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 필로 FILO Vol.8 [도서]

영화비평잡지 FILO Vol.8
글 입력 2019.07.0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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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잡지 FILO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부러움, 그리고 반성이었다. 사실 이 잡지를 받아보는 것에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또 어떤 작품에 대한 누군가의 타당한 비평을 보는 것이 즐거우니, FILO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벼운 마음에서 첫 장을 펼쳤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엔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전문적인 비평가는 아니지만, 영화나 문학에 관한 내 생각을 종종 글로 남기는 사람으로서 반짝이는 생각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하는 이들의 넓은 시각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 글에 있어 좀 더 깊이를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호에 실린 작품들 중 이전에 내가 봤던 것은 없었다. 특히 <왕좌의 게임>은 굉장히 인기 있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전공 수업에서 “우리 전공이라면 <왕좌의 게임>은 꼭 봐야 합니다!”라는 교수님의 추천을 꾸준히 들었음에도 보지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잡지에 실리는 작품을 그냥 정하지는 않았을 터. 분명 지금의 영화 흐름 속에서 꽤 중요한 이슈나 작품들을 모아 왔을 것인데, 이 중 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니, 글을 쓰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든 부족한 좁은 저변이 아쉬웠는데 여전히 내가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어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한편, FILO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보지 않았던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해도, 계기 없이 그것들을 무한히 소비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추천, 구미가 당기는 줄거리, 특정한 이슈 등 나를 설득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그 작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FILO의 글들은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작품들을 찾아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 글을 좋아하는 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잡지이다. 인터넷에서도 영화에 관한 많은 이들의 생각을 공유받을 수 있지만, 정제되고 응축된 한 권의 책으로 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FILO는 누군가에게는 자극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는 추천으로써, 혹은 또 다른 무언가로써 우리의 내면을 한층 풍요롭게 해줄 것임을 확신한다.



두 개의 장면, 실력의 정체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아사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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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영화를 비교하는 것, 그리고 자신만이 포착한 접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쓰는 이만의 비평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또한 생각났다. 사진학에서 이야기되는 이 개념은 ‘찔림’과 연결 지어 설명되기도 하는데, 보는 이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부분에서 감정적 찔림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아사코>는 일본에서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개봉된 영화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이라는 비교적 짧은 간격을 두고 개봉되었다고 한다. 이 우연함 속에서 정한석 평론가는 ‘함께 바라봄’의 행위라는 두 영화의 접점을 발견했고, 각각에 대한 해석은 두 영화를 비교함으로써 더욱 설득적이고 이해가 쉬워졌다.

분명 두 영화감독이 이러한 두 영화의 연결지점과 그에 따른 해석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경험하는 사람의 외부적인 요인(영화를 보는 시기 등)과 내부적인 요인(영화 자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에 따라 이와 같은 유의미한 비평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절멸을 우회한 사랑
폴 슈레이더의 <퍼스트 리폼드>, 그 집요함이 주는 감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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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폴 슈레이더를 잘 알지 못한다. 이번 글에서 소개된 <퍼스트 리폼드> 또한 보지 않은 영화가 아니라, 아예 들어보지 못한 영화였다. 비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슈레이더는 불시에 우리를 무지의 구덩이로 밀어넣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왔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

비평에서도 ‘알 수 없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만큼 그의 영화는 꽤 난해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기이한 무능력에 직면한 인물’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문영 평론가의 글은 <퍼스트 리폼드>를 중심으로 슈레이더의 중요한 작품 전반을 짚고, 그 의미를 찬찬히 설명하며, 슈레이더의 작품을 한 개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그의 방향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이 쓰고 만든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영화들의 기억을 쏟아내듯 불러오면서, 상식적인 미덕인 혁신이나 성숙과는 정반대편에서, 향수도 위안도 없이 실패를 실패로서 반복하는 것. 슈레이더를 작가로서 믿는다면 이 둔중하고도 집요한 실패의 반복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수려한 문장들은 쉽지 않을 것 같은 슈레이더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이해의 장벽을 낮추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슈레이더가 거듭해서 담고 있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어떤 것일지,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이다.

*

오늘 글에서 언급한 두 비평 외에도 ‘아녜스 바르다’에 관한 글, 전주국제영화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글, 그리고 <왕좌의 게임>에 대한 비평 또한 수록되어 있다. 한 감독에 대한 혹은 영화계 전반에 대한 다양한 배경지식들이 난무하는 글 속에서 조금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글로 적힌 이 감정들이, 그리고 생각들이 영화에서 도대체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절로 떠오른다.

여러모로 FILO는 자신들이 내걸고 있는 타이틀이 잘 어울린다.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이들 중 하나라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FILO를 읽어보자.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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