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영화의 씨앗과 핵(核)을 향유할 시간 -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드넓은 단편의 세계로.
글 입력 2019.10.1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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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편영화의 기이한 중독성


 

단편영화를 처음으로 사적으로 보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 학교 옆 대학동에 작은 독립영화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네 자취방이 대학동에 있기에 한 번 놀러갔다가 발견한 곳인데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프랜차이즈 영화관에서는 절대 상영할 리 없는 소규모의 단편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단편영화의 ‘ㄷ’자와도 관련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칠 법도 했지만 어쩐지 기숙사로 돌아가고 나서도 그곳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인터넷에 영화관을 검색해보았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발견했다. 세상에, 대체 무슨 영화들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단편영화들이 단지 상업성과 대중성의 스포라이트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다니. 그 영화관에는 흥미로운 플롯과 기발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단편작품이 굉장히 많았다. 며칠 후에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 다시 찾아갔다.

 

아마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가 올해 6월이었는데, 사장님께서 매달 상영하시는 작품들이 달라진다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6월 상영작 세 편을 모두 관람하게 됐다. 난생 처음 대형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정식으로 돈을 주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엔 충분했다. 상영작들도 정말 재미있었다. 작품들 각각의 특징과 여운을 기술하기에는 지나친 TMI가 될 수 있기에 세 편 전반에서 느꼈던 감상을 나름대로 늘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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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쟁부문 상영작

'Fault Line(폴트 라인)', 소헤이 아미르샤리피

 

 

우선 단편영화는 작품의 길이가 아무리 길어도 40분이 넘지 않는다. 단편 가운데에서도 짧은 러닝타임을 선사하는 작품들은 10분 미만의 것들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영화관에서 접하는 장편 영화들과는 러닝타임 스케일부터 굉장히 소박하다.

 

이렇게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동안 작품의 주제의식, 영화 기법을 탁월하게 활용하는 모습,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연기력 등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핵심이 명료하고, 반전이 존재할 경우 정말 잘 만든 작품들의 경우 반전을 마주하고 난 뒤에 경험하는 카타르시스나 충격의 강도가 장편 작품의 그것들보다 훨씬 강하다. 평소에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동안 아주 천천히 작품의 서사를 감상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길어야 삼십 분에서 사십 분 정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단편영화는 플롯의 구성이 ‘간단해서’ 어떠한 방향으로든 즐기기 좋다. 비평적으로 접근하든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든 전혀 부담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러닝타임이 짧은데다가 핵심적인 서사들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캐치할 수 있기에 어찌 보면 굉장히 경제적이다. 너무 양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리란 부적절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한 시간 동안 세 편에서 네 편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지 않나. 또한 단편영화는 대체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거나 상업성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기에 한 번 즐기기 시작하면 “나만 좋아하는, 나만 알고 있는” 영화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나는 영화관에 처음 간 날 단편영화에 완전히 중독돼버렸고,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간을 내어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단편영화제들이 개최되는 장소와 날짜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11월 초에 강릉에서 단편영화제가 하나 열리는데, 마침 학과에서 이 일정을 노리고 답사를 간다고 해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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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상영부문

'K대_00닮음_93년생.avi', 정혜원

 

 

 

2. 우리나라의 단편 뿐 아니라, 타국의 단편까지도 -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이런 나에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한국의 단편영화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제작한 단편들까지도 다채롭게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의 매력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감상의 범위들이 넓어지기 마련인데 나는 이번 영화제를 기점으로 각국의 단편영화들을 눈에 불을 켜고 물색해 볼 예정이다.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씨네큐브 광화문과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개최되는 본 영화제에서는 개막작과 폐막작, 국제경쟁부문, 국내경쟁부문, 뉴필름메이커부문 각각에 해당하는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며 정규 프로그램 이외에도 전세계 영화의 거장들과 젊은 감독들의 단편들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특별프로그램을 편성할 예정이다. 국제경쟁부문에서는 총 35개국의 53편에 달하는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며, 국내경쟁부문에서는 국내의 작품 15편이 상영된다. 이외에도 뉴필름메이커부문에서는 국내 단편 가운데 작품 안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이루어 낸 6개의 작품들을 선정하여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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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국내외에 다양한 단편영화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수많은 영화광들처럼 매주 영화관에 찾아가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1일 1영화를 한다거나-등의 열정을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 미학을 전공하는 사람답게(...) 주기적으로 영화 작품을 관람하긴 한다. 그렇지만 단편을 알기 전까지 내가 감상하는 영화의 범위는 대형의, 장편의 영화들이었다. 카테고리 상으로 이들은 프랜차이즈나 대형 영화로 분류되기에 나는 이들보다 더 짧은 영화들도 존재할 것임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서서 장편 영화로 분류되지 ‘않는’ 작품을 찾아볼 생각은 그동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대학동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내 돈을 주고 단편 작품을 관람하면서 부끄러움도 느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영화 거장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한 대작들을 만든 게 아니었을 테다. 비교적 간단한 환경과 상대적으로 가볍고 저렴한 장치들로 만들 수 있는 단편영화에서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밟아나갔을 것이다. 진정으로 영화를 애호한다면 그것을 감상하는 범주가 하나의 카테고리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편식을 할 거면 음식을 먹을 때 말곤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영화 관람에까지 끌고 온 셈이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해도 짬을 내어 대학동 영화관에 가게 된 데에는 이러한 편식질을 고치기 위함도 한 몫을 했다. 매달 세 편의 단편영화를 꾸준히 관람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지평도 넓어지고 왠지 학업의 연장선이라 합리화를 할(?) 구실도 생긴 것 같아 굉장히 만족스럽다.

 

수많은 단편영화제 가운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정말 기대가 크다. 안 그래도 단편영화에 제대로 중독이 되어 버렸는데 이번 영화제를 다녀오면 각국의 영화제들을 즐겨찾기 사이트에 추가해놓을 것만 같다. 주변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단편의 매력에 이미 빠진 사람들이나, 단편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나. 모두에게 권유하고 싶은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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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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