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겨움과 낭만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사람]

알렉산더 맥퀸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0.1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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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내 컬렉션을 보고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난 후와 같은 일상적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겨움이든 기쁨이든 강렬한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 알렉산더 맥퀸

 


매년 패션쇼 시즌이 되면 각 브랜드의 런웨이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한 해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시작으로써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종종 조롱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중 어떤 옷들은 마치 미래에서 온 듯한 기이하고도 난해한 모양새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옷들을 보고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도대체 누가 입으라는 거야?

 

패션에서 ‘실용성’을 빼고 이야기하긴 힘들 것이다. 옷이라는 물건은 어쨌거나 입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과연 패션을 예술이라고 논할 수 있냐는 주장들도 많다. 오직 표현하고자 하는 것 만을 위한 게 아니라 ‘옷’이라는 기능을 끼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자이너들이 모든 옷을 제작할 때 마다 작품으로써 다루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녹여 표현해내진 않을 것이다. 아마 모든 옷들이 그런 식으로 제작되다간 입고 다닐 옷들을 지금처럼 쉽게 구매하진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컬렉션마다 자신의 생각과 스토리를 불어넣어 감히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옷이 있느냐 물으면, 비록 패션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알렉산더 맥퀸을 떠올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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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영국에서 태어난 디자이너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은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꾼다. 좋지 않던 집안 형편에 처음부터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울 수 없었던 그는 광고를 본 어머니의 권유로 테일러숍에서 견습생으로 처음 옷을 다루기 시작한다.

 

그렇게 패션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그 이후로도 여러 숍을 돌아다니며 재단 기술을 배워나간다. 당시 그는 스스로도 빨리 배우는 견습생이었다고 말할 만큼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와중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에 석사과정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처음으로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배우게 된다. 맥퀸은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고 표현의 자유가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당시부터 그는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이전에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그 점이 오히려 좋게 작용했다. 같은 작품을 보고서도 흔히 배우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느끼고 표현했다.

 

그렇게 그는 졸업작품으로 그의 첫 컬렉션인 ‘Jack The Ripper Stalks his Victims’를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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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컬렉션은 운 좋게도 당시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중 하나인 영국 보그잡지의 이사벨라 블로우의 눈에 띄게 된다. 파격적이게도 그녀는 이 무명 디자이너의 모든 옷을 구매하면서 맥퀸 평생의 가장 큰 조력자로 나서게 된다.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냥 알아보면 되니까” - 이사벨라 블로우, 천재를 발굴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대답으로

 

 

파격적인 데뷔무대에 이사벨라의 관심까지 더해져 맥퀸은 당시 가장 주목 받는 신예 디자이너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밑 위 길이가 짧은 ‘범스터 바지’를 선보이며 새로운 열풍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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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맥퀸은 역사와 나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직접 가문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그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맥퀸 또한 이러한 것에 영향을 받는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와 대립의 역사에 영감을 얻은 그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한다. 바로 1995년의 ‘Highland Rape’이다.

 

맥퀸은 스코틀랜드에 관해 표현할 때 이미 상업화 된 표현을 이용해 무작정 로맨틱하게 표현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집단 학살, 강간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기획했고 그 결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런웨이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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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들의 옷은 이곳 저곳 찢겨있어서 마치 범죄현장을 떠올리게 했고 피폐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런웨이가 끝나고 모든 매체에서는 맥퀸을 인터뷰하고 그의 이름이 헤드라인에 걸렸다.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쇼에 대해 의견이 갈렸고 어떤 이들은 쇼 자체가 여성혐오적이고 자극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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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Highland Rape’는 그를 패션계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렸고 실업수당으로 겨우 생활해나가던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꾸려갈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명세와 파격적인 새로움 덕분인지 그는 당시 정체기를 겪고 있던 지방시(Givenchy)의 수석 디자이너로 지명된다. 순식간에 영국의 가난한 청년에서 명품 하우스를 군림하는 ‘신’적인 존재로 탈바꿈했지만 그의 지방시에서의 업적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직선적이고 구조적이었던 맥퀸의 디자인이 명품 하우스만의 가볍고 우아한 소재와 질감을 배우고 체계적인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게 해주었기에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획을 그은 일이었음은 틀림없다.

 

맥퀸은 매 쇼마다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늘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의 쇼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No.13’



 

 

맥퀸이 처음으로 그의 쇼에 로봇을 등장시킨 런웨이이다. 그는 로봇들이 입력된 값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그들이 정말 생각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한다. 그 결과 기계와 인간의 합동으로 아름다운 피날레가 완성되었고 맥퀸은 처음으로 그의 쇼에 감동을 받은 퍼포먼스였다고 말한다.

 

 

 

‘V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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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의 방을 모티브로 만든 세트에 가운데 박스에는 사진작가 ‘조엘 피터 위트킨’의 작품에 영감을 얻은 오마주를 넣어 피날레를 장식한 쇼이다. 거울을 이용해 세트 바깥의 관객과 기자들은 내부를 볼 수 있지만 안쪽의 모델들은 밖이 보이지 않고 거울에 비친 자신만 볼 수 있게 만든다.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통해 패션계의 불안함과 정신적인 문제들에 대해 표현한다. (피날레는 10:27초 부터)

 

 

 

‘Widows of Culloden’


 

 

 

알렉산더 맥퀸과 친한 친구이자 모델인 케이트 모스가 마약스캔들에 휩싸이자 그녀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홀로그램을 무대 위에 비춘다. 천국이 떠오를 만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퍼포먼스 덕분에 케이트 모스는 다시 패션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La Dame Bleue’


 

 

 

2007년 맥퀸을 발굴한 사람이자 그의 친한 친구였던 이사벨라 블로우가 자살을 한다. 맥퀸은 이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녀를 추억하고 기리고자 그녀만을 위한 런웨이를 연다. 평소 그녀가 즐겨 입던 옷과 모자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추모하며 많은 이들에게 ‘이사벨라 그 자체였다’는 평을 받는다.

 

 

 

‘Plato’s Atlantis’


 

 

 

바다로 돌아간 인간을 주제로 기획된 이 쇼는 그의 생전 마지막 쇼가 된다. 디지털프린팅, 새로운 패턴들과 다시 등장한 로봇까지 그의 모든 걸 쏟아 부은 듯한 런웨이였다. 그는 바다를 주제로 함으로써 편안하고 이상적인 공간을 표현함과 동시에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들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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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퀸은 오랜 기간 우울증과 강박, 그리고 환청 등으로 고통스러워 했다. 사람들은 이 천재 아티스트의 작품을 끊임없이 원했고 몰려드는 일에 그는 매우 힘들어 했다. 슬픔을 간직하는 그의 성향과 일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더해져 그의 정신상태는 매우 오락가락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누나가 일을 1년 정도라도 쉬어보라 권유하지만 자신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의 대출금을 위해서라도 그리 쉽게 멈출 수 없다 말할 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의존하고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맥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머니의 장례식 전날 밤 자살한다.

 

비록 그의 죽음으로 더 이상 이 아티스트의 작품들은 만날 수 없지만 그의 영향력은 죽음 뒤에도 이어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런던 V&A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컬렉션을 전시한 ‘알렌산더 맥퀸: 세비지 뷰티’ 전시에는 무려 백만 명이 넘게 몰려 최다관람 기록을 세우고 전시기간을 연장하기에 이른다.

 

데뷔부터 죽음 전까지 각각의 컬렉션이 방대하고 어느 하나 버릴게 없기에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했지만, 만약 맥퀸에 대한 궁금함이 남는다면 그의 전기를 다룬 책과 영화들도 나와있으니 찾아보기를 추천하며 이 순탄치 않았던 아티스트에 관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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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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