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it]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목욕의 계절이 왔다.
글 입력 2019.11.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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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아지트_ 행화탕


생(生)을 쌓아가는 곳

 

 

행화탕3.jpg

 

 

목욕의 계절이 왔다. 모락모락 피는 탕에 몸을 담그고 싶은 가을의 끄트머리. 그 끝에 늦지 않게 복합문화예술공간행화탕에 도착했다. 가파른 골목에 비스듬히 자리한 머스타드 색 건물이 반겼다.

 
 

평상2.jpg

 
 
행화탕은 1958년 대중목욕탕으로 시작해 2008년에 폐업을 하고 창고는 고물상으로 쓰이다 유흥공간으로 방치되었었다. 그리고 2016년 서상혁 주인장(이하 서 주인장으로 줄임)이 이곳을 발견한 후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으로 운영하고 있다.
 
과거의 행화탕이 때를 미는 목욕탕의 기능을 했다면, 지금의 행화탕은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모토로 활동하고 있다. 61년간의 간극을 맺어주는 건 행화탕이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살구꽃 나무가 많았던 지역 유래로 주변엔 행화를 딴 행화점 교회와 행화 어린이집이 있다. 행화탕 또한 처음 시작했을 때의 살구 행에 꽃 화자라는 행화탕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두입구2.jpg

좌측부터 각각 남탕, 여탕 입구

 
 
61년의 세월을 머금고 산만큼, 공간엔 어떤 위압감이 흐른다. 그것은 긴 시간에서 오는 압도일지 모른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전성기는 그 사람이고 아닌 시절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듯, 행화탕이 목욕탕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고물상으로 유흥공간으로 있던 시간에도 행화탕은 행화탕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2019년인 지금도 예술로 목욕하는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행화탕 안엔 그 흔적이 전부 남아있다. 여탕과 남탕의 다른 타일 색감과 조적해 쌓아 올린 적벽돌까지.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는 걸 택했다. 그렇기에 공간은 때를 먹은 부분과 먹지 않은 부분이 세월의 훈장처럼 남아있다.
 
 

탁자2.jpg

행화탕에 있었던 세신을
탁자로 활용하고 있다

 
가구들은 묘하게 불편하게 배치되어 있다. 평상에 다리를 접어 앉아야 하고 철제의자와 모양이 딱딱하고 일정하지 않은 탁자가 있다.
 
서 주인장은 이런 배치가 의도적이었다고 말한다. 다리를 접어 평상에 앉아야 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면 다리를 들어주기도 해야 하는 불편함. 그저 보내야 해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지각하고 보내는 순간들이 되길.
 
그래서 이 공간이 자신을 오롯이 발견하는 것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타인의 진솔한 모습도 드러나는 곳이었으면 바랬다.

 

 

때수건.jpg

 
 
사람으로 놓고 봤을 때, 작년은 행화탕의 환갑이었다. 디자이너 세 명과 협업해 행화탕의 환갑을 기념하는 컨셉으로 탈의실 키고리, 탕으로 들어가 쇄신하는 때밀이, 타올, 일상으로 나가는 티셔츠, 카페에서 활용되는 머그잔과 유리잔을 제작했다고.
 
 

마당2.jpg

모든 공간은 전시, 공연,
뮤직비디오, 영화에 쓰이고 있다.
 

보일러실.jpg

계단으로 올라가면

보일러실로 쓰였던 공간이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 행화탕의 기획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자체 기획, 대관 기획, 공동기획. 이를 위해 행화탕의 목욕탕 건물과 목욕탕 주인이 살았던 건물이 전부 공간으로 쓰인다.
 
탕 옆의 보일러실은 마당으로 연결되고 마당창고 뒤로는 집과 기름 창고로 복잡하게 미로처럼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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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행화탕은 유한한 공간이 되었다. 재개발 예정지가 되어 시한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주인장은 행화탕에서 언젠가 할 마지막 콘텐츠는 장례 콘텐츠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떠날 때 그 사람이 만났던 여러 사람이 만나 잘 보내는 것처럼, 이곳에서 때를 밀었던 사람들, 예술로 목욕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와 잘 보내주길 바란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행화탕은 사라질지어도 각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화탕엔 많은 사람이 들르며 생(生)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다.
 

 

목욕탕2.jpg

 
 
행화탕은 바란다. 사람들이 일상의 짐들이나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벗어두고 탕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더 나아가 그것을 예술로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길 원한다.
 
 
+
P.S.1

행화탕 추천 음료 - 반신욕 라떼

       

 

라떼2.jpg

 
 
뭐하나 생각없이 된 것은 없다는 게 행화탕의 시그니처 메뉴들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에 에디터가 대신 고른 음료는 생크림을 베이스로 한 반신욕 라떼. 목욕의 이미지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이외에도 목욕 뒤에 빠질 수 없는 바나나우유를 모티브로 한 바나나 라떼와 살구꽃 나무가 많았던 지명유래와 관련해 행화탕에서 직접 만든 살구청이 들어간 행화에이드와 차도 있다.
 
 
+
P.S.2
 

 

깜빡깜빡2.jpg

 
 
생각해보면 목욕탕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특별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에 멋모르고 몸을 맡기고, 조막만 한 손이 부모의 등을 밀정도로 뻗어 나갈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목욕탕은 다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품었다 떠나보내며 그들은 끝내 잊어버려도 목욕탕은 그 기억을 품고 있다.
 
생각할 틈 없이 지나가는 불안한 하루하루 끝 탕에 잠겨있는 순간은 시간을 멈추기도 했다. 잔잔한 물결에 따라 천천히 흐른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와 상대방을 그리고 우리를 온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 않을까. 그리고 이곳 행화탕에선 끝이 있기에 순간순간이 반짝일 수 있다는 걸 믿게 만든다.

 

 

필진.jpg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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