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꿈을 믿나요? [사람]

꿈꿔본 자는 내 하루를 좋은 것들로 채우려 한다.
글 입력 2019.11.17 00: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dreams-2904682_960_720.jpg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어쩔 땐 기억이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고, 어렴풋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생각나는 꿈이 좋은 꿈이면 그날 하루가 유독 기분이 좋다. 누군가 꿈이 잘 맞느냐고 묻는다면, 그거랑은 별개의 얘기라고 말하고 싶다. 꿈이 잘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냥 나는 꿈을 잘 꾸는 편이고, 꿈을 꾸는 자체가 재밌다. 특히나 줄거리까지 있는 꿈을 꾸고 나면 무슨 드라마나 몇 컷 분량의 영화 즈음의 상상도 해볼 수 있으니까.

 

내 꿈의 일화 중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날은 오랜만에 컴백하는 어느 가수의 콘서트 날이었고, 나는 그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렸던 광팬이었다.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너무도 생생했던 검은 새들의 날갯짓과 우수수 떨어지던 화살들에 검은 새는 하나둘씩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날 저녁 나는 반드시 그 공연에 갔어야만 했지만, 자꾸 생각나는 찝찝한 꿈에 개꿈이려니 생각하며 공연장을 향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에게 꿈 얘기를 하며 오늘은 조용히 공연만 보고 가야겠다며 작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공연이 끝나면 어김없이 우리는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홍대의 골목 어귀의 단골집에서 막걸리와 감자전을 먹곤 했지만, 그날은 그 행복한 코스를 다음으로 미루었다. 꿈이 원체 찝찝했으니까.

 

 

concert-1149979_960_720.jpg

 

 

공연 시작 전, 입장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한다고 하였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주최측에서 나누어주는 이벤트 번호표를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나의 가수는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타 줄을 미친 듯이 튕겼고, 우리는 모두 그의 현란한 기타 피킹에 그만 넋을 잃고 황홀한 지경에 이르러 각자의 나이를 잊은 채 공연이 끝날 때까지 꺅꺅거렸다.

 

목이 쉰 채로 공연의 마지막 앵콜곡까지 따라부른 우리는 가수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주섬주섬 옷가지와 가방을 챙겼다. 이제 막 나갈 채비를 하는 관객들에게 주최측은 잠시 뒤 있을 상품이벤트 당첨자를 발표할 예정이니 모두 자리를 지켜달라는 방송을 했다.

 

대다수 사람의 표정은 90%가 빨리 진행하고 끝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 90%에는 우리도 속했다. 조금 전 보았던 공연 때의 환희에 가득 찼던 표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초롬한 얼굴들로 무대 위 주최측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아마 그때 우린 모두 같을 생각을 했겠지.

 

뭐, 설마 당첨되겠어?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께 중요한 건 1등이시죠? 네네, 바로 10등부터 4등까지는 빠른 속도로 발표하겠습니다!”

 

킥킥 거리는 관객들 사이 당첨자가 속속 발표됐다.

 

“10등! 네~209번... 7등!~ 6등!.... 4등! 네 축하합니다. 174번!”

 

“꺅! 야! 나야 나!!!!!!!”

 

내 옆의 친구가 꺅꺅 소리를 지르며 냅다 무대 위로 뛰어간다. 내가 그의 번호를 확인할 새도 없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녀는 무대 위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대체 당첨도 안 되는 이벤트 같은 건 왜 한다고 해서 가는 사람을 붙잡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던 불과 5분 전의 입 툭 튀어나온 뾰로통한 애는 온데간데없었다.

 

선물을 받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던 친구의 입이 귀에까지 걸려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무대를 내려온 친구를 보고 그렇게 좋냐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그날 갔던 가수의 싸인 CD와 굿즈패키지를 선물로 받았으니 제법 값진 좋은 선물이다.

 

그다음으로 3등, 2등을 차례대로 발표했고, 이전보다는 확실히 커진 상품에 당첨자의 꺅꺅거리는 비명은 기쁨이 더해져 점점 더 커졌다. 마지막 발표만을 남겨놓은 1등 추첨은 역시 1등 추첨답게 은근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의 그 유명한 팀파니 BGM이 흘렀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남은 1등은 우리와는 너무 먼 얘기이니까. 우리는 그곳을 뒤로한 채, 공연장의 출구로 향했다.

 

 

concert-2527495_960_720.jpg

 

 

“네, 여러분 이제 1등 발표만을 남겨 놓고 있는데요. 1등은 과연 지금 여기 어디에 계실까요? 마카오 여행권을 가지고 갈 그 행운의 1등 주인공은? 바로~~~~~~~~네! 축하합니다! 173번! 당첨되셨습니다!!!!! 어서 앞으로 나와주세요.”

 

나를 뒤따르던 친구가 갑자기 내 등짝을 후려치며 소리친다.

 

“야! 너잖아! 173번 너잖아 너!!”

 

내가 주머니에 번호표를 구겨 넣은 건 대체 언제 보았는지 꼬깃꼬깃해진 내 주머니의 번호표를 꺼내 든 채 손을 번쩍 들고는

 

“여기요!!!!!!!”

 

하고 귀청이 떠나가라 외친다. 아까 자기가 4등 당첨됐을 때보다도 더 신나서 펄쩍펄쩍 뛴다. 아마 그때 그 친구의 한껏 상기된 모습을 보았다면 1등은 누가 봐도 내가 아닌 그 친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1등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내가 1등 당첨의 주인공이 되었다.

 

너무 놀라서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 있었고,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몇 초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등 떠밀며 무대 위로 올려보내 준 것도 174번 4등 당첨의 주인공 내 친구였다. 나는 생각지도 않게 무대위로 올라가 어안이 벙벙한 채, 주최측의 대표님과 악수를 하며 1등 마카오여행권 당첨이라는 커다란 경품피켓을 끌어안고 어딘가에 쓰일지도 모르는 축하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축하를 받고, 무대를 내려오는 나의 손에는 정말로 마카오의 숙소와 항공권이 담긴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나를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우러러보는 그날 관객들의 수많은 눈동자들을..

 

우리는 그 길로 홍대골목 어귀의 단골집을 향했다. 아침에 내가 꾼 꿈이 찝찝해서 이 코스는 오늘 패스하기로 했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 검은 새들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찾아본 꿈 풀이었는데, 검은 새들과 피가 함께 나오는 꿈은 엄청난 길몽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보다도 더 들떠있는 친구는 여전히 본인이 1등을 한 것 마냥 신나서 막걸리를 탈탈 털어 넣었다. 4등 당첨선물은 잘 챙겼느냐는 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가방을 확인하곤, 이내 흥분을 가라앉힌 듯 약간의 평온을 되찾는다. 그러고는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대체 왜? 그대가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게야.

 


plane-841441_960_720.jpg

 

 

그날 그 꿈 같은 에피소드는 한동안 내 주변에서 시끌벅적한 믿기지 않는 화젯거리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한턱내라는 말을 쉴 새 없이 들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서 그 한턱, 많이 쏘며 다녔다. 그리고 나의 마카오여행권은 동반 1인이 포함이었다. 누구와 함께 떠났겠는가.

 

그렇다. 174번 4등 당첨자, 나보다도 더 1등 같았던 내 친구와 나는 잊을 수 없는 마카오여행을 다녀왔다. 4박 5일간 내인생 최고의 사진을 열정적으로 뽑아보겠다는 찍사의 조건을 내걸고, 그렇게 친구는 또다시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나와 마주했다.

 


baby-4338995_960_720.jpg

 

 

이 일을 계기로 더이상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날 하루의 기분을 망치지 않게 되었다. 꿈은 그냥 잠든 동안의 내가 떠도는 바다의 세상 같은 거로 생각한다. 그 바다가 단조로운 일상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뛰어들다 넘어지거나 구르면 좀 괴팍한 정도의 거친 바다의 모습, 즉 좋은 꿈과 나쁜 꿈으로 표현되는 모두가 다 내 세상의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좋은 꿈이 떠오른다면 좋은 그대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나쁜 꿈 또는 찝찝한 꿈도 곧 좋은 일이 생길 귀여운 징조라고 생각하자. 검은 새들과 흥건한 피의 찝찝했던 그 꿈이 내게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가져다준 것처럼.

 

 

[정선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