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비평, 누가 읽고 무엇을 쓰고 [문화 전반]

비평을 회의하는 목소리에서 찾은 비평의 가치
글 입력 2019.07.2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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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연극 합평회에서 한 평론가가 작품에 대한 비평문을 낭독했다. 작품의 연출가도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물었다. “언급된 논점들에 관해 이야기할 부분이 있나요?” 비평에 대해 달리 소감이나 의견이 있는지, 작품에 대해 덧붙여 설명할 만한 것이 있는지 물은 것이었다. 연출가는 이렇게 답했다. “예술은 개개인이 자유롭게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는 사실상 질문에 답하는 것을 거부했다. 작품에 관한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일이 언제부터 상대방의 견해를 부정하는 일이 되었을까. 그의 말에 따르면 비평은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관객 각각이 섬처럼 외따로 존재하며 각각의 작품을 자기 관점에서 잘 감상하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예술의 효용은 이미 충족된다.


또 다른 평론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앞서 발표한 평론가들의 발표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연극에 대해 합평하는 자리인데 비평문을 그대로 낭독하는 것은 너무 딱딱하다고 했다. 그는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가며 자신이 써온 글을 이야기하듯 풀어내어 발표했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의 연극론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다. 개별 작품에 대해 깊은 이해를 나누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론을 피력한 그 평론가는 다른 평론가보다 더 ‘잘’ 소통한 것일까?


이후 비평에 대해, 연극을 보고 글로 쓰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비평 작업은 정말 필요가 없을까? 만약 필요하다면 연극 비평은 누가 읽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 그리고 읽는 이가 불특정 다수일 경우 비평가는 자신의 언어를 보다 쉽고 편안한 말로 바꾸어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일까. 점점 더 다양한 주체들이 글을 쓰고, 그것이 빠르게 공유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비평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 걸까.


비평에 대한 고민은 몇몇 새로운 비평 매체, 그 속에 실린 연극에 대한,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읽는 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확인하고 싶던 것을 확인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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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비평집단 시선’은 매달 공연 리뷰, 연극계 현황에 관한 좌담 등을 담은 <월간 시선>을 발행한다. “무대와 객석 가까이에 존재하는 비평을 지향”하며 “비평과 창작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함께 성장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월간지, 매해 평론집을 낸다.

이들은 연극 비평이 쉽고 가벼워질 수 있는 길을 고민한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관객들이 좀 더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는 매체가 되고자 한다. 비평은 극장을 찾는 이들이 읽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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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극장 입구/ 왼편에 비치되어 있던 <월간 시선> 6월호


평론이 가진 무게감과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자유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실명이 아닌 필명으로 글을 게재한다. 구독을 해야만 읽을 수 있었던 기존의 두꺼운 평론집과 달리 서울 곳곳의 극장과 연극 센터에 4개 페이지로 된 무가지를 비치해 접근성을 높였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이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는 공연을 살펴보면 비평의 역할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유명한 극장에서 하는, 잘 알려진 연출가의 작품보다는 젊은 창작자들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주제와 가치를 담아낸 작품들을 주로 다룬다.


이는 비평이 “관객과 무대를 매개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 나아가 연극계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도들이 관객들과 만나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행진: 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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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 <행진(ACTZINE)>의 임인자 편집장은 “자생적으로 피어나는 지역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지역공연예술 비평지를 펴냈다.


그는 창간호 발문에서 예술과 예술가가 대상화되는 경향을 지적하며, 지역문화 정책이 점점 더 관 주도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행진>을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비평은 지역 예술계의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예술이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기 위해 존재한다. 비평이 ‘동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행진> 창간호에는 비평에 대해 회의하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광주문화예술인네트워크 좌담회에서는 "왜 이 시기에 비평이 필요한가?"를 질문하면서도 결국은 비평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다. '묵음,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사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조훈성 연극평론가는 자신이 썼던 비판 없는 비평을 떠올리며 비평가의 임무를 고민한다.


한재섭 미술사학자의 글 ‘반딧불은 소멸했는가’에서 필자는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반딧불의 불빛에 비유한다.



"그래도 빛나는 써치라이트 앞에서도 자신만의 작은 불빛을 지키고 있는 반딧불들의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가 예술이라면 그 신호를 기록하는 임무는 비평가의 몫이다."



비평의 중요성은 결국 예술이 갖는 중요성에서 기인한다. 단일한 가치 체계를 뒤흔드는 연대로서의 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그 희미한 신호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평가는 말하기를 이어간다.


*


글을 쓰는 지금, 아직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남아있다. 연극 비평은 누가 읽을까? 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비평의 형태가 존재할까? 좋아하는 평론가의 글을 눈으로는 읽으면서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내가 본 연극에 대해 쓴 글을 내놓으면서 아무도 재미있게 읽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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