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세대 영웅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영화]

명예로운 죽음과 세대교체
글 입력 2019.08.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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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에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과

<로건>(201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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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많은 마블 코믹스의 팬들은 크나큰 상실감을 겪어야 했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전성기의 시작으로 여겨도 무방할, 우리의 히어로 ‘아이언맨’의 죽음 때문이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는 어벤져스 팀과 여러 힘 있는 영웅들이 합세하여 지구를 침략한 무리를 물리친다. 그 과정에서 아이언맨은 타노스의 핑거스냅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핑거 스냅을 행하게 되고, 인피니티 스톤들의 에너지에 노출되어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만다.

 

몇 편의 영화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MCU의 시리즈들을 지켜봐온 팬으로서, 그의 죽음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이었다. 언젠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마블 영웅이 아이언맨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와의 이별은 쉽사리 잊힐 수 없는 것이었다.

 

안타까움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표출된다. 누군가는 왜 꼭 아이언맨이 죽어야 했냐며 항의한다. 그의 죽음 뒤에 남겨진 부인과 딸의 처지를 연민하는 이들도 있다. 아빠를 그리워할 가족, 동료, 자신의 세상을 모두 뒤로하고 떠난 당사자인 아이언맨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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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등장인물들 중 이처럼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간 캐릭터는 사실 아이언맨이 처음은 아니다. MCU와는 별개의 세계관에 존재하지만 같은 마블 코믹스 출신의 영화 시리즈가 있는데, 바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엑스맨> 시리즈이다.

 

2000년에 개봉한 <엑스맨>으로 시작된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사회에서 차별 받는 돌연변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들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외양이 다르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인데, 이러한 ‘특별함’ 때문에 돌연변이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호모 사피엔스’들로부터 배척을 겪곤 한다. 경계하는 시선, 물리적인 위협, 법적인 제재 등 다양한 경로로 가해져오는 배척에 대해 돌연변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항한다.

 

바로, 이 ‘저항하는 방법’의 차이가 <엑스맨>의 대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요소이다. 돌연변이들을 위한 학교 ‘자비에 영재 학교’의 교장인 ‘찰스 자비에’는 인간과 돌연변이를 위험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단체인 ‘엑스맨’을 결성한다. ‘인간과 돌연변이 간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찰스의 신조 아래 만들어진 ‘엑스맨’은, 화합을 해치려는 돌연변이들과 맡서 싸우기도 하고, 돌연변이를 배제시키려는 인간 세력에 대항하기도 한다. 이것이 엑스맨 시리즈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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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이런 줄거리를 모르더라도 ‘엑스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금속 클로(claw)와 인상적인 머리, 수염 스타일을 가진 ‘울버린’이라는 인물이다. 만약 자신이 ‘휴 잭맨’이라는 배우가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어디선가 이 캐릭터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의 영화 <로건>이 개봉했다. ‘울버린’이 ‘엑스맨’이라는 단체 내에서 사용되는 이름이라면, ‘로건’은 그가 일상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로건의 능력은 손에서 튀어나오는 칼날과 어떤 상처도 회복할 수 있는 치유능력이다. 그는 치유능력 때문에 육체가 늙지 않아 청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며, 온 몸에 파괴 불능 금속인 ‘아다만티움’을 주입하는 생체 실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로건은 온 골격이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져 있고 목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는 한 죽지 않는, 최고의 전투 병기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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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던 고령의 로건이 계속해서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했던 것에 반해, <로건>에서는 노화가 꽤나 진행된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흰 머리가 잔뜩 나고 온몸에 흉터를 가진 채 등장하는 로건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밝히기를, 모종의 이유로 로건의 치유능력이 약화되고 그 때문에 체내에서 발생하는 아다만티움의 중독 반응을 상쇄시키지 못해 점차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병든 로건, 그 못지않게 병든 찰스가 <로건>의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찰스는 인간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 ‘텔레패스(telepath)’ 능력자였으나, 영화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누구보다도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처지로 등장한다. 그의 정신능력은 다수의 사람들을 동시에 마비에 걸리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전성기를 지나 퇴역한 군인처럼 초라해져버린 그들의 신세도 안타까웠지만, 그 신세마저도 영화 속 운명에 의해 단호히 끊어지고 만다. 그들의 운명은 한 소녀를 지키다가 장렬히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장렬한 전사’, 이것이 화려했던 그들의 일대기를 끝맺는 유일한 수식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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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는 2008년 <아이언맨>으로 MCU의 흥행을 시작한 개국공신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로건은 엑스맨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심적인 인물들이었기에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걸맞은 결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픽션 장르들 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제약이 따르는 장르이다. 소설, 만화 등 여타의 영역들에서도 연재 기간이나 계약 여부 등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영화는 이보다도 더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현실의 사람들이 가상의 인물들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실제 배우들이 작품 내 캐릭터 설정을 좌우하기도 한다. 배우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역할의 나이를 맞출 수도 있고, 연령이나 계약상의 이유로 더 이상 역할을 소화해낼 수 없게 되면 그대로 영화가 막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마블 코믹스의 원작 만화 내에서는 캐릭터가 죽었다가도 살아나기도 하고, 끝난 듯 했다가 다른 시리즈로 이어지기도 하고, 같은 캐릭터가 같은 나이를 유지한 채로 몇 년이 연재되기도 한다. 현실의 시간이 흐른다고 종이 속 캐릭터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는 단 몇 년으로 사람이 청년에서 중년의 경계로 넘나드는 시간이 흘러가는 세계이다. 때문에 원작 만화의 캐릭터와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하는 영화 속 캐릭터는 다른 차원의 산물이다. 우리는 <아이언맨>을 볼 때 영화 속 캐릭터 ‘토니 스타크’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엑스맨>을 볼 때는 온전히 가상인물로써 ‘로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토니 스타크를 볼 때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로건을 볼 때는 배우 ‘휴 잭맨’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육체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목소리로 말하였고, 그들의 연기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아이언맨과 로건의 생이 끝났다는 사실에 대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들 배우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 더해진 것이다. 만약 아이언맨이 다른 배우로써 부활한다면, <엑스맨>이 리부트되어 로건이 다시 등장한다면, 우리의 슬픔은 해소될 것일까. 우린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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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 다른 배우를 통해 영화로 내보여진 ‘스파이더맨’의 경우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이다.


2002년 처음 개봉한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2007년까지 총 두 편의 후속편을 내보인 뒤 일단락되었고, 2012년에는 앤드류 가필드가 그 명맥을 이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써 다시금 스파이더맨의 인기를 부상시키는 듯 했으나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한 채 2014년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톰 홀랜드가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등장하여 어벤져스에 합류함으로써, MCU의 새로운 영웅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세 명의 배우는 모두 같은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시간과 나잇대는 조금씩 다르지만 틀림없이 그들은 같은 ‘피터 파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동일한 지점보다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바라본다. <스파이더맨3>에 이어 등장한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결코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우리의 향수를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에 대한 그리움을 강화 시켰을 뿐이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짐작건대, 아마도 몇몇 현실의 여건들이 어긋나서 무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시리즈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영화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영화 속 죽음만이 캐릭터의 맥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속 죽음은 각본가의 철저하게 의도 된 수순을 밟으며 맞이하게 되는 것이므로 여전히 서사의 중요한 일부이며, 캐릭터의 일생을 ‘완성’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죽어버린다면 우리는 캐릭터와 그의 서사를 떠나보낼 시간조차 얻지 못한다.

    

*


아마도, 아이언맨은 죽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번 영화까지만 계약이 되어있었고, 더 이어나가기엔 그의 나이도 무시 못 할 것이기에.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타노스의 죽음과 함께 MCU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또다시 아이언맨이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면, 더 이상 그 캐릭터는 이전과 같은 환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로건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영화 속 로건의 묘사가 배우의 실제 나이보다도 더 늙어보이게 만든 것이긴 했지만, 지금껏 2000년에 시작 된 <엑스맨> 1편부터 <로건>까지 그가 나오지 않은 작품이 없었으니 그는 이미 17년 동안이나 그의 자리를 지켜 왔던 것이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출연한 것이 아님에도 이토록 오래 그 역할을 해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적정 시기에 은퇴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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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맞이한 죽음은 명예로운 죽음이다. 그들은 끝까지 ‘영웅’의 위상을 지키며 숨을 거둘 수 있었다. 아이언맨은 이 시대 최고의 빌런(?)을 응징하며, 로건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이들을 지켜내고 떠나갔다. 비록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과 휴 잭맨의 울버린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겠지만, 영원히 가슴 속에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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