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 - 안 봐도 사는데 지장있는 전시

안 봐도 사는데 지장있는 전시
글 입력 2019.05.1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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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과 이에 대한 해설이
노출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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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라니, 귀여운 포스터에 이름까지 센스 넘친다. 일요일 오후, 날씨가 넘 좋다보니 서울역에서 굽이굽이 버스타고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석파정 미술관의 위치까지 사랑스러웠다. 독특하게도 전시는 시간 순으로 구성돼있다.(아침, 점심, 저녁, 새벽) 때문에 나를 비롯한 관람객 분들은 또 다른 차원의 하루를 거닐게 되는 것이다. 우리 관객들의 어떤 하루 속 어떤 시간에 누군가들의 시간들을 들여다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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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 걸려져 있는 시계들


본 전시회는 물 흐르듯 어느 순간 간과하고, 지나쳐 버리는 우리들의 '일상'에 눈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강조하듯, 전시 곳곳에 시간의 흐름대로 시계가 놓여있다. 각각의 시간대에 맞게 작품들과 전시분위기를 잘 표현해냈다. 모든 작품들을 리뷰할 수 없기에 시간 흐름별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07:30 황선태, 빛이 드는 공간 


 


02.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의 쉼표를 찾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일상의 공간은 더 없는 평화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죠.
여러분의 안락한 쉼표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주말 오전, 거실에 드리워진 아침 햇살,
오후의 빛이 스며드는 화장실 한 켠,
노을이 내리 쬐는 계단

곳곳이 빛이 머무는 일상의 찰나들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위안을 주는 쉼표의 순간들입니다

황선태 작가는 유리와 보드판으로 제작된 여러 층의 스크린 위에 드로잉과 LED 빛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합니다. 색과 면이 제거되고 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위에 빛이 어른거리는 모습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일상의 풍경들을 서정적인 한 컷으로 구현합니다. 작가는 익숙하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던 일상의 찰나를 특별한 순간으로 포착하였습니다. 반면 빛에 의해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사물의 존재성을 더욱 뚜렷하게 합니다. 황선태 작가는 어렴풋한 일상의 잔상들을 빛의 자취를 따라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따스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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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발을 들여 놓고 얼마 되지 않아, 따스하고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선태 작가님은 일상 속에서의 다양한 '쉼표'들 중 한 순간을 작품에 입체적으로 불어 넣어 주셨다. 바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일상의 어느 순간이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기에, 작품의 분위기가 온전히 담겨져 있진 않지만 이들을 보면 괜스레 얼굴도 발그레 해지며, 쨍한 햇살 때문에 눈도 한 번 찡그리게 된다.

햇볕이 좋고, 바람도 산들산들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 정도로 부는 날, 원터치 텐트를 가지고 가 공원에 누워있음 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하물며 우리 집 고양이가 낮잠 잘 시간에 귀신 같이 햇살이 쨍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곤히 자는 걸 보면 너무나 신기하고 어느 면에선 과하게 귀여워서 웃길 따름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나의 쉼표는 어는 순간일까. 혹은 우리들의 일상 속 쉼표의 순간은 어떤 때일까. 이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08:10 유고 나카무라, Humanity



01. 이야기

오전 8시 10분,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소리에 지하철 플랫폼을 향한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미 스크린 도어 앞에는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이번에 오는 열차를 타지 못하면 지각이기에 비좁은 사람들 틈 사일 열심히 몸을 욱여넣어 봅니다. 여기저기 자증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밀고 밀리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새삼 우리나라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출근도 전에 피곤해집니다.

작가에 의해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이 영상 프로젝트에는 표정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빠르게 이동합니다.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고, 마주 오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매일 아침 우리가 겪는 '지옥철'이 떠오릅니다.  이 영상의 제작자 유고 나카무라는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물리학적 오브제를 이용하여 일상에 숨어있는 물리학 법칙을 보여줍니다. 사실 출근길 아침외에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무심코 흘러가는 일상 속 물리의 법칙은 다양합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이 미술관에 오기까지도 수많은 물리학의 법칙들이 지나갔습니다.

이처럼 영상에 등장하는 오밀조밀한 작은 오브제들이 모여 끝이 없는 듯 한 무한한 공간을 만들 듯이, 우리의 일상에도 별 것 아닌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힘을 지니게 됩니다. 유고 나카무라 작가는 특별한 스토리보다는 반복되는 전개에 집중하며, 시계처럼 흘러가는 무미건조한 우리의 일상을 실험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돋보이는 플래시 영상으로 재탄생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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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된 작품, 위 사진들은 영상 속 일부 장면들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쳐버리는 소중한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실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쳤다기 보단,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매일 같이 겪어야 하는 불쾌한 일상의 순간을 다루고 있다. 서로 난생 보는 사람들과 몸을 맞대고 있어야 하며, 몸을 두 다리로 잘 지탱하고 있지 않으면, '으아아' 하며 다 같이 한 쪽으로 넘어진다. 이렇듯 각자 만의 역사들을 가지고 있는 개개인들은 지옥철 안에선 단순히 서로에게 불쾌감만을 주는 물체들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4:00로 온다.



24:00 이영은, 극장



01. 이야기

극이 시작한다.
모두가 일제히 무대를 바라본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한 곳을 바라봤고 모두 조용히 멈춘다.
극이 끝난다.
사람들은 함께 온 지인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떠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극장>은 공동의 임시 체류적인 공간의 '극장'을 배경으로 나와 타인의 거리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사람들로 채워지고, 비워지며, 바다처럼 밀려왔다 쏠려가는 '극장' 이라는 공간.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스크린을 보고 같은 흐름을 느끼지만, 스크린이 끝난 후에는, 모든 타인은 각각 한명의 '나'로 돌아가며, 나 또한 모두의 '타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들의 경계를 '텅 빈 극장'에 남겨진 '옷가지(허물)'로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을 감싸는 옷들은 나 자신을 외부에 표출하는 도구로서 일종의 심리장치 표면이지만, 때론 타인과의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이영은 작가는 나와 타인의 자아가 소통하고 동시에 경계 짓는 요소를 옷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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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작품이다. 공동의 임시적 체류 공간이라는 '극장'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일전엔 사실 극장 안에서의 나와 타인과의 거리감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사실 그 거리감이 당연하고 아주 좋기에 간다. 극장이란 공간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곳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앞 뒤에 사람들이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면, 대략 2시간 동안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한 영화를 감상하면서도, 일제히 영화가 끝나자마자 각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일상의 소중한 어느 한 순간을 같이 공유하지만, 이름도 극장을 나와 지나가나 눈이 마주쳐도 얼굴도 모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참 새롭다.



총 감상평

리뷰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오랜만에 생각도 많아지고 아주 좋았던 전시였다.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겠으나 일상의 소중함을 전시가 끝날때까지 계속해서 상기하고 되새겨 보게 됐다.

무한히 흘러가고 끝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일상들은 어느 순간 종료된다. 그렇지만 필자를 비롯해 우리들은 매일매일의 모든 순간이 되돌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인식하고 살지 않고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사실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훅훅 지나가버리는 나의 일상을 이제부터는 마음 한 칸에 하나하나씩 새겨보기로 다짐했다.

여러분들도 눈 길 한 번 주지 않고 흘려 버리는 다양한 일상의 순간들을 찾아 보시길 권한다.


[이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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