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 읽는 요리사, 독서 주방 [도서]

글 입력 2019.10.3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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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발전소-독서주방_평면표지(띠지유).jpg

 

 


Prologue.


 

독서주방은 말 그대로 책 읽는 요리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30년 가까이 요리사로 일해 오며 그가 읽은 책에 관한 서평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처음에는 ‘주방’이나 ‘요리’ 자체에 내용의 중심이 맞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책을 읽으며 얼마나 직업에 애정과 철학을 갖게 되었는 지와 더 관련이 깊었다. 책 제목을 보았을 때는 다른 내용을 기대했었으나,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듣기 쉽지 않은데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공감하는 터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 소개

 

27년차 호텔리어 셰프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책의 맛은 어떨까?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총주방장 유재덕, 그는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펼쳐들었다.

 
희고 높은 모자와 흰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뜨겁고 날카로운 기기들을 이용해 누군가의 식사를 준비하는 호텔 주방은 베일에 싸여진 공간이다. 날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이 주어지지만 한결 같은 맛과 서비스를 위해 주방에서는 매일의 전쟁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외길을 걸어온 중년의 셰프는 주방일 틈틈이 책을 읽고 칼럼을 썼다. 셰프가 고른 책은 대부분 음식에 관한 책이다.
 
식탁 혁명을 불러온 고추의 모든 것을 다룬 <페퍼로드>부터 음식인문학의 고전 <음식문화의 수수께끼>까지 41편에는 저자의 경험과 어우러진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타고니아 이빨고기’가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고 판매량이 10배 늘었다든지, 요리의 맛은 식재료의 질에 달려 있을 뿐 요리사의 역할은 얼마 안 된다는 것 등등 미식의 안목을 키울만한 이야기다.
 
 
 
요리하는 사람

 

그는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순서대로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저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게 되는데, 호텔의 사무직으로 시작해 요리에 흥미를 갖고 직업을 바꿨다고 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부분이 다소 드라마틱한 인생사로 다가왔으나, 본인은 멋있어보였던 ‘요리사’라는 직업에 도전해 칼을 잡게 되기까지 다른 이들보다 몇 배의 고생을 더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에 늘 만족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진정으로 요리를 사랑하고 보람을 느끼며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읽는 글마다 고스란히 느껴졌다.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큼 행복한 느낌이라는 것이 있을까? 오늘 주방에서 청년 시절을 떠올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었다. 연이어 든 생각은 ‘음식이란 생과 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예술행위기도 하구나’였다.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찜통에 넣는 순간 든 생각이었다.

 

- 104쪽, 「살아 있다는 것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중에서

 

 
그러면서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철학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건강한 음식이 건강한 생각과 판단력을 만들고 결국 사람의 삶과 정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이는 선인들의 경험과 지식을 담은 책들을 통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된 본인의 소신이며, 요리사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제 경험에 녹여 따뜻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요리사답게 음식으로 세상을 보고 과거를 추억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푸근해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독서하는 사람

 

전적으로 공감하는 독서의 중요성. 저자는 정말이지 바쁜 틈에서도 책을 꼭 찾아 읽고야 마는 애독가였다. 일상에서 어떤 사건이나 감정의 동요가 일 때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어떤 식으로든 그 변화를 내면화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소개하고 있는 모든 책은 요리 혹은 음식에 대해 다룬 것인데, 심리학·사회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와도 접점이 있어 그 중 하나는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식을 강요하는 연예인 먹방, 미식은커녕 포식을 강요하는 미디어 매체들. ‘푸드 포르노’라는 기막힌 작명을 십분 이해한다. 사람들에게 부디 TV보단 책으로 먼저 음식을 드셔보시길 권하고 싶다. 현혹하지 않고, 삶을 깊게 만드는 음식은 아직은 책의 식탁 위에 더욱 풍성하니 말이다.

 

- 172쪽 「‘먹이’가 아닌 ‘음식’으로 깨닫는 세상 이야기」 중에서

 

 

이 글을 기고하고 있는 필자도 나름대로 관심분야의 책을 선택해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관심있는 분야가 많아 책의 주제는 사실 들쑥날쑥이지만, 직접 책을 찾아 읽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 굳이 찾아낸 저자와의 공통점이었달까. 좋아하는 분야를 흥미를 갖는데서 그치지 않고 책을 선택해 읽다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렇게 관심 분야를 깊게 파고 넓혀가면 자연히 업에 대한 애정도, 철학도 굳건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한줄로 줄여 보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업 정신 투철한 30년차 요리사가 쓴 독서 예찬론’.

 

늘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더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삶이 존경스러워, 분명 애정이 담뿍 담겼을 그의 음식도 맛보고 싶어졌다.

 

 

 

유재덕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105년 역사의 웨스틴조선호텔서울에서 30여년 동안 일했으며, 오랫동안 메뉴개발을 담당하다가 올해 조리팀장, 즉 호텔 주방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직업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여러 이름 중 ‘셰프’ ‘요리사’보다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을 좋아한다. 파불루머란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그가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스포츠 경향에 독서칼럼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을 연재하고 있다.

 

일간지 서평 연재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 우연히 출판평론가인 동창을 만나서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주선으로 신문에 서평을 연재하게 된다. 평생 칼만 잡았던 손에 펜을 들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공포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만 정직하게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재덕은 자신이 읽은 책에 요리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투영했고, 자신이 인생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써나갔다. <스포츠경향>에 월간 연재하고 있는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이 서평 칼럼에 곧 많은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칼럼은 흔히 볼 수 있는 서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더 없이 정직하고 진실 되게,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고백이기도 했다. 매달 연재되는 칼럼을 통해 독자들은 욕망 중독의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중년 남성의 건강한 자기 성찰과 삶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읽다 보면 중년의 한국 남성에게, 어떻게 이렇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과 정신적 건강함이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바로 그 칼럼들을 모으고 고쳐서 나온 것이 <독서 주방>이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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