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울렁이는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 벌새 [영화]

한 챕터를 지나온다는 것
글 입력 2019.09.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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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찍었던 사진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어정쩡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저 아이가 나였다는 사실이 생경해 사진 속 어린 얼굴을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 본다.


사는 건 지겨운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무언가를 갈구하고 애쓰는 마음이 쉽게 접히지 않았던 시절의 얼굴. 그땐 철이 없었어, 어려서 뭘 몰랐지, 다 지난 일이야, 라는 너스레로 떨쳐내기엔 분명한 무게감으로 나를 짓눌렀던 이름 없는 감정들이 ‘은희’라는 낯선 아이의 얼굴을 통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해되기만을 기다려온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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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감독의 장편영화 <벌새>는 1994년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 은희의 삶을 따라 당대의 공기를 재현하는 시대극이다. 영화 속에서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과 여전히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의 일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성수대교의 붕괴라는 거대한 사건으로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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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생인 나는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1994년의 한국에 존재했던 적이 없다. 나는 ‘삐삐’를 실제로 만져보지도 못했고 김일성 대신 김정일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으며 성수대교 붕괴사건보다 세월호 참사를 더 가깝게 느낀다. 은희처럼 학창시절 또래와 연애해본 경험도 없을뿐더러 영지 선생님 같이 ‘정말정말’ 좋아하는 어른에게 의지해본 적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은희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라고 느끼는 것은 은희가 겪는 정서적인 혼란의 시기를 나 또한 거쳐왔기 때문이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눈 깜박할 새에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점점 투명해지는 나의 존재가 어디에도 닿지 못하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의 세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만 같은 아득한 기분에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는 한 은희의 이야기는 결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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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은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 중 하나인 집은 은희에게 안식처가 아니다. 은희에게 있어 집은 일방적인 폭행이 사소한 다툼으로 축소되고, 학교에서 겪는 관습적인 폭력이 묵살되며, 권태롭게 유지되는 평화 속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의 파편이 숨죽이고 있는 공간이다.


고통을 언어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정의 분출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언제나 피곤한 엄마와 가부장적인 아빠,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오빠, 가깝고도 먼 거리감의 언니 앞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고통을 헤집어 대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 중 의도적으로 은희의 괴로움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는,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문제를 지워버리는 시간은 소파 밑에서 발견한 유리조각처럼 두고두고 마음을 구르며 상처를 남긴다. 은희는 집이 자신의 들썩이는 감정을 받아줄 공간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갈 곳 잃은 감정은 은희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몸집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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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못한 외로움을 껴안고 세상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은희는 끊임 없이 바깥을 헤맨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단짝 친구와 장난을 치고, 따르는 선생님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의 고백에 설렘을 느끼며 집에서 얻지 못한 유대감을 대신한다.


그러나 은희가 손에 쥐고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모든 관계들은 은희의 의지와 상관 없이 흩어지고 도망가고 변화한다. 벅찬 감정들을 언어 없이 감당하던 은희가 마음 한가운데 세운 댐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꺼내 보였을 때, 세상은 은희가 붙잡은 소매 끝을 뿌리치고 저멀리 도망친다.


잘못했어, 안했어. 아마도 은희는 언젠가 누군가의 길 잃은 분노가 서린 얼굴을 마주보며 꼭 같은 말투로 몰아세워진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겁에 질린 은희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울먹이며 잘못했다는 말을 반복했을 것이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놓칠새라 필사적으로 쫓아가본 적도 있을 것이다.


지숙의 소매를 그러쥐며 불안한 얼굴로 절규하는 은희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은 그래서 힘겹다. 무겁고 뜨겁고 나약한 감정 하나 지키기 위해 상처로부터 배운 처세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를 은희의 얼굴을 통해 마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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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선생님도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냐는 은희의 질문 뒤에 이어진 짧은 침묵과 시선에는 어떤 감정이 오갔을까? 입을 뗀 영지는 은희의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함부로 침범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을 두 번이나 상처 준 지완의 ‘외롭다’는 말에도 움찔 놀라던 은희에게 묘연하고 신비로운 인물인 영지가 꺼내놓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벌새>를 무너지는 자신의 세계를 구하고 결국 삶의 한 챕터를 통과하는 은희의 영웅서사로 읽는다면 영지는 필시 ‘데미안’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은희가 떠안은 버거운 혼란을 도닥이고 은희를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영지는 은희의 시점에서 본질적인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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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자처럼 보이는 영지도 사실은 20대 청년에 불과하다. 깊은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무력감과 우울을 견디는 밤을 보낸 적이 있고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운동권 속에서 한계를 맞닥뜨리기도 했을 그는 은희의 데미안인 동시에 주어진 삶을 감당하는 싱클레어이다.


자기 앞의 생을 이해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아이의 어깨를 마주 안으며 모든 것을 말해주리라 다짐하는 영지와 마찬가지로 은희 역시 살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는 한편 만화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는 데미안이 될 것이다.


나에게 은희는 고등학생 시절의 선생님 뻘이고 영지는 우리 엄마 또래이니 그들은  지금쯤 마흔 혹은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영지가 살아서 엄마가 되었다면 영지 자신이 주지 못할 유대감을 영지의 딸은 은희 또래의 선생님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지숙이 같은 어른에게 의지하며 성장한 시절이 있을 것이고 우리 엄마에게도 은희 같은 아이가 머물렀던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한순간 부서지기도 하는 세상이 그 모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연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느슨한 연결이 생각보다 더욱 단단하게 묶여있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내내 무심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은희의 엄마가 은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졌던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 우리가 떠나온 최초의 세상에 마침내 맞닿는 그 연결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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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 줄게.


은희가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애도한 그 새벽과 마찬가지로 <벌새> 역시 나에게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도 아침을 맞이하는 법을 알려준 영화이다. 울렁이는 세계를 무사히 통과한 은희가 챕터의 끝에서 비로소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한때 벌새였던 모든 은희들도 지금쯤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기를 바란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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