정리해고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닌가. 아마 그 인물은 평소에 나와 잘 맞지 않거나 팀에 해를 끼치는, 소위 '사회생활'이 안 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정의감을 앞세우며 겸허히 결과를 기다릴까? 나라면 어떻게든 나 말고 누군가를 어필해 최종적으로 내가 살아남는 길을 택할 것 같다.


"너 옷에 뭐 묻었다."

 

극 내내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대사이다. 토마스에게 무언가 묻었다고 하지만 그 무언가는 토마스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에 묻은 건 알지만 온 전신을 흔들고 머리를 탈탈 털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꽤 눈에 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털어도 털어도 떼어지지 않는 무언가. 열등감이나 수치심으로 느껴진다. 정답은 작가만 알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싸워 이기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인간은 잃어버린 자기 삶의 중요성을 회복할 힘과 권리가 있으며, 지금의 현실에서 인간 관계성을 회복하고 인간성을 되찾는 데에는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연극은 희망의 메시지를 얘기하기보다 반대로 차가운 현실을 더욱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문제점을 인식하게 하고자 한다.

 

- BULL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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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가운데 무대를 링처럼 만들고 양옆으로 객석을 만들었다. 기존 연극에서 무대를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기에 배우들의 동선이나 모습이 입체적이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모습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 순간을 연기한다. 또한 카메라를 두어 배우를 직접 촬영, 송출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은 사각지대 없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고, 배우의 표정이나 구도를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하나 더 재미있는 점은 티켓이 출입증 형태로 되어있어 입퇴장 시에 출근부를 기록할 수 있는데, 마치 회사의 일원이 되어 극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함께 출근해서 그들의 상황을 방관하며 어떤 역할이 가장 공감이 되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방관한다.


연극은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나 살펴보고 고민하게 하는 연극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반영해 보여준다. 희망 따윈 없다. 그렇기에 더 의미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 연극, BU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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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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