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등만이 꿈과 환상의 나라를 만들 수 있나요 [영화]

알라딘, 라이온 킹, 겨울왕국 2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19.11.30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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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라이온 킹>, <겨울왕국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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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재생산은 사회의 진보를 반영한다. 2D 셀 애니메이션의 원작을 실사화하는 프로젝트에서 원작에서 지적된 인종차별·성차별적인 요소를 없애고 PC(Political Correctness)한 방향으로 줄거리를 개선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새롭게 제작되는 3D 애니메이션에서도 반영된다. <주먹왕 랄프 2>에서는 ‘힘센 남자가 등장하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디즈니 공주의 조건이라며 재치 있게 셀프 디스를 하고, <공주와 개구리>, <모아나>와 같이 백인이 아닌 유색 인종의 여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토이 스토리>의 '보핍'은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크고 풍만한 드레스를 올해 개봉한 4편에서 벗어 던지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며 디즈니가 제시하고 있는 능동적 여성상의 일례로 가담했다.


물론 그럼에도 디즈니가 지향하는 PC가 아직 불충분한 수준이라는 견해도 다수 존재한다. 디즈니의 공주들은 여전히 코르셋 등 활동을 방해하는 불편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짙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큰 눈과 하얀 피부 등 전형적인 백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고수하고 있다. 실사화된 <알라딘>에서의 자스민의 복장이 그랬고, <겨울왕국>에서의 엘사와 안나가 그랬다. 또한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라이온 킹>의 암사자들은 여전히 수사자들의 전투를 응원하고 그들이 가져올 평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조연으로 머무른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서 디즈니의 현재가 변화의 중간 단계에 놓여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디즈니의 개선된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선 보수성을 일정 정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자스민이 술탄이 되는 새로운 결말은 수많은 여성에게 용기를 주었고 <겨울왕국>은 여전히 퀴어 프렌들리를 기치로 걸며 다양성의 가치를 세계에 외친다. <라이온 킹>의 보수성 역시 암사자들이 싸우지 않고 집을 지키는 것이 사자들의 순리라면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디즈니가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디즈니가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2019년 디즈니의 야심작, 실사화된 <알라딘>과 <라이온 킹> 그리고 <겨울왕국 2>에서는 공주가 능동적 여성상으로 재탄생되고 주인공과 악역의 인종적 구분을 암시하게 했던 요소가 사라졌으나, 오랜 시간 디즈니를 얽매던 계급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서사와 캐릭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한다. 여전히 일인자만이 유토피아를 건설하며 그들을 받쳐주기 위해 일인자가 아닌 이인자는 악역으로 기능하다 권선징악이 확실한 세계관에서 징벌을 받는다. 이인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극에서 지워진다. 변화의 중간 단계라고 참작하기에는 이데올로기가 구현되는 양상과 방향이 너무도 뚜렷하다. 세 영화에서 계급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으며 이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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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은 실사화를 거치며 여성의 임파워링 서사를 비중 있게 덧입혔다. 자스민은 새로 추가된 넘버 ‘Speechless’를 통해 강요된 침묵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종국에는 술탄으로 즉위한다. 자스민이 부르는 ‘Speechless’의 가사이기도 한 ‘Stay in your place(네 자리를 지켜라)’라는 대사는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 내는 자스민에게 향해지는 여성 억압을 상징하며 이는 그를 대상으로 악역인 자파를 통해 발언된다. 영화는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어떤 식으로 착취하는지 보여주고, 침묵하지 않겠다는 자스민의 선언을 클라이맥스에 위치 시켜 계급 구조의 전복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런데, 이 대사는 일인자인 술탄이 정복욕을 드러내는 이인자 자파에게 충고할 때 한 번 더 발언된다. 그러나 이는 자파가 자스민에게 말했을 때처럼 부정적으로 암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혜로운 술탄의 올바른 충고로 기능하며 거기서 촉발된 자파의 반항심은 그의 악행으로 이어지는 동기가 된다. 즉, 자파의 악행의 동기의 중심에는 일인자인 술탄이 이인자인 자신과의 계급을 구분한 것에 대한 모욕감과 복수심이 있다. 그리고 이는 전복되지 않고 절대악으로 규정된 채 심판을 받는다.


자파의 악한 속성은 민중을 위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켜 영토를 넓히고 독재하려는 이기적인 정복욕에 있는 것이지, 일인자의 자리를 탐내는 속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지도자상과 그렇지 않은 지도자상을 제시하기 위한 의도였다면 지도자와 지도자를 비교하여 지도의 방식을 구별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기득권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동일 선상에 두고 권력에 대한 욕심의 유무로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전제부터 모순적이다. 그러나 자파가 ‘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은 악행의 동기이자, 악행의 중심 내용이며, 악행의 결과인 징벌로 이어지는 데다가, 자리를 탐하지 않은(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인자를 추켜세우는 용도로 기능한다. 작품의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인공인 일인자의 선량한 애민 정신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영웅주의적 위계에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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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역시 마찬가지의 플롯으로 전개된다. 형 무파사가 차지한 왕의 자리를 넘보는 동생 스카는 이인자이자 악역으로 위치된다. 자파와 비슷하게 그의 욕망은 불순하다.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파사와 심바를 내쫓으려 하고 결국엔 무파사를 죽이기까지 하며 후계자 심바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스카는 적대의 이유가 자파보다 더 구체적이다. 그가 사는 땅은 불모지이며 그와 함께 사는 하이에나들은 굶주린다. 그런 처지에 대해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한탄하는 스카는 일인자가 되어 풍족한 삶을 누릴 기회를 좇는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이 상황에서의 스카의 불만은 어두컴컴한 동굴과 위압적인 목소리로 무섭게 연출되며 그의 악한 캐릭터를 구성하는 하나의 속성으로 기능한다.


‘Circle of life’라는 타이틀로 삶의 순리를 강조하는 이 영화에선 계급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주제 의식이 특히 직접적이고도 강압적으로 전달된다. 초원의 모든 동물이 한데 모여 사이좋게 공존함으로써 동물의 왕 사자의 주관하에 평화가 이뤄진다는 비현실적인 메시지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Circle of life’와 함께 천연덕스럽게 전달되는 동안, 굶주린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노리는 당연한 순리는 ‘자리를 지키지 않는’ 악역의 몹쓸 짓으로 취급된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자연의 순리는 철저히 지배 계급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자연의 순리는 ‘사회적 합의’처럼 지배 계급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피지배 계급의 권한을 위축시키는 근거로 쓰이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그들의 폭력적 방식을 제하고도 동기 자체로 징벌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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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개봉한 <겨울왕국 2>는 지배 계급에 반하는 피지배 계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작품과 다르다. 악역으로는 그나마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인 선왕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으로써 언급되는데, 그는 백성들이 왕정에 의존하게 하기 위해 자연을 해치는 댐을 건설하여 의도적으로 민생을 힘들게 하고 그것을 뒤늦게 안 엘사와 안나는 댐을 부수고 평화를 되찾아온다. 자리를 지키지 못해 징벌받는 이인자는 등장하지 않으나 여전히 민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엘사와 안나의 안내에 맞춰 대피하고 재앙에 두려워하다 평화를 되찾은 나라에서 엘사와 안나의 귀환에 환호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 전부이다.


선왕이 이용한 민중의 의존적인 심리는 정보 접근성이나 생활의 안정성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민중의 계급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를 지배 계급이 악용하여 극의 위기를 불러왔다면 서사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전복적 사건은 피지배 계급을 주체로 이뤄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마저 왕족인 엘사와 안나에게 내맡기며 민중은 그들의 전복에 박수 치는 관객으로만 위치된다. 민중이 가장 분노해야 할 사안에서 민중의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야기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이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기치를 의미 있게 강조하는 영화인만큼, 다양한 계급의 주체가 제시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즉, 세 영화에서 일인자가 아닌 이인자 혹은 민중은 두 가지 방식으로만 제시된다. 일인자에 대항하여 징벌을 받는 악역이거나, 일인자에 대항하지 않으며 그가 구축한 유토피아를 평화롭게 살아가는 민중이거나. 자리를 지키지 않거나 세상의 순리에 반했을 때 해피엔딩을 맞는 민중은 제시되지 않는다. 하층민이었다가 결혼으로 인해 계급이 상승한 알라딘 역시 자리에서 벗어났다기보다 술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흡수된 것에 가깝다. 순수 혈통의 왕족만이 세상을 구하고 변화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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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가 지향하는 PC는 상업성과 대중성을 최대한 고려한 채 구현된다. ‘PC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PC를 강조하는 작품이 새롭게 재편된 디즈니의 세계관에서 점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그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나름 긍정적으로 평할 만하다. 이는 디즈니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적 계급을 분화하고 위계를 공고화하는 이데올로기는 이에 관련한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다수 작품의 서사의 핵을 담당한다. 디즈니가 제시하는 다양성의 가치와 피지배 계급의 권리는 순수혈통 왕족만이 관철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PC는 어떤 의미로든 계급을 타파하는 움직임이기에 이는 디즈니의 지향점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비현실적인 것이 기적처럼 이뤄지는 디즈니 영화의 마법처럼 꿈과 환상의 나라는 언제나 민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당연하듯 속삭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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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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