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너에게 닿기까지, "네가 서성일 때" - 2019 서로단막극장 [연극]

글 입력 2019.10.16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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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도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나의 길을 갔다. 나도 그들에게는 지나가는 행인1이었겠지. 분명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갈텐데, 마음 속에만 담아둔 채 우리는 서로를 지나친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한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깊이있게 아는 경우는 드물다. 꺼내놓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각가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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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로단막극장>의 두 번째 작품인 "네가 서성일 때"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연극은 지연과 준기의 우연한 재회로 시작된다.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나는 알지 못했다. 둘 사이에 있던 이야기와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연은, 그들을 깊이 알고 난 후에야 보였다. 오랜만의 재회에 그들은 서로에게 닿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많은 눈물도 필요했다.

연극을 통해 나는 "너와 나의 서성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서성임. 끝내는 지나쳐야 했던 인연도 있었고, 결국 마음이 닿았던 인연도 있었다. 면접을 기다리며 시간을 떼우던 로비의 사람들처럼, 삶이란 어쩌면 쉽게 정의내려지지 않는 그런 서성임이 아닐까. 그들이 서성이며 눈을 맞추던 순간에서, 나는 그들의 삶을 만났다.



나의 서사


지연은 말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서사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견디는 거라고. 그 서사의 주인공이 나일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며 버텨내는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니까.

지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때는 참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젠 잘도 말한다.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면서 목소리에 힘 마저 있다. 그러면서 이젠 지나간 일이라며 웃는다. 나는 괜찮은 척 하는 내가 미련하다고 느꼈는데, <네가 서성일 때>의 지연의 말을 듣고 내가 하려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견디는 중이었나 보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면, 계속해 말하는 연습을 시킨다.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 상담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는 나의 "현재"였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 전달한다. 상담 선생님은 그 때에 내가 어땠나를 자주 물으셨다. 나의 입장을 넣음으로써 내가 구성한 서사의 주인공을 나로 만들어주려 하셨던 것 같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이에 있다. 감정과 순간들이 서사로 변하고, 그 순간 나를 떠나게 된다.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서사를 전달한 후, 이야기에 대해 토의한다. 마치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나의 것이었던 악몽은 서서히 증발한다.

지연과 준기가 겪어야 했던 시간은 각자의 서사로 녹아들며 어느덧 털어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의 서사에 주인공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순간을 서사로 엮으며 그 서사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들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

삶이 서사가 되는 순간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감정이, 사건이, 하나로 엮여 흘러간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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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사


나와 네가 만나 우리의 서사가 되기까지 많은 복선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서로를 서성인다. 같은 경계에 공존하기까지 서성임을 반복한 후에야 서로에게 도달하고, 우리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끝내는 내가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 스쳐 가버릴 때도 많다. 상대는 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로 남는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 그의 서사는 어떤지 알지 못하는 나는, 왜곡된 그를 담은 채 홀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언저리에만 서성이다 이내는 지나쳐갔기 때문이다.

진심이 닿는 과정은 험난하다. 진심이란 전한다고 끝이 아니라, 정확히 상대의 마음에 닿아야 하고, 지점에 도달했을 때 울림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심을 품에 안은 채 서성이고 또 서성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울림을 명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교차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지연과 준기는 각자의 이야기 속에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진실과 진심은 서로 알던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재회의 순간 마음을 열고 공존을 시도했기에 둘의 서사를 서로 맞춰 우리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이 끝내 서성이다 떠났다면, 영원히 지연의 서사와 준기의 서사는 "우리"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연과 준기는 같은 영역을 서성이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람에게 닿기 위해 각자의 아픔을 견뎌야 했던 슬픈 인연이다. 그리고 둘 다 도달하지 못한 채 서성이다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재회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재회 후에야 서로에게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나에게도 서성임에서 그친, 결국은 돌아서야 했던 많은 인연이 있다. 스쳐 간 인연과 재회하게 된다면 어떨까? 우린 어떤 모습일까? 어디에 있을까? 우린 과연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묻어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 같은 곳을 서성이던 사람이었는데 마주하게 되었을 때 또다시 스쳐 갈 순간이 두려워 서성이지 못할 것 같다. 그 영역의 언저리에도 닿지 못한 채 어설픈 눈인사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을까?

같은 곳을 서성이던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졌고, 아마 그도 다른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테다. 혹시나 도달했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텐데, 지금 나는 그로부터 너무 먼 곳에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난다 해도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를 안은 채 스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걸음, 한 마디면 조금은 거리를 좁힐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나는 자신이 없다. 지연과 준기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깊이 알게 된 나는 많이 숙연해졌지만, 그들은 그 앎으로 분명 조금 더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함께 서성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스쳐 가야 했던 날들이 후회된다. 나는 지금 어느 언저리에 있나 생각해 본다. 닿을 수 있을까? 그 끝에 너와 내가 함께 주인공인 순간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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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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