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과 운명의 이야기 - 킹아더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4.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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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만이 뽑을 수 있다는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는 어쩌면 가장 유명한 검의 이름이 아닐까? 먼 옛날 중세 유럽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와 그 검을 뽑은 왕 아더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회자되며 이제와 여러 만화와 영화, 게임 등에 두루 사용되는 소재로 자리 잡았다.


올 해 우리나라의 대극장 무대 위에도 아더왕 이야기가 펼쳐진다. 돌아올 6월부터 시작될 EMK의 뮤지컬 ‘엑스칼리버’와 지난 3월 시작하여 공연 중인 R&DWorks의 프랑스 뮤지컬 ‘킹아더’가 그것이다. 그 중 ‘킹아더’는 그 개막전부터 화제였는데,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더 데빌’, ‘록키호러쇼’ 등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극을 선보여온 R&DWorks가 또 어떤 독창적인 극을 선보일지 궁금증을 자아낸 탓이었다.


사실 누군가 아더왕 전설을 아느냐 묻는다면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부분은 익숙하지만 전체는 낯설다.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마법사 멀린, 그리고 귀네비어와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 등 단편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그 앞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더는 어떻게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 있는 왕으로 태어난 것이며, 그 검을 뽑은 뒤 어떤 왕이 되었을까? 원탁의 기사는 왜 만들어져서 어떤게 변화했을까? 귀네비어와 랜슬롯의 사랑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설과도 같은 옛날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아더왕 전설에는 수많은 판본들이 존재한다. 시대가 바뀌고 장소가 바뀌고 매체가 바뀌면 늘 이야기는 새롭게 다시 쓰이는 법이다. 뮤지컬 ‘킹아더’의 아더왕 전설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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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R&DWorks 공식 트위터



문득 내가 왜 이 인물이 전기를 보고 있어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드는 공연이 있다. 어떤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릴 때,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이렇다 할 특별한 감상은 떠오르지 않고 그저 사건의 나열일 때 주로 그런 질문이 생긴다. 그럴때면 이야기가 아닌 배우의 연기나, 토막 난 장면들, 멜로디 몇 마디, 대사 몇줄만이 기억에 남고 다른 감상들은 쓸려나가듯 사라지곤 한다. 특출난 점이 없는 것 같은 순박한 청년 아더가, 어느날 갑자기 전설의 검을 뽑고 운명의 왕이 된다.


이러저러한 고난이 닥치지만, 그 고난의 운명 속에서 그는 백성과 나라만을 위하는 이상향의 군주가 된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옛날이야기들이 그러하듯 이리저리 얽힌 가족관계와,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과 복수가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흥미를 자아내는 재미 요소가 ‘킹아더’에는 있다.


킹아더가 개막한 뒤, 인터넷상에서 킹아더를 표현하는 단어들 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뮤직뱅크’라는 단어였다. 아이돌들의 무대를 방불케 한다던 노래와 군무, 조명들은 다른 뮤지컬에는 없는 킹아더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히 말하건데 이 극을 본 뒤의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고 황당할 수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유쾌하고 즐길만한 공연일 것이다. 앞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속했다.


사실 필자는 2011년도 이후로 아이돌들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진적이 없는데, 프로듀스 부류의 모든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에 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말 저녁이면 방송사마다 진행하는 가요프로그램은 꼭 챙겨보는데, 이름도 성도 모르는 가수들이지만 그들의 화려한 무대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복수를 다짐하는 멜레아강이 노랠 부르며 웨이브가 섞인 춤을 춘다하여도, 성배와 사랑 사이의 그 치열한 갈등 속의 랜슬롯이 ‘wake up wake up 사랑만 쫓는 바보여’를 연호하며 비트에 맞춰 노랠 부른다 하여도, 사슴과 늑대가 빛나는 쌍절곤(스러운 무기)을 휘두르고 공중에서 와이어에 매달려 빙글빙글 돈다고 하여도 마냥 신기하고 신선하고 그 중독성 있는 노래들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킹아더가 아니라면 그런 장면들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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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R&DWorks 공식 트위터 



물론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가볍고 파편화되어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안그래도 모두가 트랜디한 비트에 맞춰 노랠 부르고 춤을 추는데, 그 안에 흔히 감초 캐릭터라고 부를 수 있는 격인 아더의 형 케이까지 등장한다. 랜슬롯은 등장부터 ‘가장 용기 있는 기사’, ‘그 호수의 랜슬롯’이라고 칭해지지만 대체 왜 그가 용기있는 기사인지, 왜 호수의 랜슬롯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도 물론 있다.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극 중에서 가장 진지하게 다뤄지는 장면들은 아무래도 사랑에 대한 갈등이 아닐까 싶다. 킹아더의 형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뮤직뱅크일지도 모르지만,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운명과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까?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금지된 사랑과 그들의 사랑에 고통받는 아더의 모습은 슬프다. 귀네비어의 부정에 괴로워하며 홀로 결혼식의 선서를 되새기는 아더의 모습은 극 중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였다.


모르간과 귀네비어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겠다. 두 여자 주인공이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자유를 꿈꿨던 귀네비어와 어머니의 복수를 꿈꾼 모르간의 분노가 좋았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불쾌한 대목들은 많다. 오래된 전설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아더의 아버지인 우서왕이 자신의 정체를 속여 모르간의 어머니를 겁간하고 그로부터 아더가 태어남으로 시작된다.


이 극의 현자이자 아더의 조력자인 멀린은 그 범죄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한 일이다’라는 말로 변명하고, 극 중 가장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모두를 복수의 불길 속에 밀어 넣으려는 모르간은 감초 캐릭터인 케이를 통해 ‘내 스타일’, ‘쎈 언니’로 가볍게 불리운다. 그리고 부정을 저지를 귀네비어를 향하는 비난의 수식어는 ‘여자’이다. 귀네비어의 경우는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였던 귀네비어가 결국 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억압의 비극을 강조할 수라도 있겠으나 모르간을 그리 불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가벼운 환기가 필요할 만큼 무거운 극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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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R&DWorks 공식 트위터 



귀네비어와 모르간, 그 둘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여성 캐릭터가 사랑만을 원동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한 불편과 지루함이 물론 있다. 그러나 킹아더의 인물들은 남녀 모두가 사랑으로 움직인다. 랜슬롯은 사랑 탓에 명예를 버리고 멜레아강은 추락의 끝에서도 사랑을 울부짖는다.(물론 그것이 사랑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게 말한다.)


모르간의 복수는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끝이나고 귀네비어의 자유 역시 그렇다. 그 사이에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왕으로서의 아더는 결국 사랑을 잃거나, 놓음으로써 완성된다는 점이다. 사랑마저 버린 아더는 이제 오로지 백성들과 군가만을 위해 헌신하는 왕 아더이지 인간 아더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극 초반에 조금은 허술하고 소심해 보여도 사랑과 정이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


킹아더는 아더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아더는 백성과 나라만을 위하는 이상적인 군주로 운명대로 성장하였지만 그 뿐이다. 운명에 대한 아더의 반항은 별다른 행동도 없이 끝이 나고 이어지는 것은 순응의 이야기이다. 왕좌의 자격이 네겐 없다고 모르간은 일갈하지만, 애원하는 아더의 말처럼 그는 왕좌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는 사랑을 잃었고 왕의 자리는 그가 소유한 권력이 아닌 해내야 할 일이자 운명의 자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운명을 이겨내는 것도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것도 사랑을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


운명이 정한 길을 따라 모든 것을 잃고 책임과 의무의 백성들만을 위하는 왕이 되는 이상적인 왕의 이야기가 바로 뮤지컬 킹아더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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