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전도된 숭고함을 만나는 케빈 케너 피아노 리사이틀 : HUMORESQUES

글 입력 2019.07.1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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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가랑비가 내리는 목요일이었다. 이슬처럼 흩날리는 비 덕분에 날이 선선해서 퇴근하고 예술의전당에 가기에 아주 딱 좋은 날씨였다. 이렇게 7월 11일 목요일을 반추하는 이유는 바로 뮤직앤아트컴퍼니의 주최로 케빈 케너 리사이틀이 IBK챔버홀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모레스크라는 부제를 달고 여는 케빈 케너의 리사이틀이 어떨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7월 초를 버텼던 나에게는 비가 추적추적 오더라도 선선한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쾌적하게 음악을 즐길 준비를 하기에 딱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리사이틀의 1부는 하이든과 슈만으로, 2부는 쇼팽과 파데레프스키로 구성되어 있었다. 슈만과 쇼팽의 활동시기가 겹치기는 하지만, 시대순으로 프로그램을 배치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2부에서는 폴란드의 정서를 관객들이 한가득 느껴볼 수 있도록 안배하기도 했을 것이다.




Programs

Haydn - Sonata in C major, Hob.XVI:48

Schumann - Davidsbundlertanze, Op. 6

I N T E R M I S S I O N

Chopin - 5 Mazurkas
Op. 7, No. 2a in aminor
Op. 7, No. 1 in B-flat major
Op. 6, No. 2 in c-sharp minor
B. 31 in D major
Op. 6 No. 5 in C major

Chopin - Scherzo No. 4 in E major, Op. 54

Paderewski - 6 Humoresques, Op. 14
Book I (à l’Antique)
No. 1: Menuet
No. 2: Sarabande
No. 3: Caprice (genre Scarlatti)
Book II (moderne)
No. 4: Burlesque
No. 5: Intermezzo polacco
No. 6: Cracovienne fantastique





첫 곡인 하이든은 케너의 아주 영롱한 소리로 시작되었다. 케빈 케너의 시작은 너무나 좋았는데, 생각보다 객석이 준비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객석에서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터져나오는 기침소리와 분위기가 전환되는 초반의 순간에 크게 울려퍼진 핸드폰 떨어뜨리는 소리 때문에 첫 터치로 만들어 놓은 그 분위기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듣는 입장에서 이렇게 연주 몰입에 방해를 받는 느낌인데 케너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작은 미스는 있었어도 케너는 역시 대가답게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드는 객석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하이든을 펼쳐나갔다.

그런데 케너는 정말 아름다운 하이든 소나타를 들려주었다. 무대를 기다리며 하이든 작품을 여러번 들었는데, 이 작품 속에 담긴 쾌활한 소리와 리듬감, 갑작스러운 변화, 끝없는 찰나의 정적들이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절묘하게 울려퍼졌다. 특히나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현장에서 와닿았던 것은 케너가 짚은 수많은 쉼표들이었다. 그 여백의 미가 정말 크게 와닿았다.

그런 여백 속에서도 이 작품의 기본적인 정서가 즐거움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은 채였다.  즐거운 바탕에 다양한 분위기 전환들을 꾀하며 음악적 유머를 뽐낸 하이든의 소나타를, 케빈 케너는 진지하게 풀어냈다. 시종일관 즐거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연주였다.

*

반면에 두번째 곡인 슈만의 다비드동맹 무곡은, 비단 즐거움이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쾌활하고 외향적인 플로레스탄과 내향적이고 섬세한 오이제비우스의 대비가, 단순히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입체적인 작품을 케빈 케너가 어떻게 연주할 지 궁금했는데, 첫 곡보다도 더욱 마음이 사로잡혀버리고 말았다. 복잡다단한 작품을 아주 철학적으로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아주 경쾌하게 시작한 플로레스탄의 춤곡은 케너의 손끝에서 점차 괴로움과 고뇌로 인한 격정을 드러냈다. 반면 멜랑꼴리하게 시작한 오이제비우스는 점차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는 행복으로 아주 차분히 고양되어갔다. 유머를 다루는 하이든과 슈만 두 음악가의 대비되는 성향을, 케빈 케너는 1부에서 아주 잘 보여준 것이다. 플로레스탄의 춤곡을 연주할 때에는 케너가 분출하는 에너지가 슈만의 격정을 담고 있었다. 후에 나오는 슈만의 광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의 시작점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강렬했다. 반면 오이제비우스를 표현하는 케너는 슈만의 서정성과 사색적인 면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그려냈다. 이는 단순히 슈만의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슈만의 자기분열적인 모습을 연주로 표현해낸 것이었다.

케빈 케너가 그려낸 슈만은, 소위 말하는 인생의 '단짠'이 있었다. 다비드동맹 무곡의 첫번째 곡 같은 인생의 달콤함만이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울하고 짜기만 하지도 않은 인생의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연주였다. 그래서 철학적이었다. 프로그램 북에서는 이를 '전도된 숭고함'으로 표현했는데, 케빈 케너의 다비드동맹 무곡 연주는 역설적으로 인생에서 왜 유머가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Kevin32 ⓒAn Woong Chul.jpg
 

2부는 온전히 케빈 케너의 폴란드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쇼팽 마주르카 5곡, 쇼팽 스케르초 4번 그리고 파데레프스키의 유모레스크로 옹골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나 1990년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기록한 케빈 케너이기에 그의 쇼팽 연주는 더더욱 기대가 됐다.

그러나 쇼팽 연주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쇼팽과 유머를 연결시킨 그의 선택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쇼팽과 유머를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공연 전까지 작품을 미리 감상해볼 때 케너가 이 작품들을 선곡한 이유를 생각하며 들어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케너의 쇼팽과 나의 시간들이 만나자 그게 무엇인지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와 닿았다.

케너는 마주르카 5곡을 쉼 없이 연달아 연주하고 스케르초 4번을 연주했다. 그렇게 들으니 케너의 마주르카를 들으면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바로 마주르카에서 큰 고난과 역경, 고생이 없었던, 젊음의 그 순수한 유머와 즐거움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이었다. 마치 10대 때에는 아주 사소한 것도 재밌고 즐거워서 인생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이, 마주르카에는 바로 그 젊음의 때묻지 않은 웃음이 있었다.

바로 이어지는 스케르초 4번으로 인해 그 대비는 더욱 극명했다. 왜냐하면 스케르초 4번에는 말 그대로 고난과 역경을 견뎌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조금은 때묻었지만 그렇기에 성숙할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꽃밭 같이 순수한 즐거움과 '전도된 숭고함'의 극적인 대비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번 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유머와 멀다고 느꼈던 쇼팽의 두 작품들이, 사실은 이번 리사이틀의 가장 핵심이라고 역설적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객석의 몰입도도 가장 높았다.

*

놀라운 쇼팽 연주가 이어진 뒤에, 케빈 케너는 마지막으로 파데레프스키의 6개의 유모레스크를 연주했다. 어떻게 이렇게 에너지 넘치고 유머러스한 작품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제목과 같이 정말 위트 넘치는 분위기의 작품인데 케빈 케너의 연주도 아주 매끄러웠다. 첫 곡은 우아하지만 익살스러운 미뉴에트였다. 모차르트가 연상되는 위트감이 있으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이 곡만으로도, 파데레프스키가 얼마나 감각적인 음악가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이어지는 2번 곡에서는 중간중간 푸가 선율이 느껴져 바흐가 연상되는가 하면 세번째 곡은 누가 봐도 스카를라티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곡이었다. 1번부터 3번까지 차례로 모차르트, 바흐, 스카를라티를 재해석한 작품이었는데, 케너의 연주에서는 바로크, 고전의 대가들의 향취와 파데레프스키의 익살스러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네번째 곡부터는 현대적이고 독특한, 파데레프스키만의 고유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5번 곡은 마주르카를 딴 것인데 바로 일전에 들은 쇼팽의 마주르카와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듣는 내내 재밌었다. 크라코비악 춤에서 발전된 6번 곡 역시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파데레프스키가 아주 유쾌하고 센스가 넘치는 음악가였다는 걸, 케빈 케너가 온 몸을 다해 말해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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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케너의 2019년 리사이틀은 굉장히 입체적이었다. 케너는 유머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바로크 시기부터 20세기 초까지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통해 유머의 다면성을 풀어내었다. 순수한 웃음, 익살스러운 감각뿐만이 아니라 통렬한 아픔의 끝에 나올 수 있는 웃음, 깊은 성찰에 기반을 둔 유머까지를 보여준 케빈 케너는 본인이 말한 전도된 숭고함(Inverted sublime)이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음악적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아주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연주를, 이렇게 좋은 날에 들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프로그램 북에서, 케너는 음악가로서 스스로 지닌 사명이 음악으로 '미'를 창조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그것을 통해 희망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무대가 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는 진솔한 사람인 것 같다. 본인의 사명감을 어떤 행동으로 보이려 하는 게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고달픈 인생 길에 우리가 왜 유머를 잃지 않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증명했으니.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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