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적의 소니 – 미래와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민 [애니메이션]

마이너에 대한 고찰 11
글 입력 2019.05.1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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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도, 그 첫 주자, <무적의 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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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서는 <러브, 데스+로봇>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러브, 데스+로봇>은 제목처럼 사랑, 죽음, 그리고 로봇에 대한 18개의 각기 다른 애니메이션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대놓고 ‘성인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을 내놓은 이 작품은 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파격적인 시각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타자로 나선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무적의 소니(Sonny’s Edge)>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야수들의 잔혹한 싸움.
하지만 소니는 절대 지지 않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녀의 강점은 무엇일까.

- 넷플릭스 <무적의 소니> 소개글


첫 번째 에피소드로 제시된 만큼, <무적의 소니>는 <러브, 데스+로봇>이 담고자 하는 대주제와 성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한 작품이었다.

17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작품이지만, 관객들이 어떤 작품으로 하여금 경험할 수 있는 충격,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생각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간결한 스토리에 충격적인 결말을 빠른 시간 안에 도출해내면서 나는 작품을 즐긴 17분 이후에도 <무적의 소니>에 대한 생각과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무적의 소니>는 뇌파로 괴수들을 조종해서 벌이는 결투를 소재로 한다. 주인공 소니는 그 결투에 출전하는 인물로, 괴수 카니보어를 앞세워 17연승을 거두고 있는 최강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업가 디코는 한 번만 경기에서 져준다면 우승 상금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1년 전 그녀에게 일어났던 사고와 관련한 증오, 신념, 명예를 동력으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소니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괘씸함을 느낀 디코는 소니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결말, 디코의 복수 과정에서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난다. 디코는 소니의 머리를 박살내고 죽음으로써 복수를 성공하는 것 같았지만, 디코가 박살낸 소니의 머리는 인간의 머리가 아니었다. 사실 인간처럼 보였던 소니의 몸에는 가짜 머리가 붙어 있었고, 실제 소니의 뇌는 괴수인 카니보어에 이식되어 있었다. 즉, 소니가 뇌파로 조종하고 있었던 것은 괴수 카니보어가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소니의 몸이었던 것이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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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에피소드의 끝에서 드러나는 소니의 강점(edge)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적의 소니>에서 나오는 결투는 누군가(괴수)가 죽어야만 끝이 나지만, 그것을 조종하는 인간들은 털끝도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소니는 카니보어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살기 위한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니는 죽지 않기 위해 이겨야만 했다.

여기에서 괴수들은 로봇으로서 인간이 하지 못하는 행위(죽음으로써 끝나는 결투)를 대신해낸다. 그러나 인간을 대신하는 이들이 영원히 인간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은 소니가 가졌던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삶에 대한 절박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자들의 초점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섬뜩했던 것은 이러한 로봇의 특성을 인간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두려움이나 감정이 없는 로봇들은 결국 인간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잔혹한 오락으로 소비된다.

* <무적의 소니>는 로봇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았지만, 이를 주제로 한 HBO의 시리즈 <West World>는 인간의 잔혹한 오락으로 소비되는 로봇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로봇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간을 대체하지만, 인간의 요소는 갖고 있지 않은 이 존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 속에 숨겨왔던 요소들을 로봇을 통해 해소하고 발현시킨다면, 그것을 해소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으로써의 필요조건을 무너트리는 것은 아닌가?



발달의 끝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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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괴수가 소니였다.’는 사실이다. <무적의 소니>는 물질적인 것(신체)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소니의 정신을 담았다. 소니로 치환되는 물질은 다수일 수 있고, 부서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녀의 정신만은 온전히 소니를 대변한다고 여긴 것이다. 뇌가 부서져도 여전히 말을 할 수 있었던 소니의 모습은 이러한 주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정신의 주체가 괴수라고 해서 그 괴수가 온전히 소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물질과 정신은 상호작용하면서 그 특성을 발달해간다고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특성이 변해온 것도 함께 변화하는 물질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괴수로써의 소니는 정신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소니를 조종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싸움이라는 기능만을 하는 존재이다.

기술이 극한 발달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같은 개체가 복수로 존재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과연 어떤 존재가 ‘진짜’ 인간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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