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빈 껍데기 어른 [사람]

무례함은 또 다른 폭력이다.
글 입력 2019.07.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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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장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 옆자리에 앉은 스무 살 남짓 돼 보이는 젊은 여자가 친구와 통화를 한다. 보통 지하철에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얘기는 잘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듣고 싶지도 않은데 유달리 목소리 큰 그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려온다.


수제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듯한 그녀는 얼마 전 고약한 손님을 만나 자존감에 상처를 크게 입은 듯했다. 상품에 문제가 없음에도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패티가 비리다느니, 인증받은 유기농 채소가 맞느냐며 괜한 트집을 잡으며 손님들 앞에서 무안을 줬다고 한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굴욕적이었지만 상품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한 뒤, 패티가 많이 비리다 느낀다면 매니저분께 말씀드려 다시 요리를 해드리겠다고 제3자인 내가 들어도 너무나 적절한 상황대처를 잘한듯한데도, 그 손님은 말대꾸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며 그 후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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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매니저가 달려와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음에도 그 손님이 원한 건 자기 앞에 굽실굽실하며 떠받들어주길 바라는 잘못된 갑질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손님 앞에서 자신에게 허리 숙여 매니저와 아르바이트생이 사죄하길 바란다며 큰 소리 떵떵 쳤고, 주변의 다른 손님들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행패 탓에 결국 매니저는 그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한 뒤, 그는 쫓겨나다시피 매장을 나갔다고 한다.

그 뒤에 이어진 얘기가 더 소름 끼치는 얘기였는데, 그렇게 행패 부리며 나갔던 그 무례한 손님은 정확히 이틀 뒤, 여러 명을 대동하여 다시 그 매장을 방문했고, 아주 젠틀한 손님인 척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가며 매니저에게 쪽지를 한 장 건넸다고 한다.

 

“내 SNS로 너희 매장 문 닫게 해줄게.”

 

와, 순간 이어폰 빼고 그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뻔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인플루언서 갑질? 정확히 그 사람이 자신의 SNS로 누군가를 망하게 할 만큼의 큰 파문을 일으키는 진짜 인플루언서인지는 몰라도 그 쪽지의 내용은 정말 고소감 아닌가??


요즘 SNS가 엄청나게 활성화되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던데 그중에 하나가 인플루언서 값질 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들이 더 많겠지만, 일부 몇몇 인플루언서의 잘못된 인식의 문제들이 이러한 형태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게 정말 실화라는 사실이 같은 어른으로서 그 어린 여학생에게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에게 털어놓던 그녀는 그날 저녁, 부모님이 떠올라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신도 부모님에겐 너무 소중한 자식인데 그 손님이 무어라고 자신을 하대하고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자의식에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고 하는데 그 얘길 듣고 있던 옆자리에 나도 같이 슬프다.

 

친구가 그래서 관뒀느냐고 물었는지 아니라고, 지금도 자존감 어루만지며 그 햄버거가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날 당장 관두고 싶었지만, 자신은 금수저도 아니고 그런 일 있다고 해서 관두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는 그녀가 그 나쁜 놈보다 한참은 더 어른인 것 같다.


단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이유만으로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그 여학생에게서 이 무슨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게 된 경위가 독특하긴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얘기이다. 다시 한번 든 생각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의 없고, 경우 없는 사람들이 흔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싫다.



나이 많은 게 뭐 그리 큰 대수라고.

 

나이만 많다고 제대로 된 어른이라 말할 수 없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배가 불러있는 임산부에게 정말 임산부가 맞느냐고 언성을 높이던 70대 노인이야기, 일과를 마친 뒤 지친 몸을 뉘이며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당당히 다가와 무릎을  막대로 툭툭 치며 당연하단 듯이 자리를 양보하라는 특히 등산복 입은 어르신의 행태는 정말 존중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서투른 어른들을 언제까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할까. 서로에 대한 배려가 존재할 때 예우라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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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하던 그 여학생은 부모님을 뵈러 가던 길인 듯했다. 부모님과 함께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며 안 좋았던 일보단 좋고, 행복했던 일들을 훨씬 더 많이 얘기하겠지. 그리고 부모님을 뵙고 나면 분명 다시금 깨달을 것이다. 자신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목소리가 유독 컸기에 어쩔 수 없이 엿들었던 그녀의 얘기였지만, 그 통화내용은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게 했고, 좀 오랫동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모든 일에 당연한 배려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내가 대우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본인이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타인의 상처를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되며 그런 허울뿐인 부족한 어른으로 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생의 대사를 빌어 이렇게나마 응원하고 싶다. 언제고 그녀가 미생이란 매체를 마주하며 이 대사를 꼭 가슴에 새기며 상처받더라도 굳건하게 어른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잊지 말자. 나는 부모님의 자부심이다.“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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