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위기의 시대, 의미있는 본질로의 회귀 - "동정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9.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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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셀러는 20세기 초반에 가치지각능력을 망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다. 여기서 가치지각이란 인간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는 가치질서를 자각하고 지키려는 능력이다. 그는 칸트가 제시한 절대적 도덕법칙을 개별적 준칙들을 어떤 절대적인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형식주의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셀러가 봤을 때 형식주의 윤리학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스칼이 그래왔던 것처럼, 감정이 가치에 행하는'심정의 논리'를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논리는 교육과 충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 능력에 깊게 자리한 것이다.

셀러는 사회의 도덕적 조류를 결정하는 첫번째가 되어야 할 가치질서는, 인간과 물질의 가치전도가 일어나 야만성을 드러내는 사회에서 쉽게 망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문제를 정치와 경제적 문제로만 환원하는 태도는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그의 주장은 멈출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주장을 완전히 공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강력한 강화물이 되어버린 돈은 모든 의사결정과 기치의 선봉대에 서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돈은 명예도 정의도, 사랑이나 권력도 살 수 있다!"라고 외치는 군중 안에 함께 외치며 서있지 않은가.

이런 사회 속에 지친 이들은 물질사회의 흐름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대를 겨냥하는 유행어로 이 변화를 알 수 있다. 한때는 '죽창'이나 '수저계급론'과 같은 분노의 색을 띄었던 것이, 이제는 '행복'과 '퇴사'라는 단어로 바뀌어 유통된다. 연한 색채와 여유있는 여백으로 만들어지는 이 책들에게서 약간의 체념의 냄새가 나는 것은 필자의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말로 반성과 회복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회 속에서 비단 필자가 <동정에 대하여>를 읽게 된 것은 막스셀러의 망령이 다시 찾아와서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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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셀러에 따르면 가치질서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다. 바꿔말하자면, 우리 안에 내재된 도덕적 감성,즉 인간성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가? 누군가에게는 정언명령을 주장한 칸트의 얼굴이고, 누군가에게는 무지의 베일을 울부짖었던 존 롤스의 얼굴일 수도 있겠다.

필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었다. 필자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희망과 빛으로 대표되는 신적 존재가 인간의 육체로 고통을 공유하고 흰생한다는 내용에서 뜨거운 감동을 느낀다. 필자에게 그리스도는 동정과 사랑의 화신이다. 이 책의 취재를 요청하게 된 것도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신의 모습, 즉 동정을 우리 안에 담을 수만 있다면 분열된 현대 사회를 이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한 것이기 떄문에 끝이 아니다. 사랑과 동정의 화신은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의 시체를 부여잡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슬픔, 피에타는 단순히 '어머니의 사랑'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또다른 형태의 부활이다.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동정에 대하여>는 현대사회를 고찰할 좋은 도구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의 책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우파니샤드에 큰 감명을 받은 쇼펜하우어는 동정에 대해서 이야기 한 또다른 학자다.

쇼펜하우어는 개인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세계가 다수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인과관계로 엮어있기에, 결코 객체는 나뉠 수 없다. 먼 거리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한 개체이므로, 너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 이 지점에서 쇼펜하우어는 동정을 강조했다.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기지에 맞게, 프로이트도 사랑과 동정을 타인 속에서 녹아들은 '나의 파편'으로 이해하려 했다. 당장 이 두 학자들의 이야기만 엮어도 동정은 다양하고 오묘한 색채를 보인다.

<동정에 대하여>에서는 다양한 동정의 모습이 등장한다. 투박하게 이 책을 두개로 나눠보자면, '문화 예술의 소재로서의 동정'과 '철학의 주제로서의 동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신화와 근대 작품을 아우르는 명작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인 프로메테우스와 안티고네, 능히 사용되온 성경 속 피에타라는 소재와 아가페적 사랑뿐만 아니라 레오파르디의 <지발도네>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카프카의 <변신>와 <유형지에서>가 등장한다. 장르를 넘어 보들레르의 시들과 다양한 <피에타>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훌륭한 이야기들 속에서 독자들을 동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 저자는 철학책치고는 어렵지 않은 어조로 다양한 문화예술에서 사용된 동정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카프카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 아닌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사건과, 자신이 숭배했던 기계에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중반부까지는 동정의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면서 읽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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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에 대한 앎'에서는 동정에 대해서 이야기한 다양한 철학자를 등장시킨다. 책의 옮긴이는 이 부분을 독자가 책과 함께 즐거운 씨름을 할 수 있는 좋은 부분이라고 이야기하고, 필자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동정은 흔히 '좋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동정은 마냥 순수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책의 저자는 동정을 '흔하지 않은 감정'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동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어떤 사고로 인해 약자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으며, 동정할 힘조차 없는 사람은 동정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남기도 한다. 동정은 또한 다양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 감정이기도 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동정을 하나의 앎으로 보았다. 우선 타자의 고통이 심각해야하며, 타자가 부당한 방식으로 고통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고통을 그 자신도 언젠가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특정 고통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포함하여야 한다.

동정에는 미세한 쾌락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종의 거리감에서 안착된 슬픔으로서의 동정은 타자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 있으며, 고통받는 사람의 용기와 운명에 대처하는 그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무례한 행위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의 '동정' 철학을 받아들인 니체는 닥치지 않을 고통을 확인하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동정을 위선적인 감정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리스 철학에 귀를 귀울였지만 니체와 다른 생각을 한 철학자도 있다.앞서말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앎'은 공감, 유사성,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의 세가지 조건으로서, 동정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또 우리는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볼 때 더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상상력 없이는 동정심은 탄생하지 않는다.

필자가 가장 공감했던 철학자는 동정심의 기능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철학자였다. 그는 동정이 사람들로 하여금 타자를 향한 전이의 깊이 있는 훈련을 하게 만든다고 이야기 했다. '나'의 시선에서 출발했지만 '타자' 안에 있는 고통을 바라보고 그것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정은 분명 앎의 훈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본질과 이유를 발견한다. 같은 고통을 겪는 다는 사실은 우리의 세계를 풍족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무의지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노력, 불교에서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어디에 이르게될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타자의 고통'을 내면화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끝없이 의식하고 존재를 느끼면서 그의 실존을 고민해오지는 않은 것 같다. 신념이나 계급, 어떤 명제나 사상의 이름을 달고 우리는 너무 많은 전쟁을 반복해왔다.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고민해왔던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비극은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작은 삶의 단위는 변할 수 있다. 확신과 강한 신념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동정심과 이해심은 구시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 밀려 지쳐버린 지금이라면 좋은 반성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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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에 대하여


안토니오 프레테 지음

윤병언 옮김


판형 148*210

페이지 384쪽

발행일 2019년 8월 10일

정가 22,000원


ISBN 979-11-5931-370-7 03100


인문 > 인문 비평, 인문 일반

인문 > 철학/사상 > 철학의 이해




왜 인간은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는가?

이 슬픔을 상실할 때, 인류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는가?


《동정에 대하여》는 세계적 석학 안토니오 프레테의 대표 저술로, 문학과 예술 작품에 나타난 동정이라는 감정의 역사를 추적한 인문 비평서다. 동정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감정으로 인류의 지성사에서 인식론적 실천적 논쟁에 중심에 있었다. 안토니오 프레테는 이성적으로 단언할 수 없는 동정이라는 감정에 주목하며, 동정이 인류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위대한 예술 작품을 통해 추적한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단테 알리기에리, 도스토옙스키, 이탈리아의 거장 자코모 레오파르디, 프란츠 카프카, 로자 룩셈부르크 등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현대 문학까지 서구 문학사를 관통하는 동정의 서사를 파헤친다. 또한 인문적 사유의 근간이 되는 성서, 고대 경전, 그리스 신화, 동방의 설화집에 나타난 동정의 사례를 상술하고, 아리스토텔레스, 바뤼흐 스피노자, 장 자크 루소, 쇠렌 어뷔 키르케고르, 빌헬름 프리드리히 니체 등 주요 철학자들이 어떻게 동정을 논의해왔는지를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피에타>에 주목하여 조토 디본도네의 중세 회화부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조각상, 마르크 샤갈의 현대 회화까지, 미술사에 나타난 동정의 여정을 안내한다.




동정’이라는 감정의 역사를 집대성한 인간은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는가?

이탈리아의 세계적 석학 안토니오 프레테의 기념비작


삶은 고통이다. 삶의 주체인 인간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탈리아의 독보적인 문학 비평가인 안토니오 프레테에 따르면, 그 공감의 순간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빛이 번뜩이는 순간이다. 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아픔을 느끼는가? 동정은 인간이 가진 필연적인 감정인가? 동정이란 무엇인가?


동정(compassion)은 ‘함께(com)’ 나누는 ‘열정(passion)’이자, 타인과 타인의 고통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는 움직임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동정을 하나의 덕목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동정을 불행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고, 혹자는 앎의 한 형태이자 인식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 규정했으며, 혹자는 동정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미명하에 위선적인 박애 정신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정이란 감정의 실체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구축해나가야 하는가?


미술사와 문학사를 보면 동정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이 등장한다. 예술 작품은 동정이라는 감정의 양면성과 다양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리스 서사시에서 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동정은 그 서사의 중심에 있었고, 타인과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도덕 원칙이자 본질적 요소로 자리해왔다. 안토니오 프레테는 문학과 예술 작품에 나타난 동정의 역사를 반추하며 동정의 부재가 인류에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추적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드러난 동정이란 감정의 지속성과 빛나는 정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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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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