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첫사랑에서 끝사랑으로 나아가기 -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소년의 풋풋함으로 시작해 어른들의 사랑으로 끝나다.
글 입력 2019.08.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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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이 영화화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탓인지, <수수께끼 변주곡>은 전작과 그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수수께끼 변주곡>의 포문을 여는 첫 단편 <첫사랑>의 주인공인 소년 파올로과 청년 목수 난니의 이미지는 곧 <CALL ME BY YOUR NAME>의 엘리오와 올리버를 연상시켰다.

 

불현듯 찾아온 감정이 곧 사랑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파올로에게서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려 노력했던 엘리오의 모습이 그려졌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월함을 드러내는 난니의 모습에선 자연스레 올리버가 겹쳐졌다. 더불어 풋풋한 첫사랑의 기분을 더해주는 산지우스티니아노 섬 또한 <CALL ME BY YOUR NAME>의 배경과 같은 이탈리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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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사한 변주 속에서도 작가는 분명한 차이점을 두었는데, 이는 바로 어린 주인공이 사랑의 정체성에서 더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CALL ME BY YOUR NAME>에서 엘리오는 자신이 올리버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혼란을 겪는 모습이 그려진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향한 숨길 수 없는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올리버를 좋아한 키아라를 그에게 소개해주고 자신을 좋아하던 마르시아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엘리오는 올리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나아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올리버가 자신을 질투하도록 만들게 한다.

 

그러나 <첫사랑>의 주인공 파올로에게는 엘리오가 보여준 정체성의 혼란과 복잡한 감정선은 삭제되고 원초적인 사랑의 갈구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열두 살 소년 파올로는 매일 저녁 난니의 작업실에 찾아가 사랑을 갈구한다.


비록 그는 그가 하는 행동이 구애의 몸부림인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도발적으로 난니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때로는 파올로가 정말 12살일까 싶을 정도의 노골적인 성적 욕구가 내적으로 표현되지만, 그 감정선이 흔들리지 않고 올곧다는 점에서 그 전작과 명확한 차이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작품은 겹쳐지면서도 동시에 명확한 차이를 가졌다는 감상을 느끼면서 두 번째 단편인 <봄날의 열병>으로 책장을 넘기니 그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괄편집_2019. 8. 4. 오전 2_30_01의 Scannable 문서.jpg

▲표현이 아름다웠던 구절

 

<첫사랑>을 제외한 (어쩌면 이 이야기까지 포함한) 이후 네 편의 이야기는 서로 같은 인물들을 공유하는 연작소설의 형식을 지닌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공 폴이 등장하고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결의 ‘폴’들은 각각의 단편에 등장해 새로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배경 또한 여유로운 분위기의 이탈리아 섬에서 매연이 가득한 도심으로 이동한다. 이전까지 서사가 주는 이미지는 푸릇한 하늘색 혹은 청명한 녹음을 연상시켰다면 그 이후부터는 무채색으로 가득한 공간이 주된 분위기다. 주인공들 또한 모두 각자의 고된 현실이 존재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또한 세속적이다. 끊임없는 의심과 불륜,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은 그것이 그려지는 도심과 닮아 있어 어딘가 모르게 분주하고 복잡하다.

 

안드레 애치먼의 성적 묘사는 상당히 노골적이다. 때론 병적인 집착이 느껴지며,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를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성적인 표현은 물론 소년의 첫사랑을 그리는 <CALL ME BY YOUR NAME>과 <첫사랑>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배경이 가지는 여유로움과 소년의 첫사랑이 선사하는 풋풋함이 노골적인 표현의 수위를 상쇄시키는 기분을 자아낸다. 다소 불편하고 선을 넘는 기분이 들 때 즈음, 소년의 풋풋함이 등장하거나 이탈리아의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첫사랑> 이후 《수수께끼 변주곡》에 등장하는 네 편의 장편은 더 이상 첫사랑의 풋풋함과 여유로운 이탈리아의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빌딩과 매연이 가득한 잿빛 도심과 불륜과 성적인 관계가 주된 목적인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런 자극적인 소재와 더불어 한결같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에 작가가 분명 이전과 다른 주제를 던지려 함을 잡애낼 수 있었다.


안드레 애치먼은 소설의 배경을 도심으로 이동하고 그를 이끄는 주인공을 성인으로 선정하면서 이전 작품과의 차별성을 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도심에서 벌어진 사랑의 병폐”를 그리려고 했다면 아마 그것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 같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아내와 불륜남의 잠자리를 상상하는 <봄날의 열병>의 폴, 애정보단 스토킹에 가까운 사랑을 보여주는 <만프레드>의 폴, 서로의 사랑의 너무 뜨겁지만 단면이 너무 날카로워 4년 마다의 성관계로만 그를 해소하는 <별의 사랑>에서의 폴. 이런 여러 모습의 ‘폴’은 나의 상식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서사였으며 흥미보다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

 

<CALL ME BY YOUR NAME>을 인상 깊게 보고 비슷한 분위기를 상상했기에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한 방 먹었던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진다. 더불어 이 책의 첫 번째 작품인 <첫사랑>에서는 본래 기대하던 감정을 만족시키고 후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는 기폭제 역할을 했기에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만약, <CALL ME BY YOUR NAME>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독자는 《수수께끼 변주곡》의 첫 번째 단편 <첫사랑>을 읽어보길 바라며,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깊은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의 모든 단편을 즐겨 보길 바란다.

 





수수께끼 변주곡
- Enigma Variations -


지은이 :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36쪽

발행일
2019년 07월 17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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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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