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곳에 가면 - 짙은 아이라인 그리고선, 동대문 야시장 [패션]

동대문 도매시장 낭비 일화
글 입력 2019.12.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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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을 운영하는 친구를 따라 오랜만에 동대문 야시장을 다녀왔다. 그곳의 유명한 골목식당에서 김밥과 가락국수를 먹고 있노라니 지난날 도매시장에서 낭비의 한 획을 그은 일화가 떠올랐다.

 

오래전, 동대문 야시장의 도매 옷을 구매하는 것이 잠깐 유행한 적이 있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그때 한참 잡지와 인터넷에 “도매시장에서 호구 되지 않는 법”이라는 기삿거리가 즐비했고, 도매시장의 어느 곳이 소매상에게도 친절하다는 등의 에디터의 믿음직한 여러 팁이 많았다.

 

도매시장에서 판매상인 것처럼 해서 옷을 사면 소매로 사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며, 예쁜 옷들을 많게는 80% 이상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 그 기사를 접했던 난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하필 그때 또 내가 다녔던 회사가 동대문시장 바로 맞은편이었다.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당연히 친한 동료와 난 퇴근 후에 직접 그 도매시장을 경험해보기로 하고선 둘 다 설레서 그날 하루 업무를 그동안과 비교하면 무진장 빠르게 처리했던 것 같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둘 다 보따리장수처럼 큰 가방을 하나씩 어깨에 동여매고 운동화를 신은 채, 눈썹 정리와 아이라인을 다시 진하게 고쳐 그린 뒤, 약간의 긴장과 함께 일명 센 언니들이 즐비하다는 도매시장으로 향했다.

  

여러 블로그와 잡지에 그려진 약도대로 찾아간 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들을 본 우린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야, 다 초짜야... 우리처럼 잡지보고 왔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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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도 진짜 장사꾼이 아닌 급 회사업무를 마무리하고 온 듯한 우리 또래의 많은 여성이 서로들 눈치를 보고 옷을 고르는 것이 누가 봐도 어색해 보였다. 아마 옷을 고르는 동안 우리도 그러했을 듯하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그 매장 안을 들어가기도 전에 사장인 듯한 아주머니가 손님들을 흘기며 얘기했다.

 

“대체 누가 어디에 뭘 올렸길래 이렇게 파리떼처럼 몰려왔어? 아, 짜증 나.”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싸가지없고 앙칼진 말투. 여자의 저 말에 우리 둘은 흠칫 놀랐다. 아무리 옷을 업으로 하는 판매상이 아니더라도 어찌 됐든 옷을 구매하러 온 손님들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무시무시한 말을 서슴없이 해야 되나 싶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마음에 역시 도매상들은 생각보다 무지 세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말을 듣고도 우린 매장으로 들어갔다. 씩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마저도 아마 그 사장한텐 초짜인 게 분명 다 드러났을 것이다. 처음 가본 도매전문 매장의 가격은 정말 신세계였다. 치마 하나가 1,500원, 바지가 3,000원, 레깅스가 다섯 묶음에 3,500원, 괜찮은 재킷 하나가 5,000원 정도였다.

 

인터넷쇼핑몰에서 봤던 것 같은 원피스 하나가 4천 얼마였으니 우리 둘 다 입이 떡 벌어져선 헤벌쭉 거리며 온 매장을 돌고 돌았다. 도매시장은 입어보는 것이 안 됐고,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소위 깔별로 괜찮다 싶은 건 꼭 쟁여야 한다는 에디터의 팁을 떠올리며 우리는 열심히 각자가 괜찮다 생각하는 품목들을 바구니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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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고른 옷들을 봐주며 이건 너무 짧다, 저건 너무 길다 등등 혼신의 힘을 다한 충고를 주고받으며 옷을 고르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각자 바구니 두 개씩을 양손에 들고 있었고, 치마부터 시작해서 재킷, 롱재킷, 원피스 등 겨울 빼고 3계절을 다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너무 많은 듯싶었지만, 이렇게나 싼데. 여기서 안 사면 소매로 사야 하는 우리만 더 손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다 사기로 마음먹었다. 계산하기 위해 대기줄에 있었을 때 우리 앞에 다른 손님들은 우리만큼 쇼핑을 많이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많아 봐야 바지 두 개, 티셔츠 두 장 정도? 계산을 마친 뒤, 사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엔 계산해줄게, 다음엔 오지 마요.”

 

역시나 그 앙칼진 사장의 뾰족한 말에 맞서서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냥 도매시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나처럼 궁금해서 한 번쯤 와본 걸 텐데. 동대문 시장에 대한 글을 올린 에디터를 원망하며 아마 그 손님들은 다시는 그 무섭고 기분 나쁜 도매시장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 우리 순서가 되었고, 양쪽에 나누어진 계산대에 우리는 우리가 넣은 지도 모를 옷가지들의 금액이 합쳐지고 있는 포스 창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레깅스를 찍고 난 후 내가 계산할 최종 금액은 대략 18만 얼마였다. 동료는 22만 얼마. 둘 다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큰 보따리 가방에 하나씩 넣었다. 사장도 별말 없이 계산해준 뒤,

 

“언니들, 모레 물건 또 오니까 그때 또 와.”

 

하고 찡긋 인사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호구 둘을 잡았다는 듯한 눈빛이었던 것 같다. 후다닥 매장을 나온 뒤, 올 때와는 다르게 빵빵해진 가방을 하나씩 들쳐메고 우리 둘은 가까운 커피숍으로 향했다. 무슨 대단한 모험이라도 끝마친 양 둘 다 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기분 좋게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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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며, 우리 진짜 쇼핑 잘한 것 같다고 연신 신이 났었다. 백화점에서 사면 이게 다 얼마냐면서, 다음에 계절 바뀔 때 또 가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은 정말 똑 부러지게 좋은 옷들을 무지 싸게 잘 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들고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앞에서 자랑스레 옷가지들을 풀어놓았다. 엄청 알뜰하게 쇼핑했다며 자랑하는 나의 귓가에 엄마의 고함소리와 등짝 스매싱이 함께 날아왔다. 있는 옷도 안 입으면서 이 많은 옷은 대체 뭐하러 사왔느냐는 엄마의 야단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껄껄 웃었다.

 

그때 아마 성인이 된 이래 제일 많이 혼났던 것 같다. 내가 사온 옷 중엔 엄마를 위해 사온 옷들도 있었지만, 엄만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이건 순전히 엄마와 나의 취향 차이일 거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애써 나 자신을 계속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철딱서니 없게도 말이다.

  

그런데 옷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이런 옷도 샀나 싶을 정도로 과한 옷들이 많았다. 파티보다 회사출입이 당연히 더 많은 내가 대체 왜 파티의상 같은 드레스를 산 것인지. 그것 말고도 언젠간 입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건지, 평소에 즐겨 입지도 않는 스타일의 옷들이 여러 벌 있었다. 레깅스도 평소 검정 레깅스만 착용하는 내가 호피무늬가 새겨진 화려한 번 아웃 레깅스까지 섭렵했다.

  

기억나지 않는 품목들이 이제야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놀라게 한다. 말도 안 되는 품목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서 같이 갔던 동료에게 보냈더니 나보다 더한 의상들을 찍어 답장으로 보내왔다. 둘 다 정신이 나갔었다며 서로의 구매품목 사진을 보곤 빵 터졌다. 그리고 가만 보니 옷의 재질이 생각보다 그렇게 썩 좋지 않다. 바지 같은 경우는 한쪽이 우는 부분도 있었고, 왠지 블라우스는 한번 입으면 찢어질 것만 같다.

  

정말 잘한 쇼핑이 맞는걸까라는 생각에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무지 잘산 것 같은데 막상 내일 입으려고 보니 입을 옷이 없다. 거기서 18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내가 산 이것들은 대체 무엇들이지? 하나하나 집에 있는 옷들과 매치를 해보는데 영 신통치 않다. 마음에 안 든다. 그렇지만 환불은 안된다.

 

갑자기 저 옷들이 싫어진다. 옆에서 지켜 보던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찬다. 그제야 나는 철없는 쇼핑으로 내 피 같은 돈 18만 얼마를 탕진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시 도매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 큰 매장에서, 그 많은 옷들 사이에서 원석을 골라내어 소매상에게 판매하는 이의 눈썰미는 아무나 달고 있는 게 아니구나.

 

다음날 어떻게든 입어보겠다며, 곧 찢어질 것만 같은 베이지색 시스루 블라우스와 검정 데님을 애써 매치해서 입고는 터덜터덜 회사를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와 같은 시무룩함으로 나를 맞이하는 동료를 보고는 끝내 웃음이 터져서 둘 다 한참을 웃었다. 알고 봤더니 그 친구도 나랑 똑같이 엄마한테 무진장 혼나고 친오빠한테 한 시간이 넘는 핀잔을 듣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미역 같은 캉캉 드레스는 대체 왜 샀는지 모르겠다며, 중고나라에 올려서 팔아버리겠다는 웃기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 후 우리는 두 번 다시 도매상을 가지 않았다. 우리의 쓸데없는 낭비벽을 체감하고 나서야 다 자기의 경험치가 주는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고,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우리는 우리가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는 소매업체에서 옷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의류 쪽에 지인이 생기면서 도매상들이 소매자를 왜 반기지 않는지에 대한 당연한 이유도 알게 되었다.

 

거래하는 단위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그건 좋고 싫고를 떠나서 생각할 문제였던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쇼핑할 수 있는 곳에서 좋은 가격을 찾고, 내게 필요한 품목을 잘 고르면 그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그때 우리가 샀던 옷들 중 한 두 가지를 빼놓곤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어울리는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 선물하거나, 중고나라에 올려서 팔거나 그냥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필요도 없는 옷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사서 쓰레기만 만든 것이다. 그때 당시 꼬꼬마 직장인 시절 우리에겐 18만 원, 22만 원은 꽤 큰돈이었는데 그 돈을 우리는 하늘에 흩뿌렸다.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그 경험치의 값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둘 다 그 이후로 옷을 살 때 진짜로 정신 바짝 차렸으니까 말이다. 철없이 귀엽게 돈을 흩뿌린 경험 덕이다. 요즘은 쇼핑하기 전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지나친 구매로 낭비를 하는 건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은 쇼핑보다 그 돈으로 나를 값지게 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래서 옷에 대해 큰 욕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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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간혹 이 생각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곧 다가올 블랙프라이데이의 시작.. 벌써 시작된 곳도 있다. 블랙프라이데이... 큰일이다..

 

오랜만에 그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너의 블랙프라이데이는 괜찮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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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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