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폭의 그림이 된 그들의 삶 - 치유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19.11.10 12: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190921_180506054_11.jpg



 

 

[차례]

 

들어가며

 

01. 뭉크-죽음에 절규하다 태양을 만나다

02. 클로델-사랑의 파도를 넘지 못한 사쿤탈라

03. 로트렉-캉캉 춤에 장애 설움을 날리다

04. 드가-여자 예뻐요 … 그런데 싫어요

05. 마네-아버지와 ‘사랑’을 다투다

 

06. 모리조-여자는 왜 그림 그리면 안 되죠?

07. 르누아르-행복과 기쁨만 그릴 거야!

08. 모네-인상이 없다고 비판받은 인상주의 창시자

09. 세잔-아버지의 ‘무시’를 이겨내다

10. 젠틸레스키-카이사르의 용기를 품은 여심

 

11. 고갱-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12. 고흐-‘별밤’에 편히 쉬기를…

13. 칼로-그 가혹한 운명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14. 실레-의심과 불안으로 뒤틀리다

15. 고야-난청이 꿈꾸게 한 자유

 

 
그림은 힘이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 
 
미술 시간은 내가 그림과 미술을 배우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르네상스', '인상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단어들을 줄줄 외우며 화가와 그림 맞추기, 연도 외우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미술 시간은 자는 학생들이 유독 많던 시간이었고, 나는 주로 명화에 낙서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미술은 나의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시대 순서대로 칠판에 빼곡히 적혀진 화가들의 이름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미술을 배우고 나니, '드가', '고갱', '모네' 등 이름은 너무도 친숙하지만, 막상 그들에 대해 말하려 하면 "유명한 화가"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그들의 그림 역시 아마 중간고사 범위 어딘가를 스쳤을 뿐, 제대로 알거나 이해한 것은 아마 한 개도 없었을 것이다. 딱히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해외에 '고흐 미술관' 같은 곳을 갔을 때 조금 덜 감동적이라는 것 외에는 불편한 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치유미술관>은 그런 내가 미술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왜 학교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왜 학교는 '드가'가 여성 혐오자여서 여자의 얼굴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왜 미술 선생님은 '로뎅'이 '클로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해줬다면 분명 나는 미술 시간을 사랑했을 것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넘어, 한 폭에 그림에 담긴 그 모든 감정과 아픔의 순간들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2019-10-17 23;18;56.jpg

 

 
아픔을 그림을 낳고, 그림은 삶을 담는다.

 
화가의 삶은 모든 순간 그림과 함께 한다. 그들에게 그림은 인생이다. 따라서 하나의 그림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볼 것이 아니라, 그림의 흐름을 봐야 한다. <치유미술관>은 화가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의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그려낸다. 삶에 그림자가 지는 과정부터, 사라지는 모습까지 전부 그림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늘 마음의 병으로 인해 아픈 그림만을 그리던 '뭉크'가 끝내 그려낸 "태양, 1913". 그림 속에 담긴 것들은 그의 내면을 이야기했다. 그의 삶의 변화와 함께 그의 그림 역시 변했다. 그림은 그의 삶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줬고, <치유미술관> 속 '뭉크'는 그림을 "상처의 기록이자 회복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그것들은 하나의 맥락을 갖고 그의 심리를 보여주었다.

한 화가의 삶과 작품 사이의 맥락을 읽는 일은 작품과 화가, 그리고 시대를 이해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화가는 단편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순간을 그리더라도 그 순간을 왜 그렸고, 왜 그렇게 그렸고, 어떻게 그렇게 그렸는지는 전부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그의 삶이고, 역사이다. 단지 하나의 그림만을 보고 "이건 뭘 표현했고, 저건 뭘 표현했어."를 아는 것보다, 삶을 이해하고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화가의 삶을 따라가는데 그림은 특정 감정의 증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정말 그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증명했고, 나는 거기에서 오는 사실감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 특히, '모네'의 "붉은 케이프-모네 부인 (1873)"는 '모네'가 아내 '카미유'와 느꼈을 감정, 그 거리감과 간절함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모네'의 삶을 몰랐다면, 그저 한 여인이 있는 그림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을 그림이다. 나는 그 감정으로 인해 계속 그 그림을 들춰보게 된다.
 


미술사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교과서에서 암기의 대상이던 그들도 결국 사람이었다. 사랑을 하고, 갈등을 겪고, 실수를 한다. 많은 모델이 화가의 뮤즈이자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는 경우도,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과 상황이 다를 뿐이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다 똑같은 것 같다.

<치유미술관>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친절한 구성이었다. 독립적인 챕터지만, 앞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드가'의 이야기에서 '마네'에 관한 언급이 있고, '마네'가 궁금할 때쯤, 뒤 챕터에서 '마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마네'의 모델이자 동생의 아내였던 '모리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분명 독립적인 챕터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챕터를 남겨둔 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챕터별로 서로 이어진다는 것은, 화가들 간의 교류와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에도 나타나 있다. '마네'가 '드가'의 그림을 찢은 것도 현대의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에피소드고, 그 원인이 '드가'의 여성혐오증 때문이었다니, 정말 그림에 담을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으며, 점점 그들과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그저 미술 교과서 속의 화가들이었는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림을 찬찬히 보니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들 사이에 있던 일들을 아는 것은 그들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푸는 계기가 되었다. 그냥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상처도 많고 아프고 불안정한,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바로 명화의 주인들이었다.



숨은 마음 찾기

 
화가의 삶을 알지 못하면 발견하기 어려운 숨은 마음들이 그림 속에는 많다. '드가'의 삶과 그의 여성혐오증을 알지 못하면 "회복기 환자, 1872-1887" 속 여성의 얼굴을 완성했다는 것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림을 완성할 때의 '드가'의 마음 역시 그를 이해해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신이 담고 싶은 많은 것들을 담아낸다. 알고자 하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치유미술관>을 통해 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 마치 그림에 숨겨진 마음을 찾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아가는 일을 점점 그림 보는 시야를 넓혔다.

나는 '르누아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치유미술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가 "개를 안고 있는 알린의 초상, 1910"에 숨겨 놓은 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아내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 있다니, 정말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르누아르'가 다른 그림에 담겨 둔 긍정 에너지 역시 그에게 반하는 데 한몫했다.

*
 
<치유미술관>에서 발견한 그들의 숨은 마음과 아픈 이야기는, 결국 그들이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로 이어졌다. 그들은 상처를 딛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그림을 그렸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그림에 녹여냈다. 결국 아픔에서 벗어난 화가도 그러지 못한 화가도 있었지만, 모두가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우울함에 삶을 비관하던 순간 속에서도, 그들의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음이 그림에서 느껴진다.
 
많은 아픔이 예술로 승화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아픔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르누아르'의 마음, '뭉크'의 회복 등 아픔에서 벗어나는 과정들 역시 그림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치유미술관>을 읽으며, 아픔이 예술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아픔 그 자체를 넘어, 삶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가장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은 참 아름답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치유미술관 목업.jpg






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


지은이 : 김소울

출판사 : 일리

분야
예술/대중문화
미술이야기

규격
152*210*18㎜(반양장)

쪽 수 : 364쪽

발행일
2019년 10월 02일

정가 : 17,000원

ISBN
978-89-97008-46-9 (03600)



 
 
 


[최은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38008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