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앤서니 브라운전, 그가 올해 74세라는 걸 믿을 수 있겠어요? [전시]

글 입력 2019.07.3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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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인 앤서니 브라운의 마음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



'몸은 어른이어도 마음은 어린이인 사람'이라는 평은, 대개 긍정적인 평가를 함축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자라나면서 예의와 규범을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더 절제하는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어린이의 상상력, 자유로움, 해맑음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참 어렵기에, 훌륭한 어른이면서 동시에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낼 수 있는 사람은 참 드물다. 동화 작가의 위대함은, '어른인 몸과 어린이의 마음을 동시에 갖추는' 난제를 해결해내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않을까?


앤서니 브라운전은, 동화작가에게 주어지는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상'을 2000년에 수상하고, 현재까지 40개가 훌쩍 넘는 동화들을 집필한 영국의 베테랑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부제가 '행복 극장'인데, 이는 앤서니 브라운이 가장 중시하는 동화의 테마 중 하나가 '행복'이며, 그가 본래 동화는 해피엔딩인 것이 좋다는 철학을 갖고 있기에 붙여진 부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으며 유쾌해지고 발랄해지는 것을 원하며, 중간에 어두운 내용이 등장하더라도 결말을 읽고난 뒤에는 독자들이 행복한 미소를 띈 채 책을 덮을 수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 동화들의 결말은 영원히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혹은 '엄마아빠는 슈퍼맨이 아니라 슬퍼하고 분노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 새드엔딩도 흔히 존재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필연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 불가항력일지라도,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세상을 낙관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비극적 삶을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동심'의 조각들을 마음 속에 품으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앤서니 브라운은 올해 한국 나이로 74세이다. 그러나 전시를 다 관람한 다음, 나는 그의 안에 수줍은 꼬마가, 패기있는 청년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은 아빠가, 일에 치여 서글픈 중년이 모두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동화는, 그가 발달시키고 간직해온 수많은 정체성들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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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동화의 매력 1. 고릴라의 순수한 눈동자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들에는 고릴라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영화 '킹콩'을 본 뒤 소재를 따오게 되었으며,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본인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고릴라를 표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릴라는 덩치가 크고 우람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굉장히 위협적이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털을 골라주며 친밀함을 표현하기도 하는 사회적이고 쾌활한 동물들이다.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이야기에 등장시키는 것은, 아이들에게 '인간' 중심의 세계 이외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물론,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고 주변 환경과의 친화력을 높여준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일 것이다.


예전에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고릴라'를 읽은 적이 있다.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빠가 너무 바빠 그러지 못해서 슬퍼하는 한나에게, 선물받은 고릴라 인형이 꿈 속에서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타나 아빠처럼 함께 동물원에 가주고 한나와 즐거운 하루를 함께 해주는 내용이었다. 전시회를 마치고 굿즈 샵에 진열된 동화책 중 '고릴라'를 다시 펴서 읽어보는데, 얼마 전에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이웃집 토토로'가 생각났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아빠는 바쁘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토토로가 따뜻한 친구이자 지원군이 되어주는 이야기가 농촌 풍경 안에서 아름답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과 애정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아이보다는, 늘 보다 많은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들이 아마 더 다수일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는, 순수한 눈망울과 드넓은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어준다.



이번 전시 '앤서니 브라운전'에서도 '꿈꾸는 윌리', '우리 아빠가 최고야', '미술관에 간 윌리'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고릴라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꿈꾸는 윌리'에는 윌리가 꿈속에서 영화배우, 미술가, 탐험가, 가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아이들의 꿈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지를 떠올리면 이 장면들이 더욱 정겹다. 윌리는 갑자기 왕이 되기도 하고, 끔찍한 괴물도 되었다가,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어떤 일은 나이가 들수록 쉬워지지만, 어떤 일들은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불가역적으로 어려워진다. 삶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능력이 그렇다. '도대체 세상의 진로는 왜 이렇게 한정적인거야?'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우리는 예전의 내가 얼마나 많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해내야 한다.




앤서니 브라운 동화의 매력 2. 이것은 동화인가, 예술인가, 둘다인가?



앤서니 브라운은 본인이 '초현실주의' 예술 작품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예술적 사조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다룬 심리학 개념들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앤서니 브라운은 초현실주의의 여러 기법들 중에서도 '변형'을 주로 썼다고 하는데, <달라질거야>(1990) 작품에서 그의 '변형'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조셉은 동생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데, 그런 그의 심리가 주변 사물들이 기상천외하게 변화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패러디하여 동화 속에 넣기도 하는데, 아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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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윌리> 中
아래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과 매우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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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우리는 흔히 '어린이'를 대하는 직업을 평가절하하거나 '쉬운 일'로 매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는 한다. 유치원 교사의 지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동화 작가가 기성 작가들에 비해 그 예술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 등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실은 어린 아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어른이야말로 누구보다 지혜롭고 창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는, 동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술 작품이며 그의 삶의 철학이 녹아든 이야기의 집합이다.


아래는 내가 전시를 보다가 감명을 받았던 동화 <행복한 미술관>의 한 장면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에 함께 간 가족들이 각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이 동화를 그렸다고 한다. 처음에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작품에 이미 빠져든 엄마와는 달리 아빠와 두 아들, 세 남자들은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모습이 아래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프레임 안쪽에 자리한 엄마와는 달리 프레임 바깥에서 미술관 내부를 관조하고 있는 아빠와 아들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같은 내용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표현하는 지에 따라 작품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역시 천차만별이 된다. 앤서니 브라운은 공상으로만 그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종이 위에 구현해 내는 데에 천재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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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을 위한 동화? 어른도 읽을 수 있는 동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은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들의 영화들인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유명한 작품들을 몇 년에 한번씩 다시 보고는 한다.


이런 애니메이션들을 챙겨보는 이유는, 비록 재난 영화처럼 스펙터클하지도, 로맨스 영화처럼 애달프지도, 아주 철학적이거나 복잡하지도 않지만 성인인 나에게도 필요한 삶의 간단한 진리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간단한 원칙들은 손쉽게 잊혀진다. 동화들은 우리에게, 가장 쉬운 문제야말로 때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인생의 진리를 되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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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 내부에 꾸며져 있는 아이의 침실.



앤서니 브라운전을 보기 전, 혹시 어린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조금은 전시 감상에 방해가 되거나 불편하지 않을지, 걱정도 들었다. 블로그 후기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방문한 후기밖에 없어서, 내가 혹시 잘못 신청한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를 보면서 그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거기에 있는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신이 나서 전시회장을 돌아다녔고, 아기자기하고 단란하게 꾸며진 전시장 내부에 감탄했다.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성립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동화라면, 분명 어른들이 읽어도 감동받을 만한 이야기 구성과 교훈들을 담고 있을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아이들을 얼마나 섬세하고 지혜로우며 상상력 많은 존재들로 그려내고 있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예전에 한 명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지금도 아직 마음 안에 그 아이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의 때가 끼어버린 마음을 보면서, 그 아이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외양에만 신경쓰지 말고 울고 있는 나 자신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옥죄지 말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라고 나를 충동질하고 있을지도.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 동화 속 세상으로의 초대 -


일자 : 2019.06.08 ~ 2019.09.08

시간
11:00 ~ 20:00
(입장 및 매표 마감: 19:00)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티켓가격
성인(만19세이상) : 15,000원
청소년/어린이/유아(24개월~만18세) : 10,000원

주최/주관
예술의전당
아트센터 이다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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