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이 꼭 존재해야 하나요? [시각예술]

메모 아크텐이 그리는 가상의 세계
글 입력 2019.11.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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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예술가, 음악가, 연구원으로 소개하는 터키의 작가 메모 아크텐(Memo Akten)은 컴퓨터를 그의 매체로 삼아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인공지능을 기초로 하여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작품 내에 녹여낸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실제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을 컴퓨터로 변환하여 가상의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바꾸어내는 번역의 과정을 보여준다. 2017년에 작업한 Dirty Data의 경우, 구글 이미지 검색을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테레사 메이, 나이젤 패리지, 마린 르펜, 블라디미르 푸틴 등 유명인사의 얼굴을 조합하여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해당 작업에 대해 “어떠한 것도 깔끔하거나 잘리거나 필터링되거나 정렬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이미지가 실제로 피사체, 혹은 다른 사람, 다른 객체, 장면등을 포함하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구글 이미지는 이와같이 마법 가마솥에 버려진다”(Not in anyway cleaned, cropped, filtered, aligned or sanitised. Not even checked if the images do indeed contain the subjects, or anyone else, other objects, scenes etc. Anything remotely related as deemed by Google image search is dumped into the magic cauldron as is.)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작품은 실제 존재하는 이미지 데이터들을 수집하여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키고, 또 다른 이미지로 바꾸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다. 이처럼 메모 아크텐의 작업은 인간과 세상 사이를 기술을 통해 매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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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Learning To See라는 작업으로, 한국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Learning To See는 인공지능이 꽃, 우주, 구름과 같은 다양한 세계의 모습들을 학습하고 카메라에 비친 사물들을 그러한 형태로 바꾸어내는 작업이다.

 

이는 몇 가지 지점에서 흥미로운데, 일단 후처리된 이미지 자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표적으로는 흉내내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세상을 지각할 때,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세계를 상상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꽃의 모습과 우주의 모습과 구름의 모습 등을 비슷하게 상상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과 일견 닮아있다.

 

메모 아크텐의 작업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꼬집는다. 상상으로만 해왔던 가상의 세계 창조를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상의 세계는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꽤나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다. 전선, 이어폰, 수건 등 실제로 카메라 아래에 놓여있는 사물을 움직이면 그대로 스크린에 비춰보이는 가상의 세계가 변형된다.

 

이는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파도의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손 모양의 움직이는 꽃잎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실제로 관람객들은 일견 세계의 모습과 닮아있지만 완벽하게 가상인 세계를 만들고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이면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재현해낸 이 작업은 세계가 꼭 존재해야만 지각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상상 속 세계의 모습과 Learning To See의 스크린에 비춰진 세계는 분명 다르다. 상상 속 가상의 세계는 다른 이와 완벽하게 공유할 수도, 실제로 지각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가상 세계의 모습은 언제든지 변형 가능하며 누군가와 공유할 수도 있는 전달가능한 경험이다.

 

이 세계가 존재한다, 혹은 지각 가능하다고 이해되는 이유는 이러한 특성이 가장 클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고 지각할 수 있다. 아크텐의 작업은 이러한 세계에 대해 당연해보이는 귀결에 의문을 갖도록 한다. 만약 가상의 세계 역시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것은 가상인지, 혹은 실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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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작업을 통해서 이와 같은 가상적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처리된 이미지는 실제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이미지, 사물, 세계와의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 덧씌워지는 이미지 역시 세계의 모습을 담보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이후 현실과의 지표적 연관이 끊어졌다고 통탄해하는 매체 철학자들에게 메모 아크텐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것 같은’ 이미지로 답한다.

 

Learning To See의 작업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대로 본다.’는 최첨단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의식 속에서 보는 그림은 외부 세계의 거울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와 이전의 신념에 기초한 재구성이다. 이 작업은 자기 긍정적 인지 편항,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없는 능력,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광범위한 탐구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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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꼭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세상의 모습을 보고 창조한다. 이것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를 결과물로서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 말이다.

 

메모 아크텐의 작업은 이러한 예술적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을 때 더욱 많은 생각을 불러오곤 한다. 또한 더이상 기계와 인간의 삶, 그리고 기계와 예술적 창조가 멀리 있지 않은 지금에는 더욱 그러하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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