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 입은 성'에 대한 한 남자의 이야기, '수수께끼 변주곡'

가슴으로 외치는 욕망의 소리
글 입력 2019.08.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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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수수께끼 변주곡>
ENIGMA VARIATIONS

저자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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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솔직할까? 간혹 사랑과 분리하려고 하는 욕구나 욕망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자연스러울까? 단순해 보이는 동시에 그보다 복잡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어려운 주제이다. 이에 대해,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의 저자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은 신간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을 통해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조금의 용기를 남겨준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총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에 ‘폴’이라는 남자가 있다. 작품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다루며, 첫 챕터를 사춘기 시절 풋내 나는 반짝임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난 마지막 챕터에선 바래고 무뎌진 모습으로 마무리 짓는다. 마치 ‘폴’의 일대기를 죽 늘어놓은 것으로부터 ‘사랑’, ‘욕구’, ‘욕망’과 같은 키워드를 골라 자세히 서술해 놓은 것만 같다.

특히나 독자는 이 ‘폴’과의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유대를 경험하게 되는데, 다섯 챕터를 통틀어 1인칭 시점을 고집하는 해당 작품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크고 작은 일화들은 상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다. 결코 친절하거나 조심스럽게만 볼 수는 없는 그의 심경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설명 전부이다.

특히, 대부분의 챕터가 초중반을 꽉 채워 주인공 혼자만의 생각과 의견, 상상과 추측으로 가득하다가 챕터의 끝부분에 다다라 문제 대상과의 대화나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 내용 전개가 이루어진다. 마치 이 정도면 독자가 개인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뒤늦게 진전하는 이러한 구조는 전개에 대한 갈증 해소와 더불어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집중을 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촌각을 다투며 서술하는 자신의 감정은 폭격이 난무하는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챕터인 <봄날의 열병> 중, 저녁 식사 테이블 아래 자신의 여자친구와 낯선 남자가 벌이는 스킨십을 어떤 브레이크도 없이 상상을 펼치는 장면이나, 세 번째 챕터인 <별의 사랑> 중, 자신의 사랑을 ‘사산(死産)된 사랑’이라 이름 지으며 한순간에 숨 막혀 하는 부분 등이 그러하다.

만약 그대가 온몸으로 간절함을 내보이는 그를 외면하는 태도로 독서를 일관했다면 책을 끝맺는 일이 상당히 어렵고 불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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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과감한 표현방식은 공통적이지만, 시기별로 나뉜 챕터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는 문체도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 챕터인 <첫사랑>은 그야말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12살 소년의 혼란한 감정을 저변에 깔고, 첫사랑이며 짝사랑의 날 것의 면모를 가장 많이 보여준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에게 키스할 것이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 손끝에 침을 살짝 묻혀서 내 뺨을 문질렀다. 그 순간 그가 시키는 것은 뭐든지 했으리라.” 
– p. 51

“듣지 못한 척했다. 하지만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말하면 온몸이 얼어붙었다. ‘난니’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그 이름 주위에 쌓았던 방어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p. 68


한편, 세 번째 챕터인 <만프레드>에서 성인이 된 주인공은 시야와 생각이 비교적 넓어졌으나 문체는 더욱 사적인 편지글 형식을 사용한다. 제목 그대로 오직 ‘만프레드’ 한 사람만 바라보며 서술하고 있으며, 이에 얽힌 자신의 오만가지 상상을 늘어놓는다. 읽다 보면 마치 절절한 연서(戀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망설임이라고는 없이 적나라하고 저돌적인 그의 표현이 혹자에겐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쯤 읽은 독자라면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런 상냥함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감정표현의 연속이 독자의 가슴에 약간의 울림을 남긴다면 꽤나 특별한 방식으로 동기를 일으킨다고 말하고 싶다.


“인생 전체가 내 가림막이죠. 나 자신도 가림막입니다. 진짜 나는 얼굴도, 목소리도 없고 항상 나와 함께 있지도 않아요. 진짜 나는 번개가 친 뒤에 울리는 천둥처럼 아주 먼 곳에 있기도 해요. 천둥이 없을 때도 있죠. 그저 번개만 치고 침묵이에요. 당신을 볼 때면 번개가 치고 침묵이 흐르죠.” 
– p. 165

“항상 주기가 똑같아요. 끌림, 애정, 집착적 갈망, 그다음은 항복과 폐기, 무관심, 마지막으로 경멸. 하지만 샤워장의 젖은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오는 당신의 플립플롭 소리만 들어도 무관심이 판결이 아닌 유예였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 p. 176


다섯 개의 챕터는 저마다의 시기에서 주인공 ‘폴’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다. 그 형태가 흔히 사회가 말하는 바람직한 ‘모양새’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 한 권의 책 안에서만큼은 그것이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사건의 심각성을 논하는 데 있어 불륜이며 일대다(一對多) 사랑에 대한 잣대는 벗어나 있다. 오롯이 개인의 감정과 상태에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의 초점은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기존에 만연했던 사고방식을 재고하게 만들며, 1인칭 시점으로 일관되는 서술이 이 같은 흐름에 박차를 가한다.

안드레 애치먼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철저히 머리보다는 가슴의 소리에 집중한다. 독자는 ‘폴’이라는 인물을 빌어 휘몰아치는 사랑의 다양한 양상과 감정을 한바탕 경험한다. 인간의 성장에 맞춰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욕구와 사랑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서 함께할 것이다. 작품은 변화하는 ‘나’의 모습에 따라 겪는 감정의 형태가 낯설고 편하지만은 않을지라도 그것을 대면할 마음가짐이 적어도 어떤 것일지 계속해서 은근히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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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애치먼은 흥분되도록 아름다운 글을 쓴다. 이 책을 다 읽는 순간 바로 그리워질 것이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몰입하여 생생히 살아 있는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폴 리스키, 《뉴욕 타임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폴. 어느 날 별장을 찾아온 목공 조반니(난니)를 만난다. 어머니가 앤티크 책상과 액자 두 개를 복원하기 위해 부른 터였다. 그 후 가족의 눈을 피해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뉴욕 매거진이 선정한 '21세기 가장 흥미로운 신소설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어른이 되어서도 늘 소년 같은 사랑을 탐하는 화자(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광장〉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각기 다른 독특한 문체로 마치 변주곡을 연주하듯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색도 모양도 다른 온갖 꽃들의 사랑과 욕망이 조화롭게 뒤섞인 꽃다발처럼.

한편 작가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남부 이탈리아 해변 마을, 눈 덮인 뉴잉글랜드, 센트럴파크의 테니스코트, 이른 봄 뉴욕의 거리 등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사람 사이의 불가해한 욕망의 조각을 발견하고 생생하게 서술하는데, 각각 하나의 소설로 봐도 좋을 만큼 독립된 완성도를 보여 준다.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수수께끼 변주곡》은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으로 국내 독자에게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이 20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수수께끼 같은 사랑 이야기 다섯 편으로 구성했는데, 각 장마다 독특한 언어를 구사해 감각적이고 진솔한 목소리로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 〈첫사랑〉의 폴(파올로)은 《그해, 여름 손님》의 엘리오와 닮았다. 작가가 가장 자신 있는 소재로 소설을 시작한 셈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짝사랑을 향한 소년의 목소리는, 특히 가슴속에 품은 솔직한 성적 욕망이 화자와 독자를 순식간에 하나로 만든다.


당신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난니. 어디를 가든, 누구를 보고 갈망하든, 결국은 당신의 반짝이는 빛을 잣대로 재게 되죠. 내 삶이 배라면, 당신은 배에 올라 야간 항행등을 켜 놓고 영영 사라져 버린 사람이죠. 모두 내 생각뿐일지도, 내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빛으로만 살아왔고 사랑을 했어요.

- 본문 중에서


〈봄날의 열병〉에 들어서면 다른 작가의 글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현재 시제와 현대적 도시를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그리고 남자의 수수께끼를 날카롭게 풀어 간다. 하지만 화자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자면 어느새 우리가 아는 작가의 의도대로 함께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만프레드〉에 이르러 최고조의 욕망을 표출한다. 성인이 된 남자의 목소리로 다시 속삭임이 시작되는데 잘 다듬어진 문장이 갈증을 일으킬 만큼 애를 태운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를 보지만 제대로 보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나를 보지만 내 안에서 점점 세게 휘몰아치는 폭풍을 아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없죠. 나만 아는 은밀하고 작은 지옥. 난 그 안에서 살고 그 안에서 잠들 뿐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좋아요. 당신은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알까 봐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별의 사랑〉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한 여자를 통해 깨어난 욕망의 불꽃을 키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애빙던광장〉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사랑의 대상, 의식과 성적 욕망이 어떻게 흐르고 완성 혹은 좌절되는지 보여 준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한 사람의 어지러운 사랑 이야기로 읽어도 좋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변주곡의 악보를 넘기는 지휘자의 욕망으로 들어도 무방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에는 그 수수께끼 같은 감정에 한동안 아찔한 욕망을 느낄 것이다.



<저역자 소개>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 André Aciman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출생. 뉴욕대학에서 작문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며 가족과 함께 맨해튼에 살고 있다. 1995년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로 화이팅 어워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1997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해, 여름 손님》으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는 《아웃 오브 이집트(Out of Egypt)》 《폴스 페이퍼스(False Papers: Essays on Exile and Memory)》 《프루스트 프로젝트(The Proust Project)》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여덟 개의 하얀 밤(Eight White Nights)》 《알리바이(Alibis: Essays on Elsewhere)》 《하버드광장(Harvard Square)》이 있다.


옮긴이 정지현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거주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소설과 아동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스위밍 레슨》 《셰이프 오브 워터(공역)》 《에이번리의 앤: 빨간 머리 앤 두 번째 이야기》 《피터 팬》 《오페라의 유령》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호두까기 인형》 《비밀의 화원》 《하이디》 《핑크 리본: 세계적인 유방암퇴치재단 코멘 설립자의 감동 실화》 등의 역서가 있다.






수수께끼 변주곡
- Enigma Variations -


지은이 :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36쪽

발행일
2019년 07월 17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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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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