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다시 쓸 때까지] 07. 복숭아뼈를 닮은 사이

글 입력 2019.06.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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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시 쓸 때까지]

07. 복숭아뼈를 닮은 사이

글. 김해서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는개가 내렸고, 그날 하관식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죽은 사람이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모든 자식들은 종국엔 고아가 된다. 아빠의 빨간 눈과 코를 보고 머리가 좀 아팠던 것 같다. 그러나 꼬맹이었던 나는 고모와 엄마에게 어지럽다 말하고 자리를 빠져 나와 금세 두통을 떨쳐냈다. 한동안 친할머니를 떠올리지 않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가까운 존재를 잃게 되면 상실은 상실의 능력을 잃는 법. 여느 때와 똑같이 나는 그녀를 보고 싶을 때만 생각했다. 그러면 슬프지 않았다.

물론, 아주 가끔 어쩔 수 없이 할머니의 모습이 강렬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는 복숭아뼈를 닮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발이 정말 못생겼다. 발볼도 넓고 둘째발가락이 유독 긴 데다가 복숭아뼈가 남들에 비해 울퉁불퉁하다. 심지어 살이 흰 편이라 그 못생긴 발이 크고 퉁퉁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람의 발이란 게 어차피 바닥과 내내 붙어있는 기관이고 예뻐 봤자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몸에 굉장히 둔한 편이었던 나도 '도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일까' 궁금했던 걸 보아 못생긴 정도가 좀 지나치긴 한 것 같기도. 설상가상, 힘은 좋아서 성난 황소의 뿔처럼 발가락 끝이 늘 휘어져 있다. 딱히 열심히 살지도 않았는데 발만 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다. 이걸 가린답시고 페디큐어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 그런데 어쨌든 친할머니의 발도 딱 '이 모양'이었던 것이다.

발의 모양이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발견은 내게 굉장히 중요했다. 온전히 엄마아빠의 자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적어도 발은 할머니가 물려준 것이 아닌가. 할머니의 발은 80년 넘게 걷고 뛰고 버티는 데 쓰이느라 한참 낡고 마른 피부로 덮여 있었는데, 내 먼 나중의 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아주 시시한 미래. 그러나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어린 나는 신기했고 묘하게 흥분됐다. 보고 따라하지 않아도 닮았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같은 운명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흥분이었을까.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신에게 물려받은 건, 발만이 아니었다. 나는 자라면 자랄수록 할머니를 닮아갔다. 고집도 세고 입맛도 확고했고, 무엇보다 가까운 동네 마트에 갈 때조차 차림새를 신경 쓰는 사람이 됐다. 머리가 너무 부스스하진 않은지, 얼굴이 너무 네추럴하진(?) 않은지. 혹자는 나더러 코르셋을 스스로 조이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꾸밈 노동은 '아무 사람들이 내 여러 모습을 너무 많이 알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게 가장 크다. 가까운 사람이 아닌 남들에게 너무 느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어느 자리에서 만나든 내 모습이 한결같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려나.

기억 속 할머니도 똑같은 모습이다. 동네 어르신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법도 없고 아주 가까운 곳으로 외출할 때에도 손바닥에 물을 묻혀 고아하게 머리를 다듬으셨다. 항상 손목에 염주를 감아 어디서든 자주 기도 정진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사과! 사과를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어느 계절이고 늘 사과를 드셨다. 이빨이 없으실 때는 숟가락으로 긁어 오물오물 열심히 드셨는데, 그 모습이 한편 천진하게 보이기도 했다. '불가*스'조차 사과 맛만 드셨다. 포도나 복숭아 맛을 더 좋아했던 나도 할머니 댁에서는 잠자코 사과 맛을 먹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속 등장인물인 가즈코의 아름다운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무자비한 삶 속에서 가기 싫은 곳은 가지 않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나 굳게 믿으며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럼 조금 외롭더라도 덜 휘둘릴 수 있을까. 극복하고 버티고 감내하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았던 시절을 넘기자, 할머니의 발이 다시 떠올랐다. 고집스럽고 울퉁불퉁한 발. 지금의 내 발은 이런저런 흉도 있어서 어린 시절보다 더 볼품없다. (그땐 작아서 귀엽기라도 했다.) 그러나 이젠, 엄마가 낄낄거리며 샌들 사이로 비치는 발을 놀려대도 내 눈엔 그리 밉지 않다. 보이는 곳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확실하게 못생겼으니 오히려 근사하지 않은가. 할머니였어도 아랑곳 않았을 거다.

아빠의 컴퓨터 배경화면은 최근까지 할머니였다. 단정하고 윤이 나는 머리에 꽃을 한 아름 안고 연한 파스텔 빛깔의 한복을 입고 계셨다. 눈가의 주름에도 눈빛은 가려지지 않는다. 수줍은 듯 부드럽게 정면을 쳐다보는 자태. 내가 아빠였어도 그 사진을 소중히 여겼을 거다. 발은 풍성한 치맛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아마 발가락 울룩불룩한 마디마디에 잔뜩 힘이 들어가 굳게 버티고 있을 테니. 카메라로 당신을 담으려는 아들과 그 순간 속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똑바로 서 있으려고 말이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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