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죄송하지만 불합격입니다 [사람]

불안한 먼지가 된 청춘들에게
글 입력 2019.12.2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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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황채현 님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핸드폰이 경미한 진동을 울린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나는 일제히 모든 일을 멈추고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쉰다.

 

‘아, 또 불합격이다’

 

이윽고 아무렇지 않은 척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시간이 지나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퇴근한다. 퇴근 후 회사에서 지하철역으로, 지하철에서 집으로 향할 때까지 느꼈던 좌절감과 불안감, 죄책감 등은 그저 혼자만의 비밀로 남겨둔다. 그리고 나는 더 나쁘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일찍 잠이 들고자 노력한다.


불합격의 아픔은 대체로 하루 정도면 아물었다. 몇 번의 불합격 이후 흩어졌던 멘탈을 최대한 빨리 단련시키는 것에 연습이 되었다. 여기서 슬픔에 잠겨버리면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음을, 영원히 부유하게 될 수도 있음을 걱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없고,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여력은 없다. 무엇보다 불합격이 남긴 상처는 합격으로밖에 치유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노력하는 수밖에.


그런데 최근 들어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뎠다. 정말 하고 싶은 대외활동이 있어 지원했는데, 끝내 그곳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이다. 간절한 일이었기에 합격 후 활동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뛰었다. 오랜만의 설렘이었기에 며칠 밤을 새우고 고민하며 특색 있는 자기소개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나의 심장 소리가 무색하게 핸드폰은 끝내 울리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접수한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핸드폰 알람 소리에 기분이 좌지우지됐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결과가 발표됐을까? 오늘은 발표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데 결국 그 결말이 불합격이라는 점이 아쉽고 허무했다.


하지만 나를 정말 아프게 했던 건 불합격이라는 사실보다 끝내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이었다. 내가 마음 졸이며 합격 문자를 기다렸던,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핸드폰만 바라봤던 나날 중 어떤 이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연락을 받고 기뻐했을 것이다. 지원한 회사가 새로 뽑은 대외활동 부원과 새로운 일정을 정할 때도, 나는 여전히 초조한 마음으로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합격자가 철저히 소외됐다는 생각에, 정성 들여 준비한 자기소개서가 아무런 응답 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는 서운함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불합격 문자조차 받지 못한 것도 억울했지만, 그보다 그간 쌓아왔던 패배감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내게 ‘너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라고 표현하는 건, 그리고 그 표현을 직접적으로 반복해서 듣는 건 여간 아픈 일이 아니다. 상대평가라는 시스템을 고려해보면 선택받은 이와 선택을 받지 못한 이가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가 언제나 선택받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내게 불합격이 통보되는 과정에서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는 것은 더욱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선택받고 싶다는 간절함은, 그 이성적이고도 객관적인 생각에 오작동이 나도록 해버린다. 결국 그 간절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영원히 꿈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 때문일까.


이는 어쩌면 나를 가장 보통의 아니, 그 이하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낮아진 자존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타인보다 더 나은 스펙과 실력을 갖춰야 하는, 냉혹한 상대평가의 세계에서 열등감은 빠질 수 없는 감정이었다. 열등감이란 더 노력하게 하는 연료가 됐지만, 자신을 그저 늘 꼴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수치심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빛 받을 필요가 없는 버려져야 할 먼지가 된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백지상태에 어떤 글자를 채워 넣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를 어떻게든 포장해야만 하는 빈 화면 속의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백지의 자기소개서를 바라보는 것에 지쳐 검은 활자가 가득한 책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마주한 어느 책의 구절은 나를 오래 지켜 봐왔다는 듯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이는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 중 가장 마지막 구절인데,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적인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생각한 것만큼 많이 이루지 못한 현실에 대한 속상함과 더 발전하지 못한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자책감 등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은 지금의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그저 우주의 먼지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말이다. 어쩌면 먼지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지쳐버린 청춘들의 자책감을 가장 대표하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참 위안이 됐던 건 스스로 먼지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먼지가 결국 빛을 발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마음이었다. 앞뒤 재지 않고 위로하기 바쁜 흔한 자기계발서의 문장이면 어떤가. 패배감과 열등감에 싸여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채찍이 아닌 당근인 것을.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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