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쉽게 가면을 벗고 혐오를 보일 수 있는 이유 [사람]

남성혐오, 비장애인혐오, 성다수자혐오는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1.2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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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맨 처음 쌍욕을 한 대상, 동생


 

싫어하는 인간 유형을 말하라고 하면 바로 대답할 수 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대하면서,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대하는 것이 정말 비겁한 것 같아 싫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생각하고 경계해왔다.

 

하지만 나도 약한 사람 앞에서는 너무 쉽게 악독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동생이랑 싸울 때였다. 그동안 동생에게 쌓였던 게 폭발했고 그 순간 ‘이게?’라는 생각과 ‘괘씸하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자 나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 그 아이에게 온갖 ‘년’으로 끝나는 욕을 올려붙이고 있었다.


문을 닫고 방을 들어와서 스스로 너무 놀랐다. 맹세코 저 정도의 욕을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서 그런 심한 말을 처음 들어본 대상이 나보다 어린 동생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동생은 아무리 화가 나도 나에게 욕을 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할 것이다. 내가 언니니까. 동생은 언니에게 욕해본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실천해볼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그런 동생과 달리 나는 그렇게 심한 말들을 아주 손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동생은 속된 말로 만만했기 때문이다. 내가 쌍욕을 면전에다 내뱉어도 나에게 어떤 위해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약자 앞에선 우리는 손쉽게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다.


 

동생과 화해하면서 들은 말인데, 동생은 내 욕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기보다는 놀랐다고 했다. 동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가 저런 욕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어. 왜냐하면 언니는 약자에게는 심한 말 안하는 게 언니 신념 아니었어?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옛날에 본 가정폭력범의 기사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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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내와 자식을 쥐 잡듯이 폭행하던 사람이,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가정폭력범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대조적인 평을 한 사람이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편다는 말처럼, 그 사람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이에게는 멀쩡히 친절과 매너를 베풀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만만한 사람, 약자에게는 어떤 충동을 참지 않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도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아저씨가 봉투를 공짜로 달라고 한 걸 거절한 이후로, 나만 보면 시비를 건다거나 그 큰 눈으로 째려보는 아저씨 손님이 계셨다. 하도 그러니 그 아저씨가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걸 봐도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점장님과 같이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큰 눈으로 사람을 쏘아보던 아저씨는 어디 가고, 점장님 앞에서는 순한 양 그 자체였다. 심지어 봉툿값도 점장님이 요구하시기 전에 알아서 내셨다!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점장님은 허허 웃으며 저 사람이 이 동네 천사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나에겐 폭력적인 사람을 누군가는 평생 천사로 기억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아마 점장님이 일개 아르바이트생이었으면 그 아저씨가 점장님께 그렇게 순한 태도를 보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혐오는 약자를 향할 수밖에 없다.

혐오를 내뱉는 주체는 자신들이 위해를 겪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혐오’라는 주제가 큰 화제다.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청소년혐오, 성소수자혐오. 등등 혐오를 받는 대상의 공통점을 바로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다. 약자이기에 더 손쉽게 혐오에 노출된다. 그렇기에 사실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혐오, 비장애인혐오, 성인혐오, 성다수자혐오는 존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미 사회에게 강자인 사람들은 ‘혐오’를 받을 일이 별로 없다. 이미 사회적 틀이 그렇게 짜여있기 때문이다.

 

남성혐오를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최근에 ‘미러링’으로 남성혐오 문제도 대두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전에는 예를 들어 잠자리를 많이 가지면 남자는 능력으로 추대 받지만, 여성은 ‘걸레’ ‘꽃뱀’라는 식으로 모욕이 따라다니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뿐 아니라, 남자가 돈을 많이 벌고 외제차를 끌면 그 역시 능력이나, 여성이 그러면 된장녀, 또는 이기적인 년이 되는 풍조가 존재했다. 이것을 통해 ‘같은 일’을 한다 해도, 그 행동의 주체가 약자냐 강자냐에 따라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존재가 아이라는 것만으로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 노키즈존에서는 불이익을 받는 대상은 굉장히 적은 수이다. 카페나 식당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성인일 것이며 출입 제한을 받게 된다면 아이와 부모 정도라는 걸 생각해보자. 그리고 환향년, 된장녀, 김치녀라는 수많은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에서는 나라의 절반 정도의 인구가 그 혐오 표현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비하의 의미로 장애인 같아라는 표현을 쓰는 것 역시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그 지칭 받는 존재에서는 제외되게 된다.

 

즉, 혐오라는 것은 소수자이자 약자들에게 향한다는 건 매우 자명한 일이다. 혐오가 기득권층과 다수에게 향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욕으로써 의미가 성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스스로 침을 뱉는 격이 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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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닥터프로스트 405화 중 한 장면

 

 

최근에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서 혐오에 대한 의견으로 나온 장면이다. 그렇다. 혐오라는 것은 사실 모두에게 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악랄하게도 적은 수와 소수자 계층에만 주로 향한다. 그렇기에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대다수에게는 혐오란 사실 아주 안전한 칼날과도 같다.

 

 

 

약자에게 칼날을 휘두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페미니즘 운동 구호 중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생각’에서 행동이 끝나지 않고 ‘말하고’, ‘설치기’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이게 옳지 않은 임을, 이건 혐오임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우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그러지 않으면 혐오 표현에 해당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중2병, 장애인 같아, XX년이라는 표현을 손쉽게 내뱉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소수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도 누군가가 설치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왜 저렇게 예민해’, ‘프로불편러네’라고 쉽게 판단하는 태도를 삼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왜 때문인지, 생각해보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니까,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니까,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인 거니까 등으로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이 생겨야 개인이 약자 앞에서 가면을 벗어도 노골적인 맨얼굴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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