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기, 위로하기, 되기 [영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되기>가 여성전기영화로서 말하는 법
글 입력 2019.11.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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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되기(devenir)’는 “적을 부수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다른 것으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되기>의 감독 파닐르 피셔 크리스텐슨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수많은 경력과 경험을 가진 인물의 거대 서사에서 ‘되기(become)’의 과정을 본다.

 

작가가 그리는 아스트리드 인생의 부분은 그녀가 아들인 라쎄를 가지게 되는 짧은 과정부터 아이를 받아들이고, 한때 원망했던 라쎄의 아빠를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몇 년간의 과정이다. 영화는 대상이 되는 그녀의 작품 생활이 어떤 내용인지는 커녕,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심지어는 린드그렌이라는 성이 어떻게 붙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작가가 주목한 그녀의 ‘되기’는 그 짧다면 짧은 몇 년 간의 과정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기(biographic)영화는 실제 존재했던 위인, 영웅을 중심 인물로서 다룬다. 아벨 강스의<나플레옹>(Napoleon, 1927)이나 에이젠슈테인의<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 1945)등의 유명한 고전 전기 영화등이 그렇다. 커다란 시대의 틀 속에서, 그 시대를 고스란히 신체에 간직한 이들의 행위를 영화로 승화시켜 담는 것이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전기영화의 특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한 사람의 실제 ‘성장’ 서사를 작품에 담은 감독의 ‘과감한’ 선택이다. 이 영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점 역시 그 선택의 의미에서 간과할 수 없다.


 

사진(아스트리드린드그렌되기)01.jpg

 

 

감독의 선택은 한 여성의 삶을 그 다른 무엇으로 치환하지 않고 여성의 삶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중심 인물의 위에 군림하지도, 아래에 복속하지도 않으며 (그 시대를 영화로 접속하듯) 아스트리드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의 선택과 그 결과를 관조한다.

 

영화 속 아스트리드가 어려운 선택을 할 때나, 감정적 동요를 받을 때에 감독은 먼 미래의 아스트리드를 소환한다. 미래의 아스트리드에게 전해져오는 찬사는 과거의 아스트리드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장치가 되며 동시에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의 등장인물이 아스트리드를 얼마나 닮았는지, 아스트리드가 그들을 얼마나 닮았는지를 상기시킨다.

 

감독은 시간을 횡단하는 이 장치를 통해 극 속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서 아스트리드를 지극히 아스트리드다운 방식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이 위로는 오직 아스트리드 그녀의 과거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아스트리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때를 다루지 않는다. 이때 그녀의 삶은 하나의 영웅, 혹은 위인이 아닌 시대의 여성이 된다. 그때 영화가 비로소 여성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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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인정받고 원래 자신의 위치로 돌아온 아스트리드의 성장은 어쩌면 소박해 보일 수 있다. 다만 그녀의 성장은 결국 ‘되기’로 회귀한다. 아스트리드는 적을 부수지 않고, 스스로 다른 것이 된다. 그 계기는 시간일 수도, 혹은 선택일 수도, 용기일 수도 있다.

 

다만 영화는 다른 것이 되어가는 아스트리드를 옆에서 꿋꿋히 지켜보고 몇 마디의 말을 건다. 그것이 전부다. 이 영화에는 몇몇의 전기영화/문학등이 그렇듯 대상을 신화화하거나 우러러보지 않는다. 이것이<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되기>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영화의 가능성이 아닐까.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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