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현실적인 세상을 통해 현실의 웃음을 발견하는 곳 : 인디애니페스트2019

인디애니페스트2019
글 입력 2019.10.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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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밀려오는 한기에 조금 두꺼운 옷을 걸치고 극장으로 향했다. 공간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늑한 분위기에 온몸은 내려녹았다. 따뜻한 숨을 내뱉는 작품들을 만날 생각에 내 속의 한기는 점점 설렘으로 데워졌다. 내가 관람했던 작품은 <아시아로>부문의 작품들과 <야마무라 코지 특별전>이었다. 개인 일정으로 인해, 국내 작품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인디애니페스트에 또다시 참가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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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anquing Cai <EVERYFLOWER>



아시아로




올해의 아시아 경쟁 ‘아시아로’ 부문에는 아시아 37개 국가에서 총 591편의 애니메이션이 출품되어, 최종 35편이 경쟁부문에 선정되었다. 아쉽게 본선 경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지목된 21개의 작품이 비경쟁부문인 ‘아시아 파노라마’ 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관객들을 만난다.


모든 작품이 어쩜 이렇게 색이 다양하고, 뚜렷할까! 작화나 표현법이 아름답고 새로운 작품도 있었고, 내용 자체가 기발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도 있었다. 차이 위엔칭Yuanqing CAI의 <에브리플라워EVERYFLOWER>는 예선심사위원의 강력한 추천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십대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내용이 꽤 무겁다. <에브리플라워>를 감상할 당시에는 먹먹한 내용을 담담하게 바라보았지만, 끝난 후에 가장 여운이 길게 남은 작품이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고, 부모님은 항상 돈 때문에 다툰다. 소녀는 학교보다는 PC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이 이야기는 십 대의 삶에 유입되는 가족문제를 다룬다. 십 대 시절에 발생하는 가족 갈등과 여러 폭력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것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그에게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과 그로 인한 그의 심경 변화를 독특하면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적 행위와 언어를 가했을 때, 소녀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는 카메라 워킹이 독특했다. 나까지 이명이 오는 듯했으며, 눈앞이 얼얼했다. 이 작품에는 대사가 별로 없다. 더군다나 소녀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를 걱정해주는 친구와 부모님의 말다툼 소리. 그 두 가지가 유일한 사람 말소리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은유로 전달되는 그의 감정들은 감독만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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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zuki Sekiguchi <The Body Swap Center>

 


또한 관객인기상은 오로지 관객들의 투표로만 결정된다. 상영 후 나가는 관객들은 모두 자신이 감명 깊었던 작품에 투표를 했는데, 다들 투표 장소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셨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그중 상영 내내 곳곳에서 웃음이 많이 터져 나왔던 작품은 세키구치 카즈키Kazuki SEKIGUCHI 감독의 <성격개조 상담소The Body Swap Center>이다.

 

미미는 한심한 자신에게 질렸다.

어느 날, 평소처럼 땅을 보며 걷다가

수상한 전단지를 발견한다.

 

세키구치 카즈키 감독은 부정적 감정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 감정을 희화화해서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즐겁게 보여줄 것인가가 고민의 관건이라고 했다. 정말로, 미미가 본인의 성격을 부정하여 선택한 결정의 결과는 웃음을 자아낸다. 닮고 싶은 친구의 성격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 미미는 성격과 더불어 친구의 몸까지 자신의 신체에 매달게 된다. 매달린 성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에서도 여기저기 웃음이 터진다.


현실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애니메이션이 매력적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그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세상은 현실 속의 웃음을 발견해낸다. 현실의 부정과 절망 속에서도 그의 작품이 있다면 언제나 웃음으로 즐겁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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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 Yamaguchi <Journey to the Beyond>


야마구치 마이Mia YAMAGUCHI 감독의 <이후의 여행Journey to the Beyond>은 3분 53초라는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내 눈물은 쉬지 않고 흘러댔다. 내 앞쪽과 옆쪽의 관객분들도 눈물을 훔치셨다. 노인의 죽음을 묘사하고, 사후 세계에 대해 본인만의 색을 펼쳐 놓은 이 작품은 아름다움 색채를 보며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느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된 죽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모두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스토리뿐만 아니라 형식에서 완전히 실험적인 시도를 한 작품도 있었다. 무궁무진한 애니메이션 세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상영작이 끝난 후에는 GV가 진행됐다. 감독님과의 시간은 언제나 내 생각의 깊이를 넓혀준다. 그래서 무조건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야기 나누고픈 작품은 많으나, 시간이 제한적이라 매우 단편적이고 겉핥기 식의 이야기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GV의 사회자께서 좀 더 날카롭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과 이야기 흐름을 이끌어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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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Yamamura <Satie's "Perade">



야마무라 코지 특별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혀온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기법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돋보이는 감독의 초기 단편선을 비롯하여 최신작 <물의 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형식과 기법의 조화로운 시도로 움직임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는 감독의 뚝심과 열정,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학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회화를 전공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회화 연작 같기도 하다. 그는 대학 진학 당시에 애니메이션 제작 동아리를 만들었고 매년 상영회를 개최했다. 그 당시 주고받았던 피드백들이 감각을 쌓고 지금까지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에는 특히 현대음악과 고전, 그리고 철학이 짙게 묻어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사티의 퍼레이드Satie’s “Perade”>는 프랑스 작곡가 사티 에릭의 수필에서 인용한 구절과 그의 곡 <퍼레이드>를 혼합한 작품이다. 곡에 맞추어 등장인물들이 동작을 수행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화려하게 몸짓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고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비곤 벨 케어Begon Bell Care>다. 노먼 멕라렌의 <비곤 덜 케어Begon Dull Care>에서 발췌하여 제작한 이 작업은 청각적인 감각을 시각적 언어로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마치 테트리스를 연상케하는 이미지 속에서 음의 높낮이에 따라 시각 언어들도 춤을 춘다.


감독은 초반에 소리의 파형을 전혀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을 듣고 그를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표현한 뒤에는 소리의 파형을 확인한다. 순수하게 본인의 청각과 시각으로 표현된 작업들은 그래서 더욱 깊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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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Yamamura <Notes on Monstropedia>


<괴물도감> 역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중세 유럽의 가상의 괴물 학자가 저술한 상상의 괴물들에 대한 애니메이션 아카이브다. 이 작품은 ‘눈물의 맛’이나 ‘길들여진 야생성’과 같은 문구에서 영감을 받은 움직임을 사용하여 괴물들의 습성을 묘사하고 있다.


괴물들은 상상 속 동물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살아 숨 쉰다. 각자의 걸음걸이,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이 주는 디테일과 유머는 관객을 그러한 괴물들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게 괴물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담고 서로 뛰어놀고 있을 때, 마지막 괴물 두 마리도 등장한다.

 

‘YOU’ an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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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볾


상영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10분 내외였다. 한 작품이 끝이 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모든 작품과 감독에게 존경과 예의를 갖추는 이 행위에 나까지 마음이 울컥했다. 감독과 관객, 작품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이러한 공간은 언제나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뜨끈하게 데워둔 전기장판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다.


독립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그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인디애니페스트가 언제까지나 진행되었으면 한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에 동참할 수 있도록.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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