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꼬리박각시 MONO-SPHINK [도서]

처절한 상처와 고독을 거니는 어느 한 사람에 관하여
글 입력 2019.05.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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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이 노출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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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냄새와 파리의 냄새가 나는 관능적인 책을 쓰고 싶었다. 현대의 적막한 고독과 분노의 외침이 들리는 책 말이다.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극단적인 여성의 시선을 통해 도시와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 - 저자 서문 중 일부 발췌


작가가 독자들에게 원했던 목표는 달성했다. 적어도 나란 독자에겐 통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감이 극을 치달았다. 상당히 매혹적이면서도 한 장 한 장 넘기기 힘든 소설이다. 이걸 매혹적이라고 해야하나. 우리의 무의식 안에 잔재하는 억눌린 어떤 욕망을 건드려서 매혹적 이었을까. 찟어 지는 아픔을(내가 읽고 느낀 바로는 그렇다) 견뎌내기 위해 혹은 잊어버리기 위해, 망각의 도구로서 섹스를 하는 주인공 롤라는 우울과 고독의 완성체다.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들에 사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행동들에 관한 도덕성을 판단하는 건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 같다.

롤라는 어떤 여성, 아니 어떤 사람인 걸까.



간단한 책 소개,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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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줄리 에스테브(Julie Estéve)

1979년 프랑스 파리 출생. 현대미술 전문 저널리스트다. <꼬리박각시(Moro-sphinx)>(Stock, 2016)는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이며 독일에서는 <Lola>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간단한 책 소개, 꼬리박각시(Moro-sphinx)

꼬리박각시는 파리의 어느 한 여성, 롤라의 인생의 일부분을 그려낸 소설이다. 현대인의 고독, 고립, 외로움, 다양한 형태의 결핍들이 '롤라' 란 인물 속에 녹아있다.

어머니의 죽음, 오래 전 첫 사랑과의 이별, 술에 한껏 취해 사는 아버지(그의 행동엔 그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등 다양한 외적/내적 요인들로 인해 인해 그녀의 삶은 처절하게도 피폐해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고통의 굴레에서 그녀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잠시 동안이라도 고통의 기억을 잊기 위해 거리를 나서, 욕망을 충족 시켜줄 물체들을 찾고, 일을 다 끝내면 그들의 손톱을 수집한다.

*

저자 줄리 에스테브는 현대인의 애정결핍과 성적 황폐함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현대인은 저마다 상처 입은 어린 아이의 가슴으로 롤라처럼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비참한 상황을 위로해 줄 치료제를 찾는지도 모른다. 술이든 섹스든.  - 역자 후기 중 일부 발췌


소설 구성


이야기는 크게 봤을 때, 시간의 흐름대로 전개된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각각의 챕터가 특정한 시간 속에 놓여있단 것이다. 요일로 기재가 돼 있다가도, 갑자기 다음 챕터에선 날짜로, 더 나아가 어떤 때엔 롤라가 여행한 장소, 기념일, 혹은 이전 챕터의 1시 간 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챕터가 이름 져져 있다.

또한 대게 이야기는 롤라를 향하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 감정들이 삽입돼 있다.




인물 소개


롤라(Lola)
소설의 주인공이다. 파리에 산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그녀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일을 갔다가 퇴근한다. 그녀는 광적인 취미? 집착? 습관? 무어라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어찌 보면 기괴하고 이상한 일들을 반복한다. 매일 같이 짖게 화장을 하고, 온 몸의 선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소위 남성들을 자극시킬 만한 것이라고 인식되는 옷들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고는 '타겟'을 정한다. 타겟들과 아무 의미 없는 행위들을 끝마치면, 그들의 손톱들은 롤라의 손톱 컬렉션 병에 들어간다.

도브(Dove)
흰색 구두를 신은 남성, 롤라와 연인이 되는 인물이다. 얼마 전에 이사왔다. 그는 자신 스스로 말하듯 불행이 면제된 소수로만 구성된 클럽의 멤버이다.


그는 피부를 사막처럼 만드는 슬픔이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런 슬픔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겪어본 적도 없다. 그는 불행이 면제된 소수로만 구성된 클럽의 멤버다. 그에게선 아무것도 잃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의외로 인간미가 다소 결여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무사태평한 분위기가 배어난다. 세상의 고통을 곁눈질할 뿐이다.  P 55


과연 그럴까. 어쨋든 슬픔을 겪어본 적도 없고, 세상의 고통을 곁눈질할 뿐인 그는 슬픔으로 둘러싸인 롤라에게 욕망을 느끼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지막엔 그녀의 손에 의해 그녀가 그에게 선물한 칼에 의해 그는 죽는다.

소설의 끝날 때까지 이 '너'란 인물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련, 롤라의 첫 사랑이자, 여태까지 그녀의 마음을 헤집는 존재다. 롤라의 '너'에 대한 사랑은 증오로 변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롤라는 '너'와의 추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찌보면 이 '너'란 존재, 추억은 롤라의 욕망의 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을 거 같다. 롤라가 다시 되돌려, '너'와 했던 똑같은 형태의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불가능하다.

니콜라 프리플레린
롤라의 타겟 중 한 명이다. 그는 청소 관련 용품과 주제들에 홀릭돼 있다. 롤라는 자신이 책을 쓴다며 그에게 접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대로의 차림을 하고 있는 롤라를 지하도에서 만나는데, 그 이후로 그는 그녀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마티유 바넷
구둣방 사장이다. 그녀와 지속적인 만남을 원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느날 롤라와 도브가 연인이 된 것을 알자, 그들에게 갖가지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저주한다.



감상평

롤라는 참 불행하고, 보면 마음 아파지는 사람이다. 그녀의 섹스에 대한 집착은 기괴하고도, 상당한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것 보다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의 정신에 꽃혔다.

비극적이게도 소설의 끝에서,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녀의 손으로 도브를 죽이고,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마저 그녀에게서 없어진다. 그녀의 육신은 걸어다니고 있지만, 텅 빈 깡통에 불과하다.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처음엔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을 거 같았던 첫 사랑의 종결이 그녀를 고독과 고립의 덩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자신의 고통을 잠시 나마 잊기 위해 순간의 쾌락에 의존한다. 나와야 함을 알면서도 못한다. 어찌보면 그녀또한 그녀에 생활에 중독된 걸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그만둘 수가 없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몸에 녹이 슬 것 같다. P 29


새로운 연인, 도브(Dove)를 만나지만, '너'와는 다르다. 이제 그녀는 가능한 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도브를 좋아하지만, 그녀에 대한 그의 행동과 감정들이 어느 순간 끝이 나고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 계속해서 롤라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니콜라나 구둣방 주인인 마티유 모두 성적 욕구/충동/욕망에 휩쓸려 있는 사람들이다. 니콜라는 롤라와 지냈던 그 날 이후로, 제대로 된 생활을 해나가지 못한다. 당연히 가정은 휘어지고 있다. 마티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롤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연인인 도브를 죽을 생각까지 한다.

이처럼 중요한 건 롤라를 비롯해 소설의 나온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타인과 진심어린 정서적 교류 하지 못한 다는 점이다.

저자 줄리 에스테브가 말했듯,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재고 따지는 인간관계에 지쳐, 차라리 기대 하지 말고 맘도 주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웬만하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혹은 무언가 계속되는 마음의 허함를 채워줄 대상들을 찾는다.

완전한 현대인의 삶을 대변한다고 볼 순 없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삶의 암흑적인 단면이란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나또한 소설의 결말처럼, 현대인의 공허와 고립을 메워줄 그 적절한 대상이 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이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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