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9 인생 재건 프로젝트 [사람]

'쓸모 없는 일들'로 가득 채운 값진 휴학 생활
글 입력 2019.12.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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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한 살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해 2년을 보내고 스물세 살에 학교에서 도망 나왔다.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힘들어졌는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정확한 건 그 당시에는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무얼 할까 고민을 했다. 대외활동, 자격증, 인턴 등 여러 선택지를 꼽아보다가 그런 것보다 인생을 '재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춧돌이 단단히 잘 박혀있어야 건물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내 인생도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1년을 살아온 지금, 나름대로 그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제는 이 다음에 무엇을 쌓아 올려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은 생겼달까. 휴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학교라는 일상적 궤도로 재진입하기 전에, 2019년 한 해를 톺아보려 한다.

 


 

문학과 필사



어릴 적에는 책을 굉장히 좋아해서 ‘다독왕’ 같은 상도 받곤 했는데, 입시를 하고 핸드폰이라는 것이 손에 쥐어지고 난 후로부터 도통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은 어느 순간 멀어진 어린 시절 친구 같은 존재처럼 내 세상의 외곽에 위치해있었다.

 

휴학을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을 사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항상 나와 함께 했던 친구가 그리웠고, 이제와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90퍼센트 이상이 문학 작품들이었다. 목표한 100권을 다 채우지는 못했으나, 한 해 동안 꽤나 많은 소설, 시 그리고 에세이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눈길이 멈추는 문장은 작은 노트에 필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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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세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민감하게 공명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문학 작품은 알고 있는 세상을 더 탄탄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곳에 균열을 내기도 한다. 여러 작가들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며 어지러운 마음이 잠잠해지다가도 잠잠한 마음이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곤 그 사이에서 떠오르는 마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진리란 공명과 사유를 반복하다가 비로소 떠오르는 마음이 아닐까싶다. 올 한 해 수많은 마음들과 마주하며 단단해질 수 있었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며 세상을 대할 수 있어졌달까. 좋은 문장과 서사의 힘은 이렇게 강했다.


 

 

이사와 셀프 인테리어


 

공간은 시간과 기억을 담아낸다. 내가 5살 꼬마 시절부터 23살 봄까지 18년을 살아왔던 집은 나의 역사를 담아내다 못해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곳이었다. 그 오래된 시간과 기억들은 나에게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껏 가지를 펼쳐가면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 마주하게 되는 그것들로 인해 집에서 마음 편하게 온전히 쉬어본 적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그 집이 나의 역사를 담아낸 것처럼 나 또한 그 집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람이 되었기에 그 집을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 집에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산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봄,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로 인해 이사를 해야만 했다. 18년치 짐들을 덜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버린 거 하나 없이 살아왔나-하는 생각을 했다. 유치원 시절 그렸던 그림부터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 수험생 시절의 모의고사 시험지까지, 정말 모든 걸 다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생각했다. 물건이든 기억이든 갖고 있기만 하고 보살펴주지는 못했구나.


이사를 갈 집은 좀 더 좋은 기억들을 담아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을 그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기술이랄 게 없어 시공이 필요한 것들은 하지 않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한 근사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채운 방을 만들고 싶어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고, 여러 소품들을 만들거나 구입하고 배치하여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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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면 캔들을 골라 워머를 틀어 포근한 향이 방을 채우도록 하고, 무드등을 켜 방 안에 달이 떠오르게 한다. 머리맡에 쌓여있는 책들 중 손에 잡히는 것을 읽다가 문득 기타가 들어오면 알고 있는 몇 개의 코드를 짚어 노래를 흥얼 거린다. 그저 지친 몸을 뉘이는 공간이었던 나의 방은 이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신의 공간을 가꾼다는 것은 단순히 근사한 집에서 지낸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 자신이 소중하기에 더 좋은 공간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힘을 주었다.



 

여행


 

이전의 글에서도 한 번 다뤘듯, 8월 말부 터 10월 초까지 유럽으로 긴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단순히 유럽 여행에 대한 환상에서 시작한 여행은 나에게 경험 이상의 무언가를 남겨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를 떠올렸다. <데미안>이 말하는 것처럼 투쟁을 통해 세계를 깨뜨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길고 긴 여행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나를 가두었던 틀에 금이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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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아 안전지대 바깥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그 선을 넘어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일은 정말 떨리고 가치있는 일이었다.

 

낯선 곳에서 지내며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용기가  나의 안에 자리 잡았다. 때로는 현실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야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글쓰기


 

어느날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 붙이지 못하는 시간들은 어디로 흘러가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아득해졌다. 내가 지나온 하루하루들을 기록으로써 붙잡지 않으면 휘발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기록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기처럼 기록을 시작했다.


정혜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흔히들 자아표현이라고 하는데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저한테 글쓰기는 자아 형성, 자아 해방, 자아 이동인 듯해요. 누가 나보다 나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좋은 생각인지 감탄하게 되고 동시에 저한테는 절망하지요. 감탄과 절망, 이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는 듯도 해요.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는 듯도 하고요.

 

- 이슬아 <깨끗한 존경>


 

내 안을 부유하는 생각과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저 감정을 흘려보내거나, 그 감정에 얽매여있지 않고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보살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탄생한 문장들은 내가 쓴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문장 그 자체만의 힘이 생겼다. 자아 표현만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자아 형성, 자아 해방, 자아 이동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11월부터는 문화 예술 플랫폼의 에디터로도 활동 할 수 있게 되며 글쓰기의 폭이 그리고 자아의 폭이 더욱 넓어짐을 느낀다. 글쓰기는 나에게 어렴풋한 감정과 생각들을 명확하게 해주었고 그것들이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글 쓰기는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었다.

 

*

 

연말에는 항상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분명 바쁘고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남은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느낌.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연말의 감각이었다. 하지만 2020년을 마주보고 있는 지금은 굉장히 충만한 감각으로 가득 차있다.

 

누군가는 나의 1년이 놀기만 한 그런 시간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고 쓸모 없는 일들만 했다며. 하지만 나에게는 그 '쓸모 없는 일들'이 나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이제는 두렵지만은 않다. 아니 조금씩 기대가 된더. 한 치의 후회도 없는 스물 세 살이었다. 2019년 안녕.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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