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서” 시리즈 : 누구나의 고독함, I Feel YOU? MYSELF! ② [음악]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아무것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할 때 들었던 노래
글 입력 2019.11.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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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손꼽히게 좋았던 지역들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엔 할 게 없고, 볼 것도 없고, 딱히 맛있는 것도 없는 그런 곳. 그렇지만 나에게만은 최고였던 그런 곳. 나에게 살타(Salta, Argentina)가 그랬다.


수선집을 찾아 찢어진 가방을 맡기고, 이어폰을 수리맡겼고, 기차를 알아보러 기차역엘 갔다. 호스텔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페이스톡을 하고, 부엌에 덜컥 앉아서 차를 마셨다가, 침대에 몇시간이고 드러누워 있다가, 해질녘에 여기저기 기웃대며 산책을 했다. 내가 한국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것들을 내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곳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마치고 나서, 나의 친구들을 만나고, 여유부리기.

  

그래서 그런지 참 남은 사진들이 없다. 같은 호스텔 친구가 나에게 치미추리(chimichurri, 고수 베이스의 아르헨티나 전통 소스)가 다 같은 치미추리가 아니라며 브랜드를 추천해 준 것 - 이 브랜드 찾으러 마트에 가 본 적 없다, 전자센터 밖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10분동안 졸졸 쫓아와서 결국 내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간 놈을 만난 것 – 무서워서 주긴 했는데 당연히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차단했다. 그 놈을 떼어내고 점심 떼우러 간 샌드위치 노상가게 아주머니가 이 곳에 몇 년 살았냐며 퇴근할 때마다 밥 먹고 가라고 하신 것 - 내 여행은 6개월이었다. 여행에선 내가 솔직했는지 거짓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루샤(Iruya, Argentina)에서 만난 독단적인 페루 친구가 자기도 살타에 있다며 끈질기게 연락한 것 - 결국 다른 도시에서 만나주어야 했다, 이런 저런 기억들만 조각져서 남아있다.


(다른 사람에게) 진실한 적이 없었던 나는 (나에게) 진실했다.

(다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았던 나는 (나에게) 정성을 다했다.

내 여행이 반 쯤 지났던 시기에 나를 보살폈던 이유로 나는 그 곳을 좋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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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곳이 주는 소리가 있다. 잘 모르는 말들과, 익숙하지 않은 교통수단의 울림, 나에게 생소한 다른 계절의 소리, 그렇지만 살타에서만큼은 원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있을 때는 내 귀에서 이어폰이 떨어지는 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어디를 가도 배경음악이 깔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배경음악이 꼭 그 곳과 어울릴 필요도 없었다. 그 때 내 기분이 끌고 가는 대로 노래를 골랐다.

 

 


엄인호 – 오늘도 하루를 그냥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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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듣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3분 30초가량의 노래는 4문장뿐인 아주 느린 서사를 가진 포크블루스음악이다. “두터운 커튼을 드리우고, 오늘도 하루를 그냥 보내네”라고 거친 목소리로 내뿜는다. 경쾌하면서도 긴 문장은 내 늘어지는 하루를 묘사하는 것 같다.
 
호스텔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던 탁자 하나를 선택해, 늦은 아침을 먹는 순간부터 차를 몇 잔이고 마셔가면서 마당만 바라보고 있다가 햇빛이 슬쩍 내려가기 시작하면 곧 외출하기 힘든 곳에 내가 있음을 깨닫고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대면서 이 목소리를 들었다. 뭐가 “괜시리 울적”한지, “갑자기 가슴이 미어저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울상을 짓고 있지도 않은 나에게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Half moon run – Warmest regards (Extended Ver., Demolition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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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Demoltion, 2015)’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화 자체를 다들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OST 전곡까지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잃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데이비스는 슬퍼하고 싶고 울고 싶어서,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려고 모든 것을 분해한다. 아내가 고쳐 달라고 말했던 냉장고를 시작으로 아내가 없는 집까지 모든 걸 부순다.
 
하프문런이 포크기타와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노래는 시작과 끝 사이의 알 수 없는 궤도에 대해서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러나 영화처럼 역시 차분한 표정을 한 멜로디의 안에 있는 가사는 내 모든 속을 긁어내는 듯하다. 노래 전반에 4비트만을 거의 유지하는 드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노래하면서 “Until a voice beyond the grave kept calling more, 그 무덤 너머의 목소리가 날 계속해서 부르기 전까지는”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나를 툭- 툭- 건드렸다.
 
그래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도 머릿속에 아무런 것도 표상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Rhodes – Sleep is a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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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ay here I’m still waiting for the sun. 나는 여기 누워서 아직도 태양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나도 볕이 드는 마당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엇에 지쳤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었기에 빛을 빛으로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서 계속 쳐다만 봤다. 단 두가지 악기, 피아노와 목소리에 페달을 곡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밟아 놓은 듯, 울림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그래서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울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You said sleep is a rose, but I wanna tell you it only brings me fear. So I hope morning comes ‘round soon. 당신은 잠이 한 송이의 장미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두려움일 뿐이에요. 그러니 곧 나는 아침이 오길 기다려요.” 글쎄, 나는 잠조차도 무섭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낄 대상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침을 먹는 순간에도 아침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Gilbert o’ Sullivan – Alone again (natur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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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으로 쪼개 경쾌한 리듬에 이 남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떠나보냈고, 이번에는 신부에게 버림받았다고 춤추고 있다. “I cried and cried all day. 난 울고 또 울었어.” 울 수 있는 시간들은 지났다. 이제 자연스럽기까지(naturally) 한 이 감정이다. 그저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오늘도 새삼스럽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를 끝내고 나면 그랬다.
 
오늘 밤이면, 내일 새벽이면, 또 떠날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도 또다른 배낭족이 되어 다시 모르는 도시에서 처음보는 호스텔의 사람들과 섞여 아침을 먹고, 또 모르는 사람들과 버스를 탔고, 기차를 탔고 ‘모름’을 향해 나아갔다. 나아갔나? 뒤돌아갔나? 매 순간 순간이 다시 혼자가 되는 연속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러웠다. 이 남자와 “Alone again, naturally. 당연하게 또 혼자가 된 거야.”라며 속삭였다.

 

The manhattans – La La La Wish you upon a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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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연결을 마치고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보였다. 노래가 나오는 순간 없던 별도 보이기 시작했다. 귀에서도 반짝반짝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tra-la-la’하고 쌓여있는 화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의 바깥선을 은하수가 그려가는 듯했다. 1962년부터 활동했던 the manhattans라서 마지막에 굵직한 목소리가 나레이션을 한다. 참, 사람이 웃겼다. 이런 건 또 못 참겠어서 노래를 잘라버리곤 침대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눈 앞에서 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난 또 당연하게 혼자가 되었다.
 
 

종현 – 하루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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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던 한국생활 시절에 유난히 힘들었던 날, “서툰 실수가 가득했던 창피한 내 하루 끝엔 너란 자랑거리 날 기다리니”라며 내 시간들을 마무리해주던 노래였다. 지쳐서 말 한마디조차 내뱉기 힘든 날, 뮤직비디오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내 하루가 끝났다. 내 입에서 나온 듯한 한숨으로 음악의 문을 열고,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라고 나에게 직접 이야기해주던 노래가 있었나 싶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상관없는 이 곳에서도 뭔지 모를 피곤함에 절어 있을 때, “맘껏 울 수도, 또 맘껏 웃을 수도 없는” 이 감정의 구속과 자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나를 잠시나마 놓아주었다.
 
지친 나를 감싸주었던 한국에서의 그 때처럼. 다시 자려고 호스텔의 철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노래를 읊조리곤 했다. 그리고 이 감정의 폭풍이 또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답장하고 싶었다.

 

자우림 – 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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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앨범아트 속 여자는 반짝거리는 옷을 입었지만 어둠으로부터 소외받았고,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어느 곳도 보지 못하고 그 사진과 ‘샤이닝’이라는 제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순간마다 내 스스로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느꼈다. ‘여자가’, ‘혼자서’, ‘어린 나이에’, ‘직접 돈을 벌어서’, ‘휴학하고’, 이 모든 수식어들이 나를 꾸며냈고, 나의 소식이 되어서 직접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 곳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냥, 그런 내 마음을, 입 밖으로 표현해준 노래였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도 나를 곁눈질하고 괜히 인사해보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특이한 행보를 가지고 있는 취급을 하며 괜히 연락오는 사람들, 점점 나는 누가 나를 안아주기보다 나를 채워가면서 이 감정을 벗어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 이 노래 속에 숨어있었다. 그렇게 또 침대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지쳐 있었나 보다. 나를 방해하는 것들을 쉬이 무시할 수 있어서, 나는 살타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선명한 훅이 없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특별할 것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누구나 이유없이 힘이 빠질 때가 있고, 눈물나지 않는 괴로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원인도 해결책도 그 무엇도 모를 그 순간이 예고없이 찾아온다. 나는 한없이 밝은 사람이었고, 잘 견뎌내는 사람이었고, 극복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이런 긴 무기력이, 그것도 여행 중에, 어느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와버렸다. 그래서 나는 살타로 나를 내던졌다.

감정이 내 행동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 단어로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을 때, 그만큼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 때, 나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꾸며낸다. 그리고 다시 그 감정이 찾아왔을 때, 감정이 지나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지금의 조금은 또다른 감정을 충분히 보다듬어주기 위해서 다시 그 목록들을 재생한다. 곡제목들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만 보아도 힘들어질 때도 있고, 그 때의 나를 잘 지나왔다고 속삭이는 미소가 지어질 때도 있다. 혹은 이제서야 당시의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이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다. 지나간 나를 다시금 위로하기도 하면서 나는 오늘의 나를 또 잘 느껴보려 한다. 내가 저녁까지 차를 마시면서, 마당을 쳐다보기만 했던 살타의 그 날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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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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