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시간을 알아본다 - 군산을 바라 보며 [여행]

처음 방문한 군산
글 입력 2019.08.3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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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와 군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날 장대비가 내려 여행이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여행 당일에는 구름만 끼었을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방문한 군산은 왜인지 흐린 하늘의 적막함이 썩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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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내항



우리가 군산을 방문했던 날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고즈넉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일 수도 있으나, 도심 곳곳에 숨어 있는 옛날 건물들이 뿜어내는 정취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군산에 도착하고 가장 처음 방문했던 ‘한일옥’도 약 90년 가까이의 역사를 지닌 건물이었고, 길거리 군데군데에는 낡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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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옥' 내부 2층 사진

1937년 김외과병원 건물로 지어진 적산가옥을

그대로 살린 것이라고 한다.

1층은 식당, 2층은 휴게실로 대기하는 동안

건물의 내부와 골동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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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슈퍼가 보이는 군산의 거리



그래서 그런지 낮은 건물들이 많았다. 신기했다. 요즘은 건물을 지을 때 조금이라도 토지를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 건물에 층을 겹겹이 쌓는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은 보기 드물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단조차 없는 단층 건물들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


군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 하나가 ‘철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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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동 철길 마을



"…원래 경암동 일대는 바다였다. 육지로 변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매립해 방직공장을 지었다. 해방 후에는 정부에서 관리했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땅주인이 따로 없었기에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철길이 놓인 때는 1944년 4월 4일이다. 군산시 조촌동에 소재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 판잣집 사이 기찻길 (길숲섬, 최갑수)



빨갛게 녹슨 철길을 따라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철길의 한편에는 낡은 건물에 들어선 카페, 문구점, 오락실 등이 있고 한편에는 천막이나 비교적 가볍게 지어진 구조물 안에 달고나 만들기 체험이나 사진 스팟 등 야외 시설 위주로 구비되어 있다.

 

옛날 문방구, 캐리커처, 달고나 만들기, 여러 가지 활동을 즐길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사진 촬영’이다. 철길 한가운데에 서서, 혹은 철길에 끝에 있는 기차 앞에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벽 앞에서,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철길마을을 구경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사진과 관련 된 시설이 많았다는 것이다. 철길 마을 초입에는 ‘교복 대여점’이 있고, 사진 부스도 있으며, 전문 사진사에게 지불하여 촬영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덕분에 길거리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고 한창 촬영 중인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진 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철길마을 외에도 마찬가지였다. 군산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사진 부스나 사진관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 또한 흑백 사진관에 들어가 옛날 교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친구와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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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에서 돌아오고 보니 어느 여행 때보다도 많은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풍경 사진이 아닌 대부분이 나 혹은 친구가 담겨 있는 인물 사진이었다.

 

사실 군산은 큰 도시가 아니고, 화려한 관광지로 유명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다녀온 후 특별히 볼 게 없었다는 말도 한다. 사진 촬영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산은 여전히 많은 의미를 품은 도시이다. 병원이 음식점으로 탈바꿈했어도, 빈곤자의 마을이 사진 명소로 바뀌었어도 그들의 변신을 비난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많은 낡은 것들이 철거되고 재개발 되는 시대에 옛사람들의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거스르고 시대를 이겨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 노력을 알아본다. 전통을 보전하는 것의 고됨을 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효율성에 못 미치는 결과물들을 버리지 않으려는 선택의 숭고함을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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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이국적 풍경에 대한 동경심,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 등에서 비롯된 추억 욕구에 더욱 깊이를 더하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우리보다 나이 먹은 건축물들이다. 난방이 시원찮고 수압이 약해도 우리는 그 숙박시설을 기꺼이 이용한다. 그래, 좀 불편했어. 그래도 이런 게 남는 거지.


우리는 기념하고 싶은 것 앞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생각해보면 군산은 기념하고 싶은 것 투성이였다.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유적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건물, 물건, 공간들은 의미를 갖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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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어느 골목

사진의 왼쪽을 보면

오래 된 나무 전봇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에

안내판이 붙어 있어

전봇대의 연식과 과거 동네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어느덧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습기를 잔뜩 머금었던 공기가 조금씩 건조해짐이 느껴지자, 아직 물들지도 않은 가을의 붉은 물결이 벌써 각막에 맺히는 듯하다.


쓸쓸한 바람의 계절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정취가 묻어나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군산, 그 낭만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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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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