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듣는 일기, 선우정아 [음악]

글 입력 2019.12.2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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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선 순간부터

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 수 없어 태생인 걸

 

선우정아 - 고양이

 

 

시작은 '고양이'라는 노래였다.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노래들이 지겨워졌을 때 즈음 새로 들을 음악이 없을까 찾던 중 내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쓴 노래였다. 간질간질하면서도 가볍게 통통 튀는 리듬이 귀엽고 절로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원래 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그만큼 독특한 가사를 읊는 이 노래는 나를 선우정아라는 바다에 풍덩 빠지게 했다.

 

뻔한 사랑과 이별에 울고 웃는 노래가 아닌 것부터가 사실 마음에 들었다. 어릴 때부터 흔히 말하는 덕질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관심을 가지는 듯 잠깐 불타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느낌. 스쳐지났다고 해두자. 그런 내가 연예인의 겉모습이 아닌, 이러한 표현이 무례할 수도 있지만 조심스럽고 또 솔직하게 적는 것임을 알리며, 얼굴도 모르는 가수의 음악에 이끌림을 느꼈다. 선우정아의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았고 노래가 귀에 익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을 즈음 이런 음악을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웹 기사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선우정아는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유튜브도 잘 하지 않는 데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도 볼까 말까 한 내가  '더 알고 싶은' 아티스트였다. 사물을 의인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실체와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는 이 독특한 아티스트가 만든 '고양이'라는 노래는 아직도 나의 플레이리스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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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점점 걔 같은 옷들로만 가득한 나의

인생을 보며 스쳐가는 생각들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선우정아 - 뱁새

 

 

의외로 리듬이 흥겹다. 이런 리듬에 이런 가사를? 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사는 흥겹지 않다.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군가를 끝없이 모방한다.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선택하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이미 경험하고 드러낸 무언가이다.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겨우 그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바라본 거울 속 내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가사 그대로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왜 많은 이들이 가진 것을 나만 가지지 못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억울하지만 다시 태어날 수 없는 노릇이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 끝없이 비교를 하고 아래로 더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아주 바닥에 닿기 직전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뱁새다. 황새를 따라갈 수 없는 짧은 다리를 가진 뱁새의 모습을 역시 의인화한 이 노래는 나의 일기 같았다. 그리고 희망 하나 없이 끝나는 이 노래에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아마도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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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갖고 싶은데 갖고 뭘 할 건데

지금 내 간절함 과연 영원할까

조금 배가 불러도 다 귀찮아 하잖아

그런 나의 두 손에 무기를 쥐어 준다면

 

아주 단순한 욕망 쟤보다 세고 싶음

누군가의 부러움 잊으면 안 되구

모자라는 것보단 남기는 게 나아

자격 없는 내 손에 쥐어진 총

 

똑같은 사치 똑같은 Pride

똑같은 멸시 똑같은 Blind

I have no proof

that i am better than them

 

내가 바란 그 미래는 겨우

누군가의 윗층이야

아래엔 다른 이의 Dream

 

선우정아 - 쌤쌤

 

 

 

선우정아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면 이 노래와 serenade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이다. 뱁새만큼이나 암울한 가사를 가진 이 노래는 뱁새로 쓴 내 일기의 다음 장 같았다. 뱁새가 열등감이라면 쌤쌤은 열등감이 촉발하는 이상하면서도 평범한 인간의 욕구가 아닐까. 노래 그 자체도 좋지만 쌤쌤의 뮤직비디오는 선우정아 내면의 생각들과 사회 풍자까지 함께 보여준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주로 바깥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노래를 듣는 나를, 청각을 곤두세워 귀를 더 기울이게 하며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생각은 반성일 때도 있고 누군가에 대한 미움일 때도 있고 현실에 대한 해탈일 때도 있다. 또 곡 사이사이 들어간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와 트림 소리 등 독특한 효과음은, 순수 창작활동이 드물어 발휘될 일이 거의 없는 요즘의 나의,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니 자연스레 노래를 듣는 내내 머릿속에서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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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조차 울고 갈 만한 욕심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웬만하다면 다 거기서 거기야

 

그냥 모두 다 잘 지냈으면

내가 싫어하는 걔조차도

그래도 모두 다 잘 잤으면

나를 싫어하는 쟤조차도

 

그냥 모두 다 잘 잤으면

부디 모두 다 평온하게

Don't, don't hurt yourself

 

선우정아 - serenade

 

 

일기장을 한 장 더 넘겨본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나머지 두 곡은 얼마 전에 발매된 앨범에 함께 담긴 노래이다. serenade라고 하면 자연히 그 곡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선우정아는 모두를 위해 노래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겠지만, 어쩌면 고양이를 제외한 두 곡을 지나 쓴 일기 같았다. 요즘 나는 이 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듣는다.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또 미워하고 때론 사랑하고 이리도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같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전부 나의 잘못 같고 내가 너무 미울 때에 혹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고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을 때. 겨우 침대에 몸을 누이고 머리 맡에 작게 틀어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모두가 잘 잤으면, 모두 다 평온하게, 그리고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부드럽고 따뜻한 손으로 살살 토닥여주는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못된 모습까지도 안아주는 것 같아서 더 위로를 느낀다.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선우정아 - 도망가자

 

 

 

들으면 절로 눈물이 나는 이 노래는 일기의 마지막 장이다. 무엇에서 도망치는 것인지는 노래를 듣는 이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 같다. 마침내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 후 누군가 내민 손을 붙잡아 비로소 웅크린 몸을 일으켜 빛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다. 내가 소개한 다섯 곡 중 고양이를 제외하면 그래도 가장 밝고 희망적인 노래다. 신기하게도 이 노래를 들으면 무언가 후련한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을 잃는 것이 싫어서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지는 않는다.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노래를 아껴 듣는 것이라고 해두자.

 

한 인터뷰에서 선우정아는 '모든 평범함에 침을 뱉으리라'라는 구절을 모든 노트마다 써뒀다고 한다. 내가 처음 들었 그 노래도 평범보다는 비범에 가까웠다. 그러니 다섯 곡 말고도 선우정아의 노래 중 사랑을 주제로 하는, 어쩐지 사랑이라 하니 뻔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분명히 무언가 다른, to zero부터 백년해로나 구애 등과 같이 좋은 노래가 참 많다.

 

사실 선우정아의 노래 하나하나가 모두 일기 같다. 항상 그래왔듯 선우정아와 그의 노래는 어제와 오늘의 나를 위로했고, 내일을 위로할 것이다. 반복해서 들어도 닳지 않는 그 위로를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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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밍밍한달래차
    •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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